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고체 날개 단 CIS “캐즘으로 시간 벌어… 소재·장비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전고체 배터리 소재 자체 개발...유럽·북미 납품, 장비 경쟁력도 ‘쑥’
트럼프 우세지역이 ‘전기차 메카’… “보조금 줄여도 없애진 않을 듯”
캐즘으로 ‘가격 경쟁’ 점화… 전기 먹는 전극공정서 新개념 장비 승부
이차전지(배터리) 장비업체 씨아이에스(CIS) 주가가 최근 한 달 사이 약 24% 올랐다. 1만원대 돌파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 우려에 친환경 차에 부정적 입장을 취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전방업계 분위기가 무거운 것과는 대조적이다.
CIS는 이 기간 ‘꿈의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 소재 개발·공급을 위한 비밀유지계약(NDA)을 잇달아 쏟아냈다. 유럽 자동차 제조사에 이어 북미 에너지 기업과도 관련 협업을 하기로 손잡은 것이었다.
지난 8월 인천 전기차 대형 화재를 계기로 전해질을 휘발성 액체 대신 고체로 바꿔 화재 위험을 낮춘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덕이었다. 이르면 2027년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CIS는 배터리의 기본 성분을 배터리 양극, 음극으로 만드는 제조 첫 과정인 전극공정 장비를 만드는 회사다.
금속박에 활물질을 코팅한 뒤 건조하는 코터, 전극 두께를 더 균일하게 압축하는 캘린더(롤프레스) 등을 생산해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일본·유럽 배터리 업체 등 국내외 주요 기업에 납품한다. 전극공정은 주문을 받아 제조, 인도, 양산 과정까지 최소 2년 이상이 걸린다. CIS의 수주 동향은 향후 배터리 업계 투자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지난해 6000억원이 넘는 신규 수주액을 발판으로 사상 최대 매출인 3102억원을 올렸던 CIS는 올해도 4000억원대 중반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일 대구 동구 소재 CIS 1공장에서 만난 김동진 대표는 “기업들이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캐즘이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3년까지 가지 않고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연내 6공장 가동으로 7000억원 규모로 연간 생산 여력이 확충되는 등 캐즘 이후 수요를 대비하고 있다”며 “전고체 배터리는 소재까지 직접 개발해 장비 경쟁력을 지금보다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 3000억대 매출 올렸다. 올해도 작년에 이은 성장세를 지속할 수 있을까.
“반기 기준으로도 이미 2289억원을 달성한 상황이다. 수주 상황 등 고려했을 때 4000억원대 중반은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캐즘 여파로 전방 업체들의 투자가 지연되는 분위기인데.
“작년 신규 수주액이 6000억원을 넘었다. 올해는 보수적으로 7000억원 정도를 예상했는데, 실제론 그 절반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이런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성능 중심’의 전기차 트렌드를 ‘가격 중심’으로 전환하며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분위기다. 보급형 저가 전기차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라인 설비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업체가 갑자기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는 없기 때문에 습식 코터에서 건식 코터로 바꾸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건식 코터는 건조로(건조기계)가 필요 없어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고 투자비를 줄일 수 있다.
성능이 좋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전기가 많이 들어가는 전극공정의 코터 장비를 하이브리드 코터가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IS의 하이브리드 코터는 레이저 건조가 추가돼 기존 대비 생산 속도를 2배가량 높이고 소비 전력은 약 50% 줄일 수 있다. 배터리 전극 품질 향상, 충·방전 속도 개선, 에너지 밀도 증가 효과도 있다. 개발 마무리 단계로 고객사와 사업화 테스트 중이다.”
―현대차가 캐즘에 대응할 무기로 준비 중인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는 어떻게 보나.
“전기차를 안 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충전하는 게 힘들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개발 중인 EREV는 작은 모터가 하나 추가 된다. 차를 굴리는 목적이 아니고, 배터리를 충전하는 목적으로 쓰인다. 비유하자면, 보조 배터리를 하나 달고 다니는 셈이다.
배터리가 주 동력이기 때문에 전기차의 50~70% 수준이 탑재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이브리드 차 수준으로 가격대를 맞추는 데 성공한다면, 배터리 업계도 수혜를 볼 것이다. 캐즘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폐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우세 지역이었던 미국 오하이오·미시간·테네시·켄터키주에 고객사 생산 거점이 다 몰려 있다. 예를 들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이 몰려 있어 ‘자동차의 메카’로 불리던 미시간주 최대 도시 디트로이트시는 한때 쇠락했다가 전기차 전환에 힘입어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도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IRA 덕분이다.
해당 주의 공화당 의원들은 법 폐지 반대를 공식화하고 있다. 보조금 규모를 줄일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됐다고 IRA가 폐기까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중국 견제를 최우선하기 때문에 미국 현지 업체와 합작법인 형식으로 우회 진출했던 중국산 배터리부터 잡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국내 배터리사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여러 대외 변수 상황에서 CIS는 최근 신규 6공장을 매입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회사는 올해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 2만7438㎡(약 8300평) 규모의 3공장을 준공했고, 4·5공장도 추가 임차해 확보한 상태다.
임차한 공장은 내년 말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11월 3만7208㎡(약 1만1200평)의 6공장도 신규 투자했다. 6공장은 인프라 구축을 연내 마무리해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이로써 CIS의 연간 생산량은 5000억원에서 7000억원(수주액 기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객사들은 분기별로 CIS 같은 주요 파트너사의 생산 여력, 인력 등을 점검한다. 이를 기반으로 투자 계획을 배분하고 짠다. 자체적인 중장기 수주 성장 전망, 기존 생산시설 가동률 상승 추세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선제적 투자다.”
―전고체 배터리 장비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최근 전기차 화재로 시장에서 전고체 배터리가 더 중요해졌다. 전고체 배터리는 재료 배합을 잘해서 균일하게 눌러 압축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식 공정을 통한 장비 기술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여기에 들어가는 소재 개발에도 뛰어들고 있다.
회사는 2017년부터 글로벌 주요 업체들이 주목하는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 개발을 시작, 2018년 소량 합성에 성공했으며 최근 월 70㎏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이를 최근 유럽 자동차 제조사와 북미 에너지 기업에 소량 납품하기도 했다.
화학적으로 민감한 특성을 가진 소재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전고체 배터리 핵심 공정 장비 개발에 있어서도 타사 대비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30년까지 400억달러(약 56조원)로 성장이 예상되는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모회사인 종합 장비회사 에스에프에이(SFA)와의 시너지는.
“최근 SFA는 주요 고객사에 전고체 배터리용 3차원(3D) CT 검사장비와 특수 검사장비를 각각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다. 3D CT는 양극, 음극, 분리막의 정렬 상태를 5초 안에 살펴볼 수 있다.
특수 검사장비는 전고체 배터리 셀 외관의 미세 결함을 찾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7~2030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가 점쳐지고 있는 만큼 양 사는 매달 정기적으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협의체를 운영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SFA의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핵심 장비에 접목해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도 추진 중이다. 하이브리드 코터 등 신개념 장비의 조기 사업화를 통해 전극공정 장비업체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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