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 이미 올랐는데, 트럼프까지 덮친다…위기의 파리기후협약 [이슈추적]

정은혜 2024. 11.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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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중부 엘레나 마을 근처의 요브코프치 댐이 기록적인 가뭄으로 마른 모습. AFP=연합뉴스

" 지난해보다 온도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을 했지만 현재 상승 속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당혹스럽네요. "
이준이 부산대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올해가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파리협약 기준인 1.5도 초과 상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기후과학자인 그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 작성에 주저자로 참여했다.

올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한 첫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후 과학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도는 국제사회가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합의한 마지노선이다.

신재민 기자

세계기상기구(WMO)는 11일(현지시간) 올해 1~9월 지구 평균 온도가 1.54도 상승했고, 이는 16개월 연속 월 평균 기온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결과라고 밝혔다. 10월에도 북반구의 고온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 올해는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을 초과하는 첫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도 올해 연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5도 초과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셀레스트 사울로 WMO 사무총장은 “파리협약의 야심 찬 계획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예상 뛰어넘는 온난화 속도 당혹” 달궈진 바다가 원인


기후과학자들은 아직 파리기후협약 기준인 '장기적 1.5도 상승'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빠른 기후변화 속도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준이 부산대 교수. 송봉근 기자

당초 과학자들은 올해 가을부터는 라니냐(동태평양 해수온도가 평년보다 낮은 현상)가 발달하며 기온 상승폭이 둔화할 거라 예상했지만, 10월에도 전지구적으로 해수 온도가 높게 유지되면서 기온이 내려가지 않았다. 달궈진 바다로 인해 지구가 식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올해는 라니냐가 발달하는 해라, 10월 들어 기온 상승 경향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반등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해양의 열 흡수량은 지난해부터 기록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WMO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310만 테라와트시(Twh)의 열이 바다로 흡수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18배가 넘는다. 이 교수는 “해양이 품은 열은 오래 지속하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당장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도 (온난화 추세가) 바로 줄어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 기록 경신 중…2도 초과 상승 머지 않아”


신재민 기자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이 매해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 기후변화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글로벌 시장분석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29.6억톤(t)으로 1970년 240억t의 두배를 넘기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김경록 기자

탄소 순환 전문가인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현재 탄소 배출량이 '고탄소 시나리오' (현재와 비슷하거나 좀 더 높은 탄소 배출로 2100년 3도 수준 상승)를 초과하고 있다”며 “2도 초과 상승도 예상보다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북극 5도 온난화…매서운 추위·강한 비구름 잦아질 수도”


김백민 부경대 교수. 사진 김백민 교수실
북극과 남극 등 극지 경우 훨씬 더 가파른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 중이다. 북극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2014~2023년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연간 4.77mm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는 1993~2002년의 속도의 두 배 이상 수준이다.

극지 전문가인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북극의 기후변화가 컴퓨터 시뮬레이션보다 빠르게 진행돼 놀라고 있다”며 “극지의 기후변화는 지구 평균보다 4~5배 빠르고 현재 5도가량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급격한 온난화는 기상이변의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김 교수는 “일반적으로 북극이 따뜻해지면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로 내려와 매서운 한파가 나타난다”며 “극단적인 기온 변화뿐 아니라 북극의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난 자리에 매우 강한 비구름이 형성되는 상황도 잦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재선에 힘빠진 COP29 “실망스러운 결과”


12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29차 엔 기후 변화 회의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사회는 11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에서 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를 열고 기후위기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지구 온난화를 사기로 규정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미국이 파리협약을 탈퇴할 가능성이 커졌다. COP29에 참석한 조 바이든 현 미국 행정부의 존 포데스타 기후특사는 “트럼프의 당선은 기후 운동가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지적했다.


“2도 상승 대비해야…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


기후과학자들은 더 강도 높은 감축 계획과 함께, 2도 이상 상승 시나리오를 상정한 대책에 돌입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준이 교수는 “1.5도 수준 이상의 기후변화는 대기 정책뿐 아니라 에너지, 식량, 경제, 재난 등 모든 분야가 연계돼야 대비할 수 있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까운 미래에 급격한 기후변화를 마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적응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수종 교수는 “한반도가 온대 기후에서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수백년 빈도의 기상 재해에 대한 대비가 자칫 부족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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