[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끝맺음이 실력이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어린 시절 한두 번쯤은 불렀던 동요다. 고 이어령 교수는 이 동요를 통해 한국사회의 단면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한국사회는 뜨고 날아오르는 일에는 관심이 지대하다. 문제는 뜨는 법은 많이 가르치는데 내려앉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성공을 추구하긴 하는데 성공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비행기는 계속 하늘에 떠 있을 수 없다. 언젠가는 목적지에 내려야 한다. 내려가는 법을 모르면 사고가 난다. 비행사들은 이륙은 물론 착륙 시점에 가장 긴장한다. 탁월한 조종사는 거대한 비행기를 부드럽게 착륙시킬 줄 안다. 한국사회는 전력 질주에 익숙하다. 고공비행이며 경쟁 사회다. 문제는 내려앉는 법에 대개는 미숙하다는 점이다.
뜨는 법만 배웠기 때문이다. 모두 앞만 보고 달려왔다. 달리는 것은 잘하는데 멈추는 법은 잘하지 못한다. 잘 내려앉는 것은 잘 끝내는 것이다(finish well)이다. 아무리 잘 달려왔어도 끝 지점이 중요하다. 마지막 성적이 끝까지 간다. 끝내기로 최종 성적이 매겨진다.
끝내기를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 힘을 줄 때가 있고 뺄 때가 있다. 공중에서 내려앉는 착륙 지점은 힘을 빼는 순간이다. 힘을 빼는 것은 힘을 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 힘 빼기란 고도의 기술 중 하나다. 모든 영역의 스포츠에서 코치들이 선수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힘 빼라는 것이다. 힘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기보다 힘을 너무 많이 주어 실패한다.
성공한 실패자가 많다. 무림의 고수는 힘을 뺄 줄 안다. 무술을 익히고 나면 칼을 칼집에 꽂는다. 칼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칼을 쓰는 일이 없기 위해 무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칼보다 칼집이 더 좋아야 한다. 무대에 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언제나 무대 위에 서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프리마돈나라도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올 때를 아는 것이 지혜다. 무대 앞과 뒤는 전혀 다른 세계다. 드러날 때보다 숨겨져야 할 때가 더 힘들다.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누구나 피나는 노력을 한다. 내려오는 레슨도 필요하다. 숨겨짐을 받아들이고 은둔의 즐거움을 배우지 않으면 초라해진다.
물러남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영성의 문제다. 깊은 영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힘은 강렬한 유혹이다. 욕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은 자신의 내면을 다룰 겨를이 없다. 분주한 일상을 살아온 사람은 텅 빈 자신의 영혼과 마주해야 한다.
자신의 업무를 다루는 일에는 전문가들이고 탁월한 실적을 쌓아 올린 사람은 많다. 문제는 자신의 영혼은 빈사 상태라는 것이다. 성공은 했는데 영혼은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린다. 내면을 무시하고 산 대가는 의외로 처절하다. 사도 바울은 내면의 가치를 안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하고 고백한다.
나이가 사람을 저절로 깊어지게 하지 않는다. 내면의 부요함을 위해서 계속적인 성찰 가운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 육체의 쇠잔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의 쇠잔함은 거스를 수 있다.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은 쉽게 오염된다. 겉은 세련돼 보이지만 마음속은 탐욕으로 가득하다.
지속적인 마음의 디톡스가 필요하다. 영혼의 찌꺼기를 계속 걸러내야 한다. 헛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필요하다. 마음의 부를 축적하며 살아온 사람은 소멸이 아닌 소생을 기대할 수 있다. 나이에 걸맞은 영혼의 질을 갖춘 삶은 초라해지지 않는다.
삶의 감량 조절을 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가볍게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심플라이프가 중요하다.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제거해야 한다. 허영이 줄어들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그때부터 홀로 있는 것도, 물러나기도 쉬워진다.
명품의 특징은 끝맺음에서 탁월하다고 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가장 완벽한 끝맺기는 십자가다. 예수는 십자가로 기꺼이 내려가셨다. 완전한 비움이다. 최상의 소프트 랜딩은 십자가에서 발견한다. 가장 아름다운 마침, 그 이후 주어지는 부활의 영광은 유난히 눈부시다.
(부산 수영로교회)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더 미션에 접속하세요! 어제보다 좋은 오늘이 열립니다 [더미션 바로가기]
- “기독교인은 기독교 개종자 아닌 예수의 도제”
- 하트풀리… 프레이… 설교 중 갑툭튀 영어 집중도 해친다
- 기적의 치유 간증… 기독인 일상 공유… “SNS, 복음 파종 도구”
- “목사·청년·헌금 3無 제자교육 꿈 못꿔”… 섬 사역 고충 나눈다
- 성경으로 무장한 평범한 성도들은 언제나 강하다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
- ‘2024 설 가정예배’ 키워드는 ‘믿음의 가정과 감사’
- 내년 의대 정원 2천명 늘린다…27년 만에 이뤄진 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