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더 빠르고 맛있고 힙하다
# 중국의 스타필드라 불리는 복합쇼핑몰 ‘허성후이’. 겉모습만 보면 평범한 한국 쇼핑몰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매장 안에 들어가면 바로 ‘신세계’가 펼쳐진다. 매장 곳곳에서 ‘왕훙’이라 불리는 중국 크리에이터가 틱톡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거창한 장비도 없다. 소형 조명 장치를 부착한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매장 곳곳을 오가며 음식을 보여주고 홍보한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떠든다.
숏폼 플랫폼인 ‘틱톡’은 라이브를 켜면 사용자 주변에서 진행되는 개인 방송이 송출된다. 자연스레 매장을 홍보하는 개인 방송이 연속해서 나온다. 개인 방송 밑에는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할인 쿠폰 링크가 띄워져 있다. 링크를 누르면 바로 쿠폰이 지급된다. 숏폼을 통한 모객은 매장, 왕훙,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다. 매장은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쉽게 고객을 끌어올 수 있다. 왕훙은 방송을 보고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의 결제 금액 중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다. 소비자는 당연히 바로 매장을 가는 것보다, 크리에이터의 방송을 10초 보고 할인을 받는 편이 이득이다.
중국 비즈니스 학습 여행 전문 기업 ‘만나통신사’의 윤승진 대표는 “개인 크리에이터의 매출 대부분이 협찬 광고 수익인 다른 국가와 달리, 중국은 콘텐츠를 통한 판매 수익을 공유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대세다.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조 단위의 연매출을 내는 사례가 나올 정도다. SNS를 활용한 유통 모델이 잘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유통가의 빠른 변화를 표현하는 말이다. 말 그대로 중국 유통 산업은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QR 결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얼굴만 보고 결제가 가능한 ‘안면인식 결제’까지 기술 진보가 이뤄진 상태다. 신기술 도입, SNS 판매, IP 활용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유통가를 월등히 앞선다. 유통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이 한국보다 더 빠르고, 힙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매경이코노미는 만나통신사와 함께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 유통 현장을 방문, ‘CHINA’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Cheap가성비가 곧 왕이다
최근 중국 유통가를 관통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가성비’다. 중국 경기가 침체되면서 가격이 저렴한 브랜드가 인기를 끈다. 선두 주자는 루이싱커피(Luckin coffee)다. 초창기부터 온라인 온리(online only) 주문, 커피 배달 서비스, 4+4 마케팅(4잔 주문 시 4잔 공짜) 등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스타벅스 대항마로 떠오른 기업이다. 단순히 싸게 파는 매장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원두 로스팅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R&D 투자로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스타벅스, 팀홀튼, 코스타커피 등 외산 브랜드에 밀리지 않는다. 동시에 사용성이 뛰어난 앱, 활발한 할인 서비스, 고급 주류 ‘마오타이’와의 협업 행사 등 활발한 마케팅을 진행한다. 올해 3분기에만 매출 1조9655억원을 거뒀다. 순이익률은 13.8%에 달한다.
루이싱커피의 뒤를 다양한 신생 브랜드가 바싹 뒤쫓는다. 매너커피(Manner coffee), 헤이티(Heytea), 패왕차희 등이 대표적이다. 매너커피는 2015년 상하이에서 설립된 브랜드다. 가장 비싼 커피도 가격이 30위안(약 5800원)을 넘지 않는다. 헤이티와 패왕차희는 ‘밀크티’가 주력이다. 두 브랜드 모두 가성비는 물론 독특한 콘셉트로 중국 MZ세대 사이서 정평이 나 있다. 헤이티는 과육과 크림치즈 등이 첨가된 독특한 맛의 음료로 인기를 끈다. 패왕차희는 ‘중국풍’ 디자인을 적극 내세우며 ‘궈차오(애국 소비)’ 트렌드를 선호하는 젊은이를 사로잡았다.
이들 토종 브랜드에 밀려 스타벅스, 팀홀튼 등 외국 브랜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내 스타벅스 매출은 최근 들어 계속 감소 추세다.
High Technology 韓보다 빠른 첨단기술 도입
중국 유통가의 첨단기술 도입 속도는 한국보다 월등히 빠르다. 대표적인 예가 슈퍼형 마트 ‘허마셴셩’이다. 허마셴셩은 중국 기업 알리바바가 만든 신선 식품 브랜드다. 허마셴셩 매장 내부는 한국 마트·슈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돋보이는 곳은 천장. 천장에 달린 레일로 수많은 바구니가 오간다. 바구니에는 배달로 주문한 고객의 물건이 담겨 있다. 고객이 배달로 주문하면, 리스트에 담긴 물건을 점원이 바구니에 담아 근처에 있는 레일에 올려 보낸다. 바구니는 레일을 따라 배달 기사가 모여 있는 장소로 이동된다. 이후 기사는 주소를 보고 바로 물건을 배송한다. 온라인 매출 비중이 50%를 넘을 정도로 배달 문화가 정착했다. 국내서도 여러 마트 업체가 허마셴셩 배달 모델을 도입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계산대로 걸음을 옮기면 ‘기술’ 중심 운영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예 사람이 없다. 전 과정을 키오스크가 대체한다. QR을 넘어 ‘안면인식 결제’까지 지원한다. 알리페이에 사진을 등록, 카드·계좌와 연동하면 끝이다. 키오스크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하고 약 2초 안에 모든 결제를 마친다. 지갑, 스마트폰 없이 몸만 가도 결제가 가능하다.
