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생 백발인 저, 아침마다 니체와 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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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순 기자]
'땅 따라라라! 땅 따라라라!'
새벽부터 알람 소리가 요란하다. 가장 자극적인 소리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깜짝 놀라 눈을 뜨지만 정작 의식을 깨우는 것은, 뻣뻣한 몸의 통증이다.
"아이고! 이놈의 목 디스크..."
혼잣말을 크게 한 뒤 천천히 목을 돌리고 팔을 뻗어가며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노쇠한 몸과 30여분 씨름을 하고 나서야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홍삼 한 잔을 마시며 오늘도 잘 견디라고 몸을 다독인다. 커피 한 사발에 우유도 듬뿍 담아 들고 책상에 앉는다. 연인 같은 까페라떼를 마시며 나 자신과의 담소를 나눈다. 세상이 깨어나기 전, 고요하고 검푸른 지금이 가장 정직하게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간 뭘 하고 살았나... 매번 느끼는 허기
새로운 하루의 설렘은 잠시, 지금부터 문제다. 책상 위에는 어제 끝내지 못한 과제가 나를 째려본다. 마음이 바빠진다.
▲ 아침의 커피와 독서(자료사진). |
ⓒ freestocks on Unsplash |
오전 8시, 가장 차분하고 몰입도가 높은 시간임에도 그런데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몇 장을 되돌려 읽는다. 역시나 안개 속이다. 소리 내서 읽어도 본다.
저자는 "인식이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 그것은 무의미한 인식이다"라고 나를 몰아세운다. 그의 가치와 논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 삶에 녹여내는 건 첩첩산중, 멀고도 아득하다.
언뜻 오만한 이 천재의 현학적 표현 속에 품고 있는 함의를 캐내고 싶다. 곱씹는 성찰을 통해 비늘을 벗기고 가시를 발라내 부드러운 속살만 삼켜야 한다.
그만큼 이해를 해야 깊이 있는 서평을 써낼 텐데, 계속 읽은 곳을 되풀이해 읽으며 고민고민하다 보니 앞이 깜깜해진다. 머리 팽팽 돌아가는 젊은 회원들한테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다.
내가 다니는 복지관 글쓰기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이다(관련 기사: 내 인생 풀면 책 한 권(내풀책) https://omn.kr/27fc4 )
수업에서 글쓰기 주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는 두서없는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근 70에 가까운 나이, 그런데 그동안 무얼 하고 사느라 바빴다고 저축해 둔 배경 지식이 그렇게도 전무한지... 매번 허기를 실감한다. 빈약한 내 영혼이 안쓰러워져서 시급하게 이 책 저 책 읽고 또 읽는다.
독서토론도, 글쓰기도 벽에 부딪힐 때마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닌데 지키고 있는가 싶어 매번 안절부절 한다. 가끔은 나 자신을 다그치기도 한다. '내가 미쳤지! 뭘 믿고 일을 이렇게도 벌려 놨단 말인가!'
그러다가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맹숭맹숭한 날을 보낼래?"
그러면 답이 바로 나온다. 그건 싫다.
나이 만큼 성숙해지려면 필요한 것
나이 듦과 성숙은 저절로 비례하지는 않는다. 삶의 자세에 따라 각자 자신의 빛깔을 만들어 갈 뿐이다.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서서히 스러져가는 노쇠밖에 없다. 세월과 함께 겉(육체)은 시들고 쇠락한다.
주변을 보면, 누군가는 쇠락하는 노년의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 자기 자식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기도 한다. 이 모임 저 모임에서 친구들과 질펀하게 놀아보기도 하지만, 매번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벌써 허전한 그 무언가가 따라온다. 덧없음이다.
▲ 글쓰기 수업시간 숙제를 읽고 있는 나를 선생님이 찍어주셨다 |
ⓒ 주일순 |
내 안에 딱딱하게 자리 잡고 있는 편견을 깨고 더 넓고 풍요로운 시야를 향하는 몸짓이어야 한다.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사유 과정을 거치면서 영글어 가는 영혼이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킬 가장 의미 있는 취미가 나는 '독서와 글쓰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동안 수영, 골프, 바느질, 외국어 공부, 식물 가꾸기 등 수많은 취미를 거친 후에 내린 결론이다. 비록 이 또한 망망대해 속에 홀로 떠있는 작은 돛단배처럼 위태롭고 고단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노년의 취미라 함은 좋아하는 일과 한 몸이 되어, 하루하루 스스로 넉넉해지고 즐겁고 보람된 날들로 채워가는 것이어야 하리라. 내가 택한 독서 토론과 글쓰기는, 위태롭고 고단하지만 즐거운 보람이 돼 준다.
비록 볼품없는 백발의 학생이지만, 그 눈동자만은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의 맑고 흥미진진한 열정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니체를 만나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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