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의식 도중 딸 잃은 의사, 기괴한 부성애가 공포스럽다
[원종빈 영화전문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마의식 도중 딸 '소미'(이레)를 잃은 흉부외과의사 '승도'(박신양). 장례식장에서 그는 직접 집도한 딸의 심장 이식 수술 과정에서 잘못된 것은 없는지, 딸이 왜 수술 직후 귀신에 씐 것처럼 이상해졌는지 되짚는다. 그러던 중 승도는 죽은 딸의 목소리를 듣고, 장례식장에서 그녀의 발자국을 보고, 딸의 시체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보며 소미가 아직 살아있다는 편집증에 빠져든다.
한편, 구마 의식을 거행했던 신부 '해신'(이민기)도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거듭 복기한다. 분명 악마를 퇴치했는데, 소미가 돌연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해신은 이름마저 잊혔던 악마가 소미에게 깃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늦게나마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소미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 영화 <사흘> 스틸컷 |
ⓒ 쇼박스 |
물론 대중의 선택을 받은 오컬트 영화는 여전히 일부에 불과하다. 다만, 이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오컬트라는 장르를 한국화한 것이다. <검은 사제들>은 한국을 배경으로 가톨릭 엑소시즘 장르에 충실했고, <곡성>은 한국 특유의 무속 문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냈으며, <파묘>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속설을 풍수지리 오컬트로 풀어내면서 공감을 끌어냈다.
현문섭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사흘>은 그 연장선에 있다. 한국 특유의 시공간적 배경과 가톨릭 엑소시즘과의 접점을 만들었다. 부성애라는 콘셉트를 살려 구마 사제가 아닌 주인공을 중심으로 기존 오컬트물과의 차별점도 부각했다. 그러나 <사흘>은 위 세 작품과 같은 반열에 서지 못한다. 장르적 측면에서 과욕을 낸 나머지 아이디어를 지탱할 기반과 결말로 향하는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 영화 <사흘> 스틸컷 |
ⓒ 쇼박스 |
반면 <사흘>은 한국적인 정서 그 자체에 주목한다. 한국적인 문화와 가톨릭 교리 간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 제목으로 사용된 '사흘'이라는 소재가 대표적이다. '사흘'은 한국 특유의 삼일장과 기독교에서 예수가 죽은 후 부활하기까지 걸린 기간 모두를 뜻한다. 이처럼 상이한 문화권에서 생사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을 접합시킨 덕분에 <사흘>은 이전 작품과는 다른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삼일장이라는 문화를 시공간적으로 구조화한 각본도 인상적이다. <사흘>은 1일 차 운명, 2일 차 입관, 3일 차 발인 세 챕터로 나누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덕분에 사흘이라는 시간 제약 속에 악마가 부활하는 과정과 이를 막으려는 사투 간의 긴장감은 극대화될 수 있다. 공간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장례식장으로 배경을 한정하면서 오컬트물다 운 서늘함을 극대화했다.
▲ 영화 <사흘> 스틸컷 |
ⓒ 쇼박스 |
부성애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는 예상을 벗어나는 공포감을 선사하기에 더욱 섬뜩하다. 사실 겉보기에 <사흘>에서 공포의 대상은 소미여야 한다. 악마에 씐 그녀가 온갖 악행이나 기묘한 사건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예상 가능한 장면도 등장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을 고조하는 역할은 소미가 아니라 승도에게 넘어간다. 처음에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딸을 향한 사랑이 강조된다. 하지만 슬픔이 깊어질수록 부성애가 극단적으로 발현되고, 악마가 승도에게 씌운 듯한 연출이 등장하며 서스펜스가 극대화된다. 편집증적인 묘사는 박신양의 연기력 덕분에 더욱 안타까우면서도 기괴하다.
부성애를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은 장르적 목적과도 부합한다. 기독교 기반의 오컬트 물에서는 결국 사람의 믿음이 가장 큰 무기로 등장하곤 한다. <사흘>도 다르지 않다. 소미에게 깃든 악마를 무찌르는 힘이 단순히 구마 사제의 기도가 아니라, 올바른 형태의 사랑, 곧 딸에 대한 믿음이라는 암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든 사건의 원인이 딸을 살리려는 잘못된 부성애였다는 점도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양면성을 오가는 한 끗
승도가 '한 끗 차이'로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편집증적인 아버지를 오가는 묘사는 <사흘>을 관통하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해신의 서사만 봐도 그렇다. 동시에 극 중 오컬트적인 장치에서도 '한 끗 차이'의 모티브를 확인할 수 있다. 소미에게 깃든 악마는 '이그마엘'로 밝혀진다. 그는 나사렛의 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악마로, 형과 함께 온 마을 사람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다가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에 의해 붙잡혀 이름도 잊히고, 검은 심장 안에 봉인당했다. 그와 동시에 자기 심장을 가진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날 때, 그도 부활한다는 전승도 남겼다.
이그마엘과 관련된 묘사와 전승은 사실 익숙하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까지의 여정을 고스란히 따른다. 그저 주인공이 예수가 아닌 악마일 뿐이다. 이는 결국 일종의 비유처럼 보인다. 전승의 주인공만 바꿔도 부활까지의 사흘이 기쁨과 환희가 아닌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듯이, 그 어떤 사랑도 중용의 미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하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한 끗의 중요성은 <사흘>의 만듦새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퇴마라는 장르적 쾌감이 기대 이하다. 구마 의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부각하다 보니 흐름과 분위기가 예상과 다를 수 있다. 클라이맥스인 후반부 보일러실 장면도 <검은 사제들>처럼 숨 막히고 온몸이 조여 들어가는 듯한 구마 장면은 아니다. 그저 라틴어 기도문을 읊는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전문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무엇보다도 색다른 오컬트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과했던 나머지, 전체 그림이 뒤틀려 버린 느낌이 든다. <사흘>은 이그마엘과 러시아 정교회 간의 연결고리를 등장시키면서 한국 오컬트 영화에서 흔하지 않았던 그림을 보여준다.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롭다. 불교, 무속, 가톨릭, 일본과 태국 귀신까지는 다뤘어도 정교회 관련 소재가 한국 영화에서 등장한 적은 거의 없으니까.
문제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러시아 마피아 클럽에서 펼쳐진 이그마엘 소환 의식도 같이 보여준다. 그런데 그 의식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속 재현 영상처럼 조잡하다 보니 앞서 쌓아 올린 서스펜스가 일거에 깨지고 만다. <파묘> 속 굿 장면이 영화 속 긴장감을 강화한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다.
결국 이 장면을 기점으로 <사흘>은 결말까지 극을 세련되게 끌고 갈 동력을 잃어버린다. 이 한 끗을 살렸더라면 앞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검은 사제들>과 유사한 포지션을 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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