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트럼프’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세계 경제 먹구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환율·금리·물가가 높아지는 ‘신 3고(高)’가 한국 경제를 덮칠 것이라는 예상은 벌써 현실이 됐다.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10원을 넘었고, 주간거래 기준 1406.6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으로 2022년 11월 4일(1419.2원) 이후 가장 높았다.
채권 금리도 오르는 추세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3.9bp(1bp=0.01% 포인트) 오른 연 2.939%에 장을 마쳤다. 전날 미국 채권시장이 약세로 마감한 영향이다. 시장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및 이민자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채권 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트럼프 재집권에 ‘신 3고’라는 말이 나오는 건 그가 내건 경제정책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관세 인상과 세금 감면이다. 모두 금리 상방 자극 요인이다. 트럼프는 이미 수입품에 10~20%의 관세, 중국산에 대해선 평균 60%의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수입품 관세를 올리면 물가가 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트럼프가 관세 인상을 밀어붙인다면 미국 물가상승률이 2024년 3%에서 2025년 3.6%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가 오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세금 감면도 세수가 줄면 재정적자가 커지고, 이에 따른 국채 발행이 늘어나 금리 상승 압박을 받는다. 미국의 고금리는 강달러를 의미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시나리오 일부가 이미 진행 중”이라며 “미 연준이 지난 7일 금리를 내렸지만 12월 회의에서 금리 유지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미 달러 가치는 상승했다”고 전했다.
13일 오후 4시 기준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지수는 106.05를 기록했다. 달러화지수가 106을 돌파한 건 지난 6월 이후 처음이다. 강달러는 한국 입장에선 원화 약세를 뜻한다. 요즘 원·달러 환율은 자고나면 최고치다. ‘1달러=1400원’이 뉴노멀이 됐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기껏 목표치로 떨어뜨린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다시 들썩이게 할 수 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글로벌리스크팀장은 “트럼프 트레이드에 따라 미국으로 자산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가 강해지면서 환율이 올라간다”며 “한국도 여기에 연동된다. 달러 강세와 국채 금리 상승이 지속되면서 국내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시장은 트럼프의 공약을 선반영한 상태지만 지속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트럼프는 1기 때도 지금과 비슷한 정책 기조였다. 중국 견제를 위해 관세를 올렸다. 법인세도 대폭 감면했다. 그때도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리가 급등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전체 임기를 놓고 봤을 땐 금리도, 달러 가치도 하락했다. 이 팀장은 “(신 3고라든지) 금융시장 변수는 집권 초반 가장 강하게 영향을 주겠지만 조금 지나면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도 “트럼프 1기 때도 트럼프 트레이드가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신 3고의 중심축은 고금리다.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11월부터 퇴임한 2021년 1월까지의 미 국채 10년물 금리 추이를 보면 당선 직후 올랐다가 2019년 들어 1%대로 다시 떨어진 걸 알 수 있다. 관세를 올리면 소비자 판매 가격이 올라 물가가 상승할 것 같았지만 이 시기 미국 소비자물가는 2% 안팎 수준을 유지했다. 관세 부담을 대부분 기업이 졌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부과된 관세만큼 판매가를 올리지 못했다. 안 팔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원가 부담에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됐고, 미·중 무역 갈등이 본격화됐던 2018년 미국 증시는 부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추진력과 실행력을 갖춘 리더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 중 하나는 그가 사업가라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헤지펀드 키스퀘어 스콧 베센트 최고경영자는 지난달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사업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의 보편적 관세에 대해 “확대해서 축소하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보편적 관세로 협상력을 높인 다음 무역 파트너에게 규제 완화를 요구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이 팀장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그는 “트럼프의 방식은 크게 목표를 세워놓고 협상을 통해 일정한 합의안을 도출한다. 한국으로선 협상의 여지가 있는 셈”이라며 “트럼프 1기 때도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하면서 힘들었다. 이게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지금 분위기가 트럼프 1기 때 전반기 2년과 흡사하다. 그때를 반추해보면 속도감 있게 공약 이행 모션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1기 때보다는 세련된 모습으로 공약을 진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그는 “관세를 높이는 일이 미국 국민 삶의 질에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단 공약은 했지만 시행은 협상의 영역이므로 여론 탐색이나 조성 등의 작업이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인호 이광수 김준희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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