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플랫폼 유니콘, 이유 있는 ‘엑소더스’
미국 증시를 노크하는 국내 플랫폼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늘고 있다. 토스를 운영하는 금융 플랫폼 기업 비바리퍼블리카가 미국 나스닥 상장으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여행 플랫폼 야놀자·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미국 증시 상장을 저울질 중이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막대한 상장 주관·유지 비용 등은 과제로 지목된다. 시장 일각에선 우리 증시가 혁신 기업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제기된다.
적정 기업가치 산출 우려
최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이하 토스)가 국내 상장 대신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토스는 국내 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등에 국내 상장 작업을 중단하겠단 의사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토스가 미국 증시를 택한 것은 최근 케이뱅크 논란이 결정적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뱅크는 지난 10월 10~16일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흥행에 참패하며 상장 절차를 잠정 중단했다.
토스가 어떤 방법으로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할지도 관심사다.
미국 상장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첫째, 국내 법인을 100% 보유하는 미국 법인 설립 후 이를 상장하는 플립(Flip) 전략이다. 플립은 국내 법인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해외 신설 법인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내 법인 주식을 해외 법인에 양도해 해외 법인 신주를 받는 식이다. 플립 구조 기반 미국 직상장 교본으로 불리는 곳이 쿠팡이다. 둘째, 해외주식예탁증서(DR) 상장이다. 예탁증서는 국내 주식 시장에 상장된 주식(본주)은 그대로 두고 해당 본주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증서다. DR을 미국 증시에서 발행하면 ADR, 유럽 증시에서 발행하면 EDR이 된다. 이 가운데 현재로서는 ADR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플립 구조 전환을 통한 미국 상장 땐 해외 법인에 주식 양도가 발생하므로 해당 주식 가치만큼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기존 주주들의 과세 부담을 생각하면 플립 구조 상장은 선뜻 고려하기 힘든 선택지일 것”이라 봤다.
토스를 비롯 야놀자, 무신사 등 국내 플랫폼 유니콘이 줄줄이 미국 증시 상장을 노크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업가치 제값 받기다. 이들 유니콘 기업은 기존 전통 산업과 결이 구분되는 ‘플랫폼’ 정체성을 강조한다. 가령, 비바리퍼블리카는 은행, 증권, 결제, 자산 관리 등 모든 금융 서비스를 단일 플랫폼인 토스로 제공하는 ‘원앱(One-app)’ 전략을 편다.
국내에서는 비교기업 선정이 마땅찮다. 무엇보다 국내 핀테크 기업은 플랫폼 기업으로 평가받기보단 규제 산업인 금융 업종으로 분류된다. 금융 업종으로 묶였다간 미래 성장성을 평가받기 힘들고 플랫폼 상장기업도 드물다. 케이뱅크 역시 카카오뱅크와 SBI스미신넷뱅크, 뱅코프 등을 비교기업으로 묶어
주가순자산비율(PBR) 평균치 2.56배를 적용했지만, 국내 금융주 PBR이 워낙 저조해 고평가 논란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무신사나 야놀자 역시 마찬가지다. 무신사는 국내 패션 기업을, 야놀자는 국내 여행 기업을 각각 비교기업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들 업종은 심각한 저평가 상태다. 지난해 기준 섬유·의복 기업 주가수익비율(PER)은 9.25배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여행 업종 하나투어도 선행 PER 11배에 불과하다.
상장 유지 비용도 눈덩이
다만, 중장기 관점에서 미국 상장 ‘손익계산서’를 뜯어보면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상장 추진 비용과 상장 후 유지 비용이 만만찮다. 쿠팡은 지난 2021년 IPO 당시 골드만삭스, JP모건, 앨런앤컴퍼니 등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진행했다. 당시 상장 주관 비용으로만 2000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다. 네이버웹툰 역시 상장 비용으로 수백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뿐 아니라, 나스닥 최초 상장 땐 등록비로만 29만5000달러(약 4억원)를 내야 한다. 이후 상장 주식 수에 따라 최소 5만2500달러에서 최대 18만2500달러의 상장 유지비도 매년 내야 한다.
상장 유지를 위한 제반 비용 부담도 무시 못할 변수다. 미국은 거래소 상장 심사 요건이 한국보다 덜 까다로운 대신, 문제가 생기면 기업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내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를 강조하고 이를 어길 경우 경영진에 대한 형사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자칫 규정 준수에 소홀했다간 하루아침에 기업이 망할 수도 있어 법무·회계 업무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는다.
한때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했던 재무 담당 임원은 “투자설명서(Offering Circular)를 만드는 데만 최소 수십억원이 들더라”며 “분기에 한 번씩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니 상장 유지 비용이 감당이 안 돼 결국 미국 상장을 접었다”고 돌아봤다.
미국 시장에서 중장기 성장 전략을 투자자에게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2000년대 상장한 두루넷과 미래산업·하나로텔레콤·이머신즈·웹젠·픽셀플러스 등은 모두 상장폐지됐다. 네이버웹툰 미국 법인 ‘웹툰엔터테인먼트’는 나스닥 입성 이후 주가가 공모가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쳐 집단소송 위기에 놓였다.
속을 들여다보면 국내 기업이 미국 등 해외 증시에 직접 상장해 조 단위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경우도 드물다. 조 단위 이상 시가총액은 쿠팡, 네이버웹툰, 일본에 상장된 넥슨 등 3개 회사뿐이다. 이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국내 기업이 해외 직상장한 경우로 보기는 힘들다. 쿠팡은 2010년 미국에 법인을 설립했고 네이버웹툰도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으므로, 미국 회사가 미국 시장에 상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넥슨도 2005년 본사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플립한 후 2011년 도쿄 증시에 상장했다. 법적으로는 일본 기업이 일본 시장에 상장한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증시가 혁신 기업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금 공급 체계 완결성을 높이고 상장 유인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갈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내 유니콘 기업이 국내 상장을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유인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은 국내 증시 발전에 부담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대안으로 밸류업 정책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평가 환경 개선, 세제 혜택 부여, 유연한 규제 환경 조성 등 밸류업 정책으로 기업 성장과 시장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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