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학대 의혹 은폐’에 英성공회 수장 사임…"성공회의 위기"
수십 년간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는 영국 성공회(국교회)의 수장이 결국 사임했다.
13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저스틴 웰비(68) 캔터베리 대주교는 전날 발표한 사임 성명에서 “물러나는 것이 영국교회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3년 (사건이) 경찰에 통보됐다는 말을 듣고 적절한 해결책이 뒤따를 것이라고 잘못 믿었다”며 “개인적으로나 공식적으로 책임져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사임은 지난 7일 공개된 조사 보고서의 여파다. 총 251페이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교회가 교회에서 활동하던 변호사 존 스미스의 아동 학대 의혹을 알고도 감춘 것으로 나타났다. 스미스는 1970~1980년대 영국의 기독교 여름 캠프에서 만난 아동 30명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이 중 8명에게 1만4000번의 채찍질을 하거나 3년간 2명에 8000번의 매질을 하는 등 가학적인 구타를 일삼았다고 BBC가 전했다. 이후에도 그는 남아프리카로 이주해 그곳의 기독교 여름 캠프에서 만난 13~17세 사이 남자 아동 최대 100명을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은 2017년 채널4뉴스에서 처음 보도된 후에야 수사 선상에 올랐다. 다만 용의자인 스미스가 2018년 75세 나이로 사망하면서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보고서는 웰비가 캔터베리 대주교로 취임했던 2013년 이 사건을 보고받아 국교회 최고위층과 함께 경찰에 공식적으로 신고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적절한 시기에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가 발표된 뒤 12일 BBC에선 “웰비와 국교회는 은폐에 연루됐다”며 “지금이 그가 사임할 기회”라는 내용의 피해자 인터뷰를 공개했다. 영국 성공회 의회도 웰비의 사임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기했다. 사임 직전까지 청원엔 약 1만3000여 명이 서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결국 웰비는 채널4뉴스에 당시 “더 강렬히” 말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고 유감을 표명한 이후 사임 성명을 발표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사임) 결정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외신들은 대주교의 사임 여파를 우려했다. AP통신은 “전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지는 “국교회의 위기”라고 우려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영국 성공회 수장으로 세계 165개국 신도 8500만 명의 영적 지도자라는 이유에서다.
웰비의 공식적인 사임 시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후임자를 찾는 과정에 최소 6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임 절차가 완료되면 요크 대주교와 성직자 및 평신도 대표, 성공회 대표 등으로 이뤄진 위원회에서 캔터베리 대주교와 영국의 다른 주교구 후보자의 일부 명단을 스타머 총리에 전달한다. 스타머 총리는 명단을 국왕 찰스3세에 전달하며 결정에 조언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신도의 학대 피해 사건은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영국 성공회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WP가 짚었다. 영국 정부의 독립조사에 따르면 1940년대부터 2018년까지 학대혐의로 유죄 받은 교회 관계자만 39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제의 권위와 성적 취향에 대한 논의를 둘러싼 금기, 피해자보다 피고발자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한 문화 등이 영국 성공회를 “학대자가 숨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는 게 WP의 설명이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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