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명을 생매장시킨 리더의 불통과 무능

화성시민신문 오정환 2024. 11. 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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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신뢰 잃은 리더십의 결과는조직의 붕괴, 회사의 몰락, 나라의 패망

[화성시민신문 오정환]

대학에 입학하니 전국 곳곳 출신들이 동기가 됐다. 부산, 진주, 목포, 대전… 사투리가 특히 심한 친구의 말은 알아듣지 못해 종종 감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팔려 간 소도 그랬을 것이다. 강원도 사투리로 말을 배운 소에게 전라도 사투리는 완전 외국어나 다름없을 터였다. 박성우 시인의 <누가 더 깝깝허가이>는 이런 모습을 아주 재밌게 표현해 놓았다.

강원도 산골 어디서 어지간히 부렸다던 일소를
철산양반이 단단히 값을 쳐주고 사왔다
한데 사달이 났다 워워 핫다매 워워랑께
내나 같은 말일 것 같은데
일소가 아랫녘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한다
호미 어찌야쓰까이, 일소는 일소대로 깝깝하고
철산양반은 철산양반대로 속이 터진다
일소를 판 원주인에게 전화를 넣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저번참과 똑같단다
그 소, 날래 일 잘햇드래요
- <누가 더 깝깝허가이> 전문, 박성우

사용하는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된다면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말을 쓰는데도 통하지 않는 경우다. 벽창호 같은 사람 말이다. 자기만 옳다고 믿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이런 일은 지적 겸손성이 낮은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데,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지적 겸손성이 높은 사람은 생각이 유연하다.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지적 겸손은 실수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 의견을 한 번쯤 생각하도록 하고 자신에게 무슨 결점이 있는지, 단점이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학습에 민첩하기 때문이다.

조나라 군대가 장평 전투에서 진나라 백기 장군에게 패하고 40만 명이 생매장당한 일이 있었다. 이 참담함 뒤에는 남의 말을 듣지 않은 리더십이 있다. 리더가 불통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여준 사례다.

4월 진나라 장수 왕흘이 조나라를 공격했을 때 조나라는 염파를 장수로 삼았다. 염파는 보루를 견고히 하고 진나라를 기다렸다. 진나라가 여러 차례 싸움을 걸었으나 조나라 군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 승상 응후는 사람들에게 천금을 가지고 조나라로 가서 "진나라가 싫어하는 것은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뿐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쉽고 또 항복할 것이다."하고 이간질을 하게 했다. 조왕은 염파가 군사를 많이 잃고, 군대가 여러 차례 패했는데도 오히려 보루를 지킨 채 나가 싸우려 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있었는데 진나라 이간질을 듣고는 염파를 여러 차례 나무랐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장군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조괄 어머니는 조괄이 출발하기에 앞서 왕에게 글을 올렸다. "조괄을 장군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제가 괄의 아비를 모셨을 때 괄의 아비는 장군으로 있었습니다. 장군은 직접 먹여 살리는 부하가 수십 명이나 되었고 친구는 수백 명에 이르렀습니다. 대왕이나 왕족들에게서 하사받은 물품은 모조리 군리(軍吏)와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출정 명령을 받은 날부터는 집안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괄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으나, 군리 가운데 괄을 우러러보는 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왕께서 내리신 돈과 비단은 집에다 저장하고,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사들였습니다. 대왕께서는 조괄이 어찌 아비와 같으리라 생각하옵니까? 아비와 자식은 마음 쓰는 것부터가 다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괄을 장군으로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괄의 어머니가 주장하는데도 왕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미는 더는 말을 말라. 나는 이미 결정을 하였노라."

조괄은 장군으로 임명되자 군령을 모조리 뜯어고치고 군리들을 전부 교체하였다. 군중에 도착한 조괄은 바로 출병하여 진나라의 군대를 공격했다. 진나라 군대는 일부러 패한 척 도망가면서 두 갈래로 기병을 숨겨 퇴로를 끊고자 했다. 조나라 군대가 승기를 몰아 진나라 보루에까지 추격했다. 보루는 견고하여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자 진나라 기병 2만 5천이 조나라 군대 퇴로를 끊고, 또 기병 5천이 조나라 보루 사이를 끊으니 조나라 군대는 둘로 나뉘고 식량 보급로가 끊겼다. 이어 진나라는 가벼운 경병을 내어 조나라를 공격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조나라는 보루를 쌓고 수비하면서 구원병을 기다렸다. 조나라의 식량 보급로가 끊어졌다는 보고를 받은 진왕은 군대를 장평으로 보내 조나라 구원병과 식량 보급로를 차단했다.

9월이 되자 46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한 조나라 군사들은 몰래 서로를 죽여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조나라 군대는 견디지 못하고 진나라 보루를 공격하여 탈출하려고 부대를 넷으로 나누어 4, 5차례 공격했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조나라 장군 조괄은 정예병을 뽑아 몸소 육박전을 벌였지만 진나라 군대는 활을 쏘아 조괄을 죽였다. 조괄의 군대는 패했고, 병사 40만은 진나라에 투항했다. 진나라는 속임수를 써서 40만 명을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이고, 나이 어린 240명만 남겨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전후 목을 베거나 포로로 잡은 수가 45만 명이었다.

신뢰를 잃은 조괄과 남의 말을 듣지 않은 임금 때문에 45만 명이 죽었다. 리더의 불통은 곧 조직의 붕괴, 회사의 몰락, 나라의 패망으로 이어진다. 리더가 사익을 챙기고 불통한 결과가 너무나 참담하다. 우리는 괜찮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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