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문화] 기발한 상상력·위트 있는 시선… 자본주의·세계화를 비틀다

손영옥 2024. 11. 13.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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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개인전 여는 미카 로텐버그 인터뷰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등에서 재채기를 하면 스파게티가 툭 튀어나오는 초현실적 기법의 퍼포먼스 영상(노노즈노우즈)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미국 작가 미카 로텐버그가 서울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노노즈노우즈(NoNoseKnows)’의 한 장면(단채널 영상, 21분58초)과 ‘#22위드샐러드’(2020, 합판·알루미늄·기계장치·플라스틱·머리카락, 106×90×38㎝). 현대카드 스토리지 제공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본 미국 여성 작가 미카 로텐버그(48)의 영상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중국 식당에서 그릇 뚜껑을 열었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밀쌈에 싸여 꼼지락거리질 않나, 피노키오처럼 코가 긴 딸기코 여성이 재채기를 하는데 스파게티 접시가 마술처럼 튀어나오질 않나. 세계화와 노동의 외주화, 여성과 신체를 둘러싼 담론을 이처럼 초현실적인 기법으로 독특하고 위트 있게 표현한 작가는 없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개인전 ‘미카 로텐버그: 노노즈노우즈(NONOSEKNOWS)’ 개막에 맞춰 방한한 작가를 지난달 24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등에서 진행한 국내 기획전에 초청 받은 적은 있지만 작품 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개인전을 한국에서 갖기는 처음이다. 퍼포먼스 영상과 설치를 주로 하는 로텐버그의 작품에서 딸기코와 재채기는 알레고리처럼 반복된다. 전시장 초입에도 딸기코 남자가 재채기를 하면 토끼, 고깃덩이, 전구 등이 튀어나오는 영상이 관객을 맞는다.

-딸기코와 재채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 첫 개인전을 갖는 미카 로텐버그는 지난달 2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대해 모두 알고 나서야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최현규 기자


“코는 숨을 쉬고 냄새를 맡는다. 다른 신체 기관보다 밖에 있으면서 외부 환경과 연결되는 성격이 강해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알레르기, 혹은 이상한 긴장 같은 것이다. 알레르기는 일종의 메타포다. 보통 뭔가를 경험하면 눈으로 보는 게 비중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눈만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내 경우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걸 표현하고 싶었기에 코가 가장 적절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외부 세계는 무얼 의미하나. 자본주의인가.

“그렇게도 볼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 일어나는 것, 불안을 자극하는 것들이라고나 할까.”

-재채기를 하면 튀어 나오는 물건들에도 알레고리가 있나. 토끼, 고깃덩이, 전구, 스파게티 등은 각각 특성이 다르다.

“토끼는 부드럽고, 고기는 날 것의 느낌을 주고, 전구는 쉽게 깨질 수 있는 등 각기 다른 질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는 심리적인 상태의 비유이기도 하다.”

-유머가 들어감으로써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약화되는 점이 있지 않나.

“흑백 논리를 가지고 보지 않는다. 어떤 환경을 바라봤을 때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유머를 쓴다.”

작업 태도에서 로텐버그는 선명하고 선동적인 문구를 통해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바바라 크루거 식 미술 문법과 대척점에 있다. 퍼포먼스 영상 작품 ‘코스믹 제너레이터’에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역에서 중국식당이 성업하는 현실을 다루는 방식을 보자. 정장한 남자들이 밀쌈에 싸여 포획된 상태에서도 아기처럼 행복한 몸짓을 하는 부분을 보면 세계화를 바라보는 로텐버그의 양가적 시선이 드러난다.

값싼 임금으로 고용돼 세계 최대의 담수 진주를 생산하는 중국 진주 공장 여성 노동자들과 여성이 재채기를 할 때마다 먹음직스런 스파게티 접시가 튀어나오는 장면 등이 생뚱맞게 연결된 ‘노노즈노우즈’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였다.

-중국이 많이 나온다. 세계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세계화 시대라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제품들이 다 ‘메이드 인 차이나’이기에 중국이 많이 등장하게 됐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뒤 한 살 때 이스라엘로 건너가 스무 살까지 살았고 이후 뉴욕에서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나 스스로 다문화 정체성을 갖고 있고, 뉴욕 자체도 여러 문화가 섞여 사는 인종의 용광로다.”

-동화적 요소도 있다. ‘코스믹 제너레이터’는 세계화 시대의 제품 생산 및 유통과정을 담아 내기 위해 영상 속 주인공들이 국경 사이를 터널, 접시, 아이스크림 통을 매개로 오간다.

“정확한 표현이다. 동화는 아주 마법적이고 신비롭기도 하지만, 아주 잔혹한 면도 같이 있어 즐겨 쓴다. 세상에 위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계 속에 있던 요소를 다 빼내서 직선상에 놓고 한 데 섞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의 후배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작품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거나, 세상에 대해 다 알고 나서야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궁금한 질문을 작품을 통해서 먼저 던져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좋겠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의 포니테일이 달랑 하나 벽에 붙어 채찍질을 하거나, 손가락이 벽에서 튀어나 빙빙 도는 등 국내에서는 선보인 적 없는 키네틱 아트도 나왔다. 폐세제 통을 재활용해 버섯 모양 조명을 만들고 이것을 버려진 나뭇가지와 연결시킨 신작 ‘램프 셰어’도 볼 수 있다. 내년 3월 2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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