베이징 798 예술구 역시 ‘하이테크’의 첨병으로 꼽힌다. 798 예술구는 중국 정부가 공장이 모여 있던 산업 단지 일대를 예술 중심가로 탈바꿈시켜 만든 지역이다. 서울 성수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곳은 길거리에 무인 판매대가 돌아다닌다. 무인 차량이 홀로 움직이며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판매한다. 돈은 QR 또는 안면인식 결제로 간단히 지불하면 된다.
만나통신사 여정에 참여한 임성식 부대옥 대표는 “O2O 서비스나, 푸드테크, 상업용 로봇 기술의 발전 속도를 직접 체감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푸드테크를 활용할 방법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IP POWER IP, 브랜드 적극 활용
인기 IP를 적극 활용하는 점 역시 눈에 띈다. 캐릭터, 굿즈 등을 좋아하는 중국 젊은 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협업을 적극 진행한다. 베이징 내 최고급 백화점인 ‘SKP-S’와 키덜트족을 위한 편집숍 ‘팝마트’는 중국 유통가의 IP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SKP-S는 중국 SKP백화점이 운영하는 최고급 매장이다. 중국 내 젊은 부자를 겨냥해 만든 점포로, 매장 전체가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로 가득 들어찼다. SKP-S의 가장 큰 특징은 ‘인테리어’다. SKP백화점은 점포 내부 디자인을 한국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에 일임했다. 최고급 백화점이, 유럽 명품이 아닌, 한국의 신생 브랜드에 인테리어를 맡긴 것은 흔치 않은 상황이다. 기존 SKP 백화점 내부 디자인을 젊은 층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 젊은 소비자 관심을 끌기 위해 중국 MZ세대 사이서 가장 인기 많은 젠틀몬스터와 협업했다. 덕분에 SKP-S 매장은 기존 백화점과는 다른 분위기를 낸다. 매장 전체 배경 색깔이 검은색이다. 글씨는 전부 빨간색 LED로 통일됐다. 각 매장에 걸린 간판도 동일한 규격이다. 윤승진 대표는 “SKP-S는 디지털 신인류를 위한 쇼핑 공간이라는 콘셉트 아래 만들어진 매장이다.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도 동일한 매장 간판으로 통일해야 한다. 현재 베이징에서 가장 트렌디한 매장”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틀을 부순 새로운 형태의 매장도 속속 등장 중이다. 그중에서도 ‘하메이’를 눈여겨볼 만하다. ‘창고형 뷰티 편집숍’이다. 베이징의 ‘핫플’로 꼽히는 싼리툰에 있는 매장은 평일 오후에도 20대 여성 고객으로 붐빈다. 하메이는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 샘플 제품을 노출 콘크리트와 창고 형태 매장에 진열한 매장이다. 상품 가짓수가 매우 다양하다. 어디서나 구매하기 쉬운 베스트셀러 상품이 아닌, 희소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써봐야 아는 화장품 특성을 감안해 5㎖ 단위 소용량 샘플 위주로 판매한다. 용량당 가격을 비교하면 저렴하지 않아도 샘플이라 용량 자체가 적으니 싸게 느껴진다. 주머니가 가볍고 다양한 제품을 체험하고 싶은 MZ세대 고객에게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배경이다.
App 결제도 직원 관리도 앱으로
중국 매장에 가려면 지갑 대신 ‘스마트폰’이 필수다. 결제도, 주문도 ‘앱’을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카드 대신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결제 플랫폼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주문도 종업원이 받지 않는다. 책상에 붙어 있는 QR을 스캔, 바로 주문한다.
직원 관리도 ‘앱’으로 해결한다. 외식 매장 곳곳에 직원이 목걸이나 머리띠에 QR코드를 크게 그려놓고 고객에게 찍어달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직원마다 QR코드가 다르니, 어느 직원을 통해 구매가 이뤄졌고 매출이 올랐는지 성과 평가가 정확하게 이뤄진다.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 대응(CRM)뿐 아니라 직원 관리(HRM)도 더욱 효율화된 것이다.
한국 유통 미래 알고 싶다면…‘중국을 봐라’
A. 크리에이터가 돈을 버는 구조가 다른 게 핵심이다. 다른 나라는 콘텐츠 조회 수를 통해 수익을 얻거나, 협찬 형식의 광고 수익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은 다르다. 크리에이터인 왕훙이 콘텐츠를 통해 물건을 직접 판매한다. 이 수익을 매장과 공유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이 수익은 광고 수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조 단위 연매출을 내는 사례도 등장했다. 그러면서 콘텐츠 크리에이터 중심의 시장이 숏폼의 등장과 함께 커머스 크리에이터 중심의 시장으로 옮겨 가게 됐다. 한국 역시 크리에이터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유통 채널이 되는 세상이 곧 펼쳐질 것이다.
Q. 유통 분야에서의 기술력은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 보인다.
A. 중국의 변화와 혁신은 사회적 합의보다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일단 빠르게 도입하고 시장 반응을 본다. 먼저 도입해보고 나오는 부작용을 해소해가는 식으로 혁신이 이뤄진다. 실제로 안면인식 결제는 한국도 기술력은 충분하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있어 기업들이 조심스러워한다. 중국이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체제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중국 외식업과 한국 외식업 경쟁력을 비교하자면.
A. 중국 시장은 규모가 크고 경쟁도 치열하다. 단일 브랜드 매장 수가 만 개를 넘어가고, 조 단위 매출을 내는 외식 기업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대형 업체들이 열띤 경쟁을 벌이면서 중국 소비자 기준을 높이는 모양새다. 여기서 확보한 경쟁력을 토대로 최근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 외식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역시 알리, 테무만 걱정할 게 아니다. 중국 외식 브랜드 진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베이징 =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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