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따돌림 여학생

2024. 11. 1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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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여학생 S는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아무도 상대를 안 해 준다.

교실 집단 안에서 또래 간에 일어나는, 조용히 일어나는 괴롭힘은 어른들이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낄 수 없어 계속해서 '자기 보호 시스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강자처럼 보이는 가해자에 대항하고 약하게 보이는 피해자를 돌보는 가치 있는 행동에는 또래 집단 안에서 찬사를 받고 존중되는 문화가 그들 자체 내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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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어른 인정보다 또래 간 수용과 찬사에 민감


중학교 1학년 여학생 S는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아무도 상대를 안 해 준다. 외모에 대해 놀림을 받고, 가족들에게도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 점심도 굶고,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 집단으로 따돌리기 때문에 혼자서 대처하기가 너무 힘들다. 담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오히려 선생님이 보시지 않는 곳에서 따돌림은 더 심해진다.

학교는 약육강식의 장이 되거나 또래 간에도 경직된 위계질서를 갖는다. 군림하고 복종하며 학대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청소년이라는 시기의 불안정성도 일조하면서 그들은 공격성을 통해 강한 자로 살아남거나, 약자는 숨어버리며 회피하고 급기야 학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런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심각성 때문에 학교 폭력에 대한 강한 규제와 법률이 도입되어 처벌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더욱 교묘한 방법의 따돌림과 괴롭힘이 생겨나 부모와 선생님이 약한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게 만든다. 또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많은 프로그램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바람직한 생각과 행동인지를 가르치려고 고안되어 있다. 이런 일방적인 가르침으로는 성과가 별로 없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처한 사회적 맥락을 바꾸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미국의 정치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은 전 세계의 많은 단체가 외부 통제 없이 자체적 공동 자원을 관리하고 협력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존 경제학에서 인간이 공공 자원을 제한 없이 사용할 경우엔 이기심으로 인하여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것을 뒤집은 거다. 즉 사람은 특정한 환경 조건, 즉 맥락이 존재한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였고, 실험을 통해 서로 협력하여 외부 통제 없이 효과적으로 자원을 관리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2009년).

오스트롬의 이런 원리를 학교, 교실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먼저 청소년에게 자신들에게 맞는 규약을 정해 보도록 하여 자신들이 스스로 주체라고 느끼고, 학교가 공정하며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 ‘자기 보호 시스템’의 작동에서 벗어나 가치와 연결감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즉 자신이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안전하지 않아‘라고 느끼면, 생존 모드 즉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에 동조하거나 협력하게 된다.

그들을 통제하려는 법률, 교칙으로는 이런 안전감을 느끼게 하기 어렵다. 교실 집단 안에서 또래 간에 일어나는, 조용히 일어나는 괴롭힘은 어른들이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낄 수 없어 계속해서 ‘자기 보호 시스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즉 가치를 추구해 이타적인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돌보며 연결감을 추구하기 어려워진다.

어른들이 해야 할 것은 그들을 감시하고 규제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자체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른들이 제공하는 시스템은 그들 내부에 작동하기엔 한계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 내는 규약과 자체 통제를 통해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절대로 수용되거나 또래 간에 인정받을 수 없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어른의 인정보다는 또래 간에 수용과 찬사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강자처럼 보이는 가해자에 대항하고 약하게 보이는 피해자를 돌보는 가치 있는 행동에는 또래 집단 안에서 찬사를 받고 존중되는 문화가 그들 자체 내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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