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채 태어난 아기 안고 울던 생모의 정체

김민석 2024. 11. 13.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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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무연사'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김민석 기자]

'죽음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흔히 쓰이는 문장이 있지요. 이 문장 속 '연령'을 무엇으로 바꾸어도 말이 될 겁니다. 성별, 재산의 규모, 사회적 지위, 선인과 악인… 그리고 당연하게도 국가 또한 포함됩니다. 죽음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한국인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습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구태여 길게 했지요. 그 이유는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무연고 사망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연령과 성별, 재산의 규모, 사회적 지위,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외국인도 있습니다. 장례에 종종 오시는 분이 부고를 보고 "이 분은 외국 분이시네요"라며 놀라는 일이 생각보다 꽤 잦습니다.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대부분 이주노동자입니다. 잠시 여행 온 사이에 사망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니까요. 한국에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고,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거나,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장례를 치를 수 없다면 '무연고 사망자'가 됩니다.

능력을 인정받고 스카우트되어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는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옵니다. 그런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망했을 때 가족들이 타국에 있는 그의 장례를 치러줄 여건이 되지 않으리란 것은 너무도 안타깝고, 쉬운 예상입니다.

이주노동자 착취하는 비정한 한국 사회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의 지방을 태우고 있다.
ⓒ 나눔과나눔
이주노동자의 장례를 치를 때 특히 안타까운 점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로 인한 '과로사'의 흔적이 공문 속에 보일 때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이 한국에 일하러 오는 일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노동하는 데 문제가 없는 건강 상태일 때 한국에 올 테지요.

하지만 그런 그들이 불과 몇 년 만에 병사, 사고사, 자살, 그리고 불상의 이유로 사망합니다. 장례에 찾아오는 동료, 영사관 직원 등 사별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빠르게 찾아온 죽음의 이유가 차츰 드러납니다.

어떤 고인의 경우 고향에 있는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공장에서 착실히 일한 그에게 주어진 것은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급여였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항의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체류한 것이 아닌 미등록 이주노동자, 이른바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야근하는 그에게 고용주는 기숙사비와 식비, 심지어는 부식비까지 요구했습니다. 쉽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그에게 강도 높은 노동과 열악한 주거 환경은 결핵을 안겨주었습니다. 더는 일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그가 고향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이틀 뒤, 잔인하게도 결핵균은 뇌까지 도달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결핵성 뇌수막염. 그의 나이는 불과 삼십 대 초반이었습니다.

처음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요.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아기도 있습니다. 병원에 갈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결국 병원 외의 장소에서 출산을 겪게 됩니다. 그런 경우 아기의 생존 확률은 굉장히 낮을 수밖에 없겠지요.

죽은 채 태어난 아기를 안고 어쩔 줄 모르던 생모는 결국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로 떠나보냈습니다. 처음 공문을 받아 들고 아기의 이름을 몰라 '○○○의 아기'라고 위패를 만들었던 우리는, 장례에 참여한 생모를 통해 아기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위패를 바꿔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9시간 이상의 비행이 가능함.'

고인이 자살하던 날 의사에게서 받은 소견서 내용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의사가 소견서를 작성해서 주었을 리가 없습니다. 특히 '9시간 이상의 비행이 가능'하다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은 더욱 그럴 것이고요. 고인이 머물던 여관방에서 소견서와 함께 발견된 말기 암 진단서가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정황들로 추정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에서 일하던 고인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갔고, 말기 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고향으로 가는 장시간의 비행이 가능한 지 의사에게 물어보았고요. 의사에게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고민에 잠겼던 것은 아닐까요? '이 몸 상태로 가족에게 돌아가 봐야 짐이 될 뿐 아닐까?'

외국에서 사망한 한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어떻게?
▲ [표 1] 2023년 서울시 전체 '무연고 사망자'와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 비교
ⓒ 나눔과나눔
2023년 서울시에서 공영장례를 치른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모두 37명입니다. 서울시 전체 '무연고 사망자'가 1218명이었으니 전체의 3퍼센트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표 1'은 숫자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울시 통계 외에는 다른 통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큰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평균 연령이 8세 어리고, 안치 기간은 2배 이상입니다. 거주지에서 사망했다는 의미인 고립사 의심 사례는 외국인의 경우 50퍼센트에 가깝고요. 사인을 알 수 없다는 뜻인 '기타 및 불상'은 전체 통계와 비교했을 때 외국인이 세배나 높습니다.

이쯤 되니 간절하게 궁금해집니다. 이주노동자가 많은 서울 외 지역의 현황은 어떨까요? 보건복지부가 단순 취합만 하고 있는 전국 '무연고 사망자' 현황에서 외국인은 어떻게 집계되고 있을까요?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서, 외국에서 사망한 한국인 '무연고 사망자'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요?

한국인도 다양한 이유로 외국에 갑니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도 한국인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겠지요. 그들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지고 있을까요? 한국에서처럼 먼 길 가시기 전에 한 끼 하시라고 식사는 올리고 있을까요? 매장되고 있을까요? 화장되고 있을까요? 화장된다면 유골은 이후에 어떻게 될까요? 평균 연령은 어떻게 될까요? 전체 숫자는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중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당장 한국에서 사망한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도 나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요.

외국에서 사망한 한국인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존엄하게 치러지길 바란다면, 상호주의에 따라 국내에서 사망하는 외국인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존엄하게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착취를 멈춰야겠지요. 삶을 위해 찾아온 이들을 한국 사회가 환대하며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하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글 | 기사에 나온 사례는 개인을 특정 지을 수 없도록 재가공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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