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장? 트럼프 안보 장사에 휘둘리나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4. 11. 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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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확장억제 자산 비용 증가 위해 역이용 가능성

[김종성 기자]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한국 핵무장론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미 대선 사흘 뒤인 지난 8일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대담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로 돌아가면 핵무장에 부정적이던 한국 전문가들이 찬성 쪽으로 대거 선회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한국 언론에서는 "尹정부, 핵무장 필요성 설득해야"(7일 <아시아투데이>)같은 강경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대표를 지낸 김기현 의원이 '북한이 7차 핵실험 등을 할 경우에 독자 핵무장을 선언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한다는 10일 자 보도도 있었다.

지난 10월 8일 보도된 중앙일보사와 동아시아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는 핵무장을 찬성하는 비율이 71.4%였다. 이보다는 낮지만 이전의 조사들에서도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갤럽의 2013년 2월 조사에서는 64%, 2016년 9월 조사에서는 58%, 2017년 9월 조사에서는 60%였다.

이런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핵무장에 대한 한국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인 것처럼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빅터 차도 8일 대담에서 "핵무장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이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이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전문가들의 태도만 바뀌면 한국 분위기가 일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 토대 취약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대담에 출연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 코리아소사이어티
빅터 차를 비롯한 해외 전문가들의 시각은 위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기인한다. 하지만, 기존의 조사 결과는 그리 견고하지 않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가 있었다. 2020년에 <한국정치학회보> 제54집 제2호에 게재된 박종희 서울대 교수와 손상용 서울대 대학원생의 논문 '한국 유권자들은 정말 핵무장을 원하는가? 실험설문을 이용한 핵무장 여론 분석'은 핵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결과에 따라 찬성률이 60%대가 아니라 30%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1988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이 연구는 독자 핵무장에 대한 찬반 의견을 확인한 뒤, 대상자가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정보나 지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찬성하는 사람에게는 반대 쪽의 정보나 지식을,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찬성 쪽 의견이 제공됐다.

이 연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핵무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토대가 아직은 얇다는 점이다. "응답자들의 핵무장에 대한 입장은 전문가 정보에 따라 크게 변화"하고, "특히 핵무장에 찬성하는 응답자들의 태도 변화가 반대하는 응답자들의 태도 변화보다 컸다"고 논문은 결론을 내린다.

논문에 따르면, 핵무장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핵 개발로 인해 경제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정보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정보를 접하고 태도를 바꾼 비율은 86%다. 미국의 원자력 기술 제재를 초래한다는 정보는 68%, 유엔 안보리 제재를 당한다는 정보는 65%, 미국의 군사 제재를 유발한다는 정보는 63%의 응답자를 변화시켰다.

핵 개발로 인해 미국·유엔·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제재와 압박을 받는 북한의 처지를 한국도 겪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찬성론자들이 평소 그 부분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핵무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정보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 정보를 접하고 태도를 바꾼 비율은 55%다. 북핵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정보는 41%, 주한미군 방위비가 점증하고 있다는 정보는 40%의 응답자를 변화시켰다.

위 연구는 핵무장 찬성론자들이 새로운 정보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했음을 보여준다. 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면 찬성론의 비율이 격감할 수 있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핵무장에 대한 한국 유권자의 초기 입장이 한국갤럽의 조사 평균인 61%의 찬성 입장과 39%의 반대 입장으로 분할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핵무장이 정치적인 쟁점으로 부상하여 이에 대한 공적인 토론이 진행된다면 유권자들은 찬성과 반대 전문가 정보를 접하게 될 것이다. 공적 토론의 결과 본 논문의 실험 결과와 유사한 양상으로 태도 변화가 일어난다면 찬성 여론은 38% 수준으로 감소하고, 반대 여론은 62%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한국이 트럼프의 안보 장사에 휘둘릴 가능성
 1975년 6월 13일 자 <매일경제신문> 기사 "미국이 핵우산 걷는다면 한국 핵무기 개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토대가 취약한 현실을 반영하는 이 연구 결과와 함께 살펴볼 것은 핵무장에 대한 보수세력의 태도다. 박정희 정권의 행보에서 나타났듯이, 보수세력은 독자 핵무장을 한미동맹 강화나 주한미군 지속 주둔 등과 맞바꿀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핵무장 목소리의 진원지인 보수세력의 의지가 실상은 그리 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될 수 있다.

1975년 6월 13일 자 <매일경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정희는 그달 12일 <워싱턴포스트>에 보도된 미국 언론인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이 철거될 경우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것이 한국 최초의 핵무장 선언이라고 전했다.

박 정권에 대한 전면적 분석을 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국제기구소위원회의 <프레이저 보고서>는 1970년대 초에 박정희 정부 내의 무기개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기로 결정"한 일이 있다고 한 뒤, 이 프로그램이 1975년경에 전부 취소됐다면서 "한국의 핵정책이 명백해짐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 프로그램 확장에 적극 협력했다"고 설명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 개발에 대해 채찍과 당근을 함께 제시했다. 1978년 11월 5일 자 <조선일보> 기사 '한국 핵무기 개발 미(美) 압력으로 중지'에 따르면, 그달 4일 발행된 <LA 타임스>는 1975년에 미국은 박 정권을 압박해 핵 개발을 포기시키는 한편, 핵발전장비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정희의 핵 개발 시도는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미국의 안전보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튀어나왔다. 그의 핵 개발 추진은 주한미군을 묶어두는 측면도 다분했다. 지금의 보수세력도 크게 다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북한의 핵전력이 강화되기 때문에 핵무장 목소리를 내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의 안전보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측면도 크다. 이는 보수정권이 지금 당장은 핵무장 목소리를 키운다 해도, 미국의 반응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후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핵무장을 지지하는 찬성 여론이 새로운 정보나 지식과의 접촉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 핵 개발 목소리를 주도하는 보수정권이나 보수세력이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있으며 그런 선례도 있다는 점은 지금 한국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이 그리 견고하지 않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핵무장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을 묶어두거나 미국의 핵우산이나 확장억제자산(전략폭격기·전략핵잠수함·핵추진항공모함)을 좀 더 많이 활용할 의도로도 핵무장을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안보 장사에 휘둘릴 여지도 있음을 경고한다.

한국 보수세력이 독자 핵무장을 한미동맹 공고화와 맞바꿀 수도 있음을 잘 아는 트럼프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확장억제 자산의 배치 비용 증가를 목적으로 독자 핵무장 목소리를 역이용하려 들 가능성에도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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