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카카오엔터 대표 "바람픽쳐스 '400억', 싸게 산 것"…차명카드 의혹엔 '침묵'
설립 후 3년간 매출이 전혀 없던 드라마 제작사를 400억원에 고가 인수해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 대표가 오히려 "싸게 산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인수 대가로 차명 체크카드를 받아 약 13억원을 썼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전날 특정경제범죄법 위반(배임), 배임증재 및 수재,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대표와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에 대한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 전 부문장이 2017년 2월 자본금 1억원을 들여 설립한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카카오엔터 자금을 투입해 유명 작가와 PD 등을 영입한 것도 모자라 400억원을 들여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재산상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 혐의의 핵심이다. 바람픽쳐스는 설립 이후 드라마 제작 활동이 전혀 없었고, 2018~2020년 사이 매출이 0원이다. 2020년 인수 당시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김 전 대표는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바람픽쳐스의) 김은희 작가, 박호식 PD 등은 최고의 작가와 감독으로 '어벤저스'였다"며 "그 회사를 이준호가 갖고 있어서 다른 회사와 (인수) 경쟁을 안 해도 돼서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레퍼런스를 해 보니 매수하려면 500억~600억원 이상은 줘야겠다고 했는데, (이 전 부문장과) 관계가 있으니까 400억원에 싸게 샀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엔터업계 특성상 제작사 가치를 단순히 재무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소속된 연출진, 작가 등 무형의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장항준 감독의 아내이자 '스타 작가'로 알려진 김 작가는 바람픽쳐스 설립에 참여해 20%의 지분을 보유했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후 카카오엔터에 인수되면서 인수가(400억원) 20%인 80억원을 지급받았다.
검찰은 곧바로 반박했다. 애초에 제작 활동이 전무했던 바람픽쳐스에 유명 작가나 연출진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총 337억원의 카카오엔터 자금이 투입됐고, 이를 통해 가치를 400억원으로 부풀렸다는 것이다. 인수자금 400억원 중 80%인 320억원은 이 전 부문장이 챙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전 부문장이 자신의 명의로 된 체크카드를 김 전 대표에게 제공한 것은 고가 인수에 따른 대가성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이 전 부문장은 18억원이 입금된 통장과 체크카드를 김 전 대표에게 건넸고, 김 전 대표는 이 중 12억5646만원을 쓴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차명카드를 이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거래 불법성을 명백히 인식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몰래 거래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상 자백 취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시 카카오엔터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한 것은 알지만, 여러 회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유독 바람픽쳐스에만 이례적인 특혜와 지원이 이뤄졌다"며 "향후 증거조사를 통해 설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당 재판부도 "제삼자가 운영하는 업체를 인수하는 경우라면 (회사 자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데, (바람픽쳐스 실소유주인) 이준호가 피해 회사(카카오엔터) 내에서 그런 역할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카카오엔터가 정상적 경영 판단으로 바람픽쳐스를 인수할 목적에 있었다면, 인수 이전에 자금까지 투입해 가며 피인수 회사의 가치를 부풀리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설명이다. 차명카드 사용에 대해서도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인데 (피고인 측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카카오엔터 임원이자 피인수된 바람픽쳐스 실소유주인 이 전 부문장에 대한 배임 및 배임수증죄 동시 성립 여부도 여전히 쟁점이다. 변호인단 측은 배임의 공범이면서 동시에 배임수재 혐의를 받는 것은 법리적으로 상충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검찰 측은 이 전 부문장의 이중적 지위를 고려하면 두 혐의가 별도로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기일은 내년 1월21일 진행된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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