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방산업 협력이 위기 극복의 길"…이창기 시멘트협회 부회장 인터뷰
친환경 설비투자 확대 기조 지속, 막대한 재원조달 부담…공적 투자 필요
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 정부 주도로 한국시멘트협회·한국레미콘공업협회·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건설 공사비 안정화를 위해 열린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 협의체' 회의가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달 2일 정부가 '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 발표 이후 두 번의 회의가 열렸지만, 회의에서 '시멘트 가격 조정'만이 다뤄지면서 시멘트·레미콘 업계의 반발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창기 한국시멘트협회 부회장은 12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포괄적 논의를 통해 관련 산업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특정 자재 가격 인하에만 초점을 맞춘 논의로 변질된다면 협의체가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공사비 상승 원인이 시멘트 가격 인상이라는 지적에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인건비나 금융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모두 올랐는데, 대외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문제인지,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장기적 과제인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멘트 산업의 친환경 설비투자와 관련해서는 '공적투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2050년 탄소배출 감축 53% 달성과 순환자원의 안정적·대량 공급을 위한 친환경 설비투자 확대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설비투자 확대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조달에 부담도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등 2026년이면 시멘트 가격을 지금의 두배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국내 시멘트 가격은 세계 평균의 3분의 2 정도로 낮아 이대로면 업계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라도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시멘트가 적정한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면서 "장기적으로 공적투자를 통한 정책자금 지원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시멘트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3%에 불과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총량은 전체 8%를 차지할 정도로 고탄소산업이다. 그러나 장치산업의 경우 정책자금 투입 등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기술 등이 축적될 경우 연관 산업으로의 파급효과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시멘트 산업의 위기 극복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부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 대결 국면에서 평화 모드 조성에 더 비중이 실리면 시멘트 산업에 기회가 올 수 있다"면서 "국내 시멘트업계는 이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북한에 진출한 경험이 이미 있는 만큼 북한 진출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 정부 주도로 '건설자재 수급 안정화 협의체(협의체)'가 운영 중이다. 시멘트업계 입장은?
▲ 시멘트업계는 건설시장 활력제고 차원에서 필요성을 공감하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건설과 시멘트 산업은 중요한 전후방산업으로서 산업간 유기적 협조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협의체에서는 건설과 연관된 시멘트, 철강, 레미콘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을 진단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포괄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 협의체 회의에서 시멘트 가격 인하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특정 자재 가격 인하에만 초점을 맞춘 논의로 변질된다면 협의체가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포괄적 논의를 통해 관련 산업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공사비 상승 원인이 시멘트 가격 인상이라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서도 시멘트 가격 10% 상승 시 건설비용 증가 영향은 0.20~0.36% 수준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우리 시멘트업계가 실제로 공급하는 가격은 평균 약 96,000원 수준으로 공시 가격 112,000원 대비 86% 수준에 불과하다. 실제 공급가격으로 환산하면 증가 영향은 더 낮아질 것이다. 또한, 인건비를 비롯해 금융비용 등 사회적 제반 비용이 모두 올랐다. 따라서, 대외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문제인지, 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장기적 과제인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그에 맞춰 산업별 세부 대책, 이른바 위기 극복을 위한 '핀셋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 정부의 중국산 시멘트 수입 지원에 대한 입장은?
▲ 실제 수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시멘트업계 입장에서는 내수시장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반전의 기회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1년 생산량이 약 20억t이 넘어 국내 시멘트업계의 66년간 누적 생산량과 비슷하다. 가격 덤핑과 물량 공세를 시작하면 국내 시멘트업계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정부의 중국산 시멘트 수입 검토는 철강, 석유화학처럼 중국산 제품의 덤핑 수출을 야기하고 장기적으로 수입 물량이 확대된다면 국내 시멘트업계가 고사하는 상황은 불 보듯 뻔하다. 거대 자본과 물량 앞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렇게 된다면 중국 시멘트업계에 의해 판매가격이 좌지우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국내 시멘트 시장을 노리는 중국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수 시장에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시멘트 산업에 중국산 도입을 검토한다는 발표만으로도 시멘트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시멘트 산업의 부진이 심각하다. 이 부진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올해 1~3분기 시멘트 출하(내수)는 3222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3% 감소(3698만t 대비 476만t↓)했다. 이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 내수 총출하량은 4400만t 밑으로 떨어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특히 9월은 통상적으로 1년 중 가장 출하량이 많은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한 달간 내수가 무려 30% 가까이 급락하면서 4200만t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와 걱정이다. 내년은 약 4000만t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IMF 외환 위기 직전인 1997년 시멘트 출하가 6176만t에 달하며 국내 시멘트 산업 역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 불과 1년 뒤 약 4462만t으로 폭락했었다. 이웃 일본의 시멘트 산업은 연간 1억t에 달하는 시멘트 출하를 기록했다가 올해는 1960년대 수준으로 후퇴한 3500만t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시멘트 산업도 일본의 전철을 따를 것이라는 예상에 패닉에 빠져 있다.
