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정, '국익 관점' 속도조절 해야"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확정을 앞두고 산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올해 4월 발표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마치고 최종 기준 확정을 앞두고 있다.
산업계는 제조업 비중이 높고 대-중소기업 역량 차이가 큰 국내 산업구조의 현실을 반영하고, 기후 관련 글로벌 규제의 변동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3일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을 초빙,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정 전망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2024년 제2차 ESG 경영위원회를 개최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최근 기후 관련 글로벌 규제의 시행 초기 변동성을 언급하며, 속도 조절을 비롯한 ‘국익 관점’의 신중한 규제 도입을 촉구했다.
특히 에너지 문제와 관련해 손 회장은 “공급망을 둘러싼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에 지정학적 안보 리스크까지 중첩되면서 새롭고 복잡한 양상을 낳고 있다”며 “높은 에너지 전환 비용과 공급 불확실성은 단순히 탄소누출(Carbon Leakage)의 문제를 넘어 한 나라의 산업 공동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누출’이란 탄소다배출 제조업체가 배출량 규제가 강한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손 회장은 EU 전역의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적용도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지난 7월 6일까지 모든 EU 회원국이 지침을 법제화해야 했지만, 현재 자국 내 법제화를 완료한 회원국은 13개국으로 절반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1일 EU 집행위에서 법제화가 미진한 회원국에 공식 경고서한을 발송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스페인, 폴란드, 체코와 같이 첨단기술과 제조업 비중이 높은 회원국은 지침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상당히 지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EU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해서도 손 회장은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주요 교역국이 크게 반발하고, 미국도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방식이 강화될 경우 다자주의 무역 흐름의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긴 호흡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정책 대화에서 위원들은 공급망 내 온실가스 배출량(Scope 3) 공시와 기준서 제101호(정책 목적 달성을 위한 추가 공시사항) 채택에 큰 우려를 표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규칙’ 시행이 소송으로 잠정 보류된 상태에서 선제적 공시기준 확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위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 비중이 높아 복잡한 B2B 공급망을 형성할 수밖에 없고, 대-중소기업 간 역량의 차이가 뚜렷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어 공급망 전체의 일사불란한 대응이 요구되는 Scope 3 공시에 한계가 크다는 입장이다.
또, 부처별 기업 관련 정보공개 사항을 모두 담은 기준서 제101호(정책 목적을 고려한 추가 공시사항)까지 채택할 경우 기업의 선택 공시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가능성’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함으로써 국내 상장 부담을 가중시키고 밸류업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공시 의무화 시기와 관련해 “구체적 ‘세부기준’과 객관적 공시방법을 담은 ‘활용가이드’가 제시되어 충분한 현장 검증을 거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은 “국내 기업의 공시 이행력 제고를 위한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에 관한 정책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수록 기업들의 부담과 피로도 가중될 수 있다”면서 기업 부담을 완화하는 조치를 동반한 명확한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이 조속히 제시돼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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