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트럼프 승리가 일깨운 두 가지 각성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난 미국 대선이 한국 정치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인 데다 정치 상황에 닮은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범죄 피의자의 당선. 트럼프는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첫 미국 대통령이다. ‘성 추문 입막음용 돈 지급 사건’이 그것이다. 이를 포함해 그는 총 4개의 형사사건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미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사법 절차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지난 7월 미 연방 대법원은 의회 폭동 선동 혐의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했다. 백악관 기밀문서 유출 사건은 기각됐다. 보수 우위의 법원 구성 탓도 있겠지만, 선거전이 뜨거워진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미 언론은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모든 재판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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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사법리스크 속에서 당선
생활물가 급등, 경제 심판론 분출
정부·여당, 민생 제대로 챙겨야
」
이걸 보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심 미소를 지었을지 모른다. 이 대표는 현재 7개 사건, 11개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이 중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이 15일, 위증교사 사건 1심이 25일 선고된다. 설사 유죄판결이 난다고 해도 이 대표와 민주당은 승복하지 않고 2심과 3심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검찰 수사를 문제 삼으며 무죄 주장 빌드업을 해놓은 상태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처리 과정에서 국민 신뢰를 적잖이 잃은 상태인 것도 그들에겐 호재다. 국민들은 법원이 이 대표 사건을 신속하게 재판해 다음 대선(2027년 3월)이 본격화하기 전에 최종 결론을 내길 바라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재판이 지연되면 이 대표는 버티기에 들어가고, 한국 정치는 이제껏 가보지 않은 영역으로 접어들 공산이 크다.
트럼프 당선의 또 다른 메시지는 경제 심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적했듯, 결과적으로 ‘경제가 전부’인 선거였다. 유권자의 40%가 경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았고, 그들 중 60%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사실 요즘 미국 경제는 부러울 정도로 잘나간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연율)은 2.8%,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4%, 실업률은 4.1%다. 게다가 주가는 역대 최고다. 오죽하면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가 “경제가 지금처럼 잘 돌아가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다. A+를 주겠다”고 했을까.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한참 달랐다. 한번 오른 물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식료품 가격은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4년 전보다 20% 이상 뛰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치솟은 주택담보대출, 자동차대출 금리는 예전만큼 내려오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것이다. 트럼프는 영리하게 이런 실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그게 먹혔다. 경제 실정 심판론이 대분출했다.
한국 상황도 얼추 비슷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수시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자찬한다. 그러나 체감경기는 바닥이다. 은행 대출이자는 여전히 높고 생활물가는 비싸다. 자영업 경기는 외환위기나 코로나19 때보다 더 나쁘다. 광화문, 강남 등 서울 일급 상권도 저녁 9시면 어두워진다. 골목 상권은 말할 것도 없다. 임금근로자 10명 중 약 4명(38.2%)이 비정규직(845만여 명)인데, 작년보다 33만여 명 늘었다. 평균 월급은 204만8000원, 정규직(379만6000원)의 54%밖에 안 된다. 이러니 ‘역대 최고 고용률’이라는 정부 자랑에 울화가 치밀 수밖에.
임기 반환점을 돈 윤 정권도,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국민의힘도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답은 미 민주당의 선거 패인에 다 나와 있다. 야당 대표 사법처리만 기다리지 말고, 여당과 정부가 할 일을 하라. GDP 같은 거창한 지표 얘기는 접어두고 생활물가, 일자리 등 민생을 제대로 챙겨라. 트럼프의 당선을 보고서도 각성하지 못하면 정말로 답이 없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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