-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타격도 크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시멘트 제조원가에서 연료비인 유연탄 조달 비용이 가장 큰 비중(약 30% 내외)을 차지했는데, 최근 2~3년간 단행된 전기요금 인상으로 제조원가 비중에서 전기요금(업계 평균 30% 내외)은 오르고 유연탄(평균 20~25%)은 낮아졌다. 특히, 지난해 11월(13.5원/kWh)과 올해 10월(16.9원/kWh) 두 차례에 걸쳐 총 30.4원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제조원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크다. 수요부진에 따른 시멘트 생산 감소와 연동돼 유연탄 조달 비용은 계속 줄어들겠지만, 공장 운영과 설비의 안정적 가동에 필요한 전력 사용은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또 환경규제 대응 관련 설비투자로 선택적 촉매환원법(SCR) 시설 등의 확충으로 추가적인 전기 사용 증가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유연탄 가격 하락을 이유로 시멘트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요구는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 시멘트 산업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는?
▲ 최근 상황은 IMF 외환위기 직전 역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가 이듬해 폭락했듯이 올해 매출 신장이 IMF 외환 위기의 데자뷔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수익성이 나지 않는 데다 원가 급증으로 시멘트 생산을 유지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다만, 북한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반도 정세의 급변이 예상된다. 평화 모드가 조성될 경우 시멘트 산업에 기회가 올 수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북한에 진출한 경험이 이미 있는 만큼 북한 진출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단정할 수 없겠지만, 장기적인 전망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시멘트업계가 급변하는 정세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시멘트 산업의 2050년 탄소배출 감축목표는 53%다. 달성 가능한가?
▲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자원화한 순환자원이 목표 달성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온실가스 발생의 주요 원인인 석회석을 비탄산염 원료로 대체하는 순환자원 확대 기술과 화석연료인 유연탄을 점차 줄이고 대신 폐플라스틱 등 폐합성수지를 대체 연료로 늘려갈 계획이다. 또 혼합시멘트 생산을 늘리고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포집하는 기술개발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2030년 12% 감축을 달성하고, 2050년에는 기존 감축 수단의 목표율 확대와 수소 및 바이오매스연료 전환, 저탄소 시멘트 등 신기술 도입을 통해 2018년 대비 53% 감축을 달성할 계획이다.
- 재원 마련에는 이상이 없나?
▲ 설비투자 확대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 조달에 부담도 크다.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 관세를 받아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자금으로 지원한다는 복안이다. 이 때문에 2026년이면 유럽의 시멘트 가격은 지금의 두배로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멘트 가격은 현재도 세계 평균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한데, 이대로면 업계 자체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시멘트 가격은 오르는 추세지만, 우리는 오히려 내리라고 하니 당황스럽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재원 조달을 위해서라도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시멘트가 적정한 평가를 받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공적투자를 통한 정책자금 지원도 필요하다.
- 최근 철도 유통기지 폐쇄와 노후 화차 폐차 등 수송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데?
▲ 장기간 운행으로 수명이 다한 시멘트 운송용 철도화차의 폐차는 급증하는데, 신규화차 제작은 지연돼 철도 수송력이 급감하고 있다. 또 2020년 수도권 최대 시멘트 유통기지였던 광운대역(서울 노원구) 등의 폐쇄로 시멘트 공급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육상 수송 대비 온실가스 배출 저감, 교통혼잡 등 사회·환경적 비용 감소 효과가 있는 철도수송 확대가 시급하다. 수도권, 특히 서울 동부지역의 시멘트 유통기지 마련이 시급하다. 외곽지역이라도 유통기지는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 시멘트 산업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의견이 있다면?
▲ 내적으로는 위기 대응에 필요한 유연성과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동적인 경영만이 미래 시멘트 산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외적으로는 전후방산업인 레미콘, 건설산업과 하나의 가치사슬(Value Chain) 안에서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산업 간 이해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결국 건설산업은 시멘트·레미콘이라는 후방 자재 산업의 안정적인 경영이 우선될 때 이익 창출이 훨씬 더 용이할 수 있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 감축 목표 53% 달성에도 주요 소비자인 레미콘, 건설산업과의 소통과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면 60여년 넘게 시멘트공장은 운영을 해 온 비결에는 동고동락해 온 주민 및 지자체 등 지역사회의 배려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향후 충분한 소통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을 더 확대해야 하며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시멘트 산업 사회공헌재단을 통해 지역의 염원을 담아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이창기 한국시멘트협회 부회장은?
1960년생. 부산대 무역학과,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석사).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대표이사를 지냈고, 공인회계사로 삼화회계법인 부회장, 회계법인 원지 대표회계사를 역임했다. 2017년 3월 한국시멘트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했고, 2022년 4월부터 한국시멘트신소재연구조합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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