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행사서 쩍 갈라진 방탄유리…머스크는 그 실수까지 팔았다 [최순화의 마켓&마케팅]

2024. 11. 1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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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얼마 전 영국에서는 흰 바탕에 다섯 가지 식품이 줄 서 있는 대형 옥외광고 시리즈가 화제였다. 예를 들어 한 광고에는 귤(Tangerine), 달걀(Egg), 딸기(Strawberry), 크루아상(Croissant), 올리브(Olive)가, 다른 광고에는 토마토(Tomato), 에클레어(Eclair, 크림을 넣은 길쭉한 케이크), 파(Spring onion), 코코넛(Coconut), 느타리 버섯(Oyster mushroom)이 늘어서 있다. 퀴즈 같은 이 광고의 주인공은 다섯 단어의 첫 글자를 조합한 테스코(TESCO)다.

평가 엇갈린 테스코 옥외광고
테스코 광고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먼저 브랜드 이름도 제대로 알리지 못한 돈 낭비라는 혹평이다. 이동하는 사람에게 짧은 순간 노출되는 옥외광고에는 즉각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명료한 내용을 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창의적이고 천재적이라는 평도 많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막연한 광고가 오히려 눈길을 끌고 되새김 돼 결과적으로 테스코란 브랜드를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수가 호감 높이는 프랫폴효과
첫사랑 기억남는 건 미완성 때문
완벽함보다 반전 매력이 인간적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TESCO)의 옥외광고.

미완성된 이야기나 상황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맴도는 현상을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 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어느 날 베를린의 한 식당에서 웨이터가 여러 테이블의 복잡한 주문을 정확하게 기억하며 일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웨이터에게 방금 계산을 마치고 나간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물어보자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미완성 이야기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

골든 아치로 유명한 맥도날드의 ‘방금 우리를 지나쳤어요’ 도로 옥외광고.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다.

자이가르닉은 완료되지 않은 일이 완성된 일보다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퍼즐을 풀도록 한 후 일부 아이에게는 도중에 다른 과제를 주면서 퍼즐을 다 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퍼즐 풀이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은 완성한 아이들에 비해 퍼즐의 내용을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유사했다. 미완성된 작업은 종결 욕구를 자극하고 집중력이 유지되도록 해 더 쉽게 떠올려지는 것으로 설명된다.

일상 속에서 자이가르닉 효과는 빈번하게 발견된다. 극적인 순간 ‘다음 회에 계속’이란 자막과 함께 끝나는 드라마는 미완성의 이야기로 남아 시청자의 머릿속에 맴돈다.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사건은 계속 되새겨지며 기억에 머문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오랜 기간 기억되고 반복적으로 떠올려진다. 테스코 사례처럼 미완성 효과를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한다. 맥도날드는 브랜드 로고의 붉은 바탕과 골든 아치의 일부만 보여주며 ‘바로 오른편에 우리가 있어요’ ‘방금 우리를 지나쳤어요’라고 쓴 도로 옥외광고를 제작해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불완전한 내용을 이해하려는 인지적 사고 과정이 회상 가능성을 향상하는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와도 연결된다. 생성 효과는 수동적으로 얻게 된 정보보다 스스로 찾거나 만들어낸 정보를 더 쉽게 기억하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단어 암기 테스트에서 ‘cold’를 직접 제시할 때보다 ‘hot의 반대말’을 제시했을 때 ‘cold’란 단어를 기억할 가능성이 더 크다. 불완전한 브랜드 이름이나 로고를 본 소비자가 무의식적으로 빈 부분을 메꾸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돼 광고를 회상하는 효과가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완전성은 인간적 매력을 더하기도 한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작은 실수를 하거나 허점을 보일 때 인간미와 호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그렇다. 이를 어처구니없는 실수의 효과란 의미로 프랫폴(pratfall: 엉덩방아) 효과라 한다. 텍사스대학 엘리엇 아론슨(Elliot Aronson) 교수는 실험 참가자를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는 등장인물이 퀴즈 대회에서 정답을 완벽하게 맞히는 동영상을, 다른 집단에는 같은 내용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인물이 실수로 옷에 커피를 흘리는 장면을 더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등장인물의 호감도는 실수 장면을 본 집단에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

행사 실수한 테슬라에 25만 대 선주문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시제품 공개행사에서 금이 간 방탄유리와 이런 실수를 기념해 판매한 티셔츠. [사진 각 기업]

실수 효과는 경영 현장에도 적용된다. 2019년 테슬라의 사이버트럭 시제품 공개 행사에서 일론 머스크는 방탄유리 창문이 어떤 충격에도 끄떡없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제품 디자이너와 함께 금속 공을 던지는 충격 테스트를 시연했는데, 유리가 쩍 갈라지면서 금이 가고 말았다. 당황한 두 사람은 뒷창문을 한 번 더 시험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다음날 머스크는 쇠망치로 트럭 문을 내려치는 테스트로 이미 유리에 충격을 준 상태에서 쇠공까지 던진 것이 문제였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제품이나 기업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도리어 공개 1주일 만에 선주문 25만 대를 받는 성과를 거뒀다. 공개적인 실수가 관심을 끌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냐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여러 번 리허설로 공개 행사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다른 기업과 달리 테슬라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적인 면을 보였다’는 호평도 들렸다. 뛰어난 기업, 천재적인 CEO의 실수가 친근한 이미지를 더한 셈이다. 테슬라는 한술 더 떠 사이버트럭의 금 간 유리를 프린트한 티셔츠를 판매하며 실수를 기념했다.

불완전함의 매력은 완전함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기도 하다. 테스코는 영국 슈퍼마켓 시장 점유율이 30%에 가까운 대표 유통업체이고, 맥도날드의 골든 아치는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유명한 로고다. 공개 행사에서 방탄유리가 깨진 실수를 눈감아준 것도 테슬라라면 그 정도 결함은 충분히 해결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우수성을 인정받는 기업이라면 재치 있는 미완성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더할 수 있다. 완벽한 모범생의 모습에 집착하기보다 가끔은 인간미 있는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순화 동덕여대·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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