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영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시진핑도 못 막는 中 사교육… 3년 만에 꼬리 내린 ‘쌍감정책’

송세영 2024. 11. 1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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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 1년도 안돼 시장 초토화되고
편법 운영·고액 과외·실업률 늘자
정책 철회 없이 슬쩍 사교육 묵인
권위주의적 개혁 실패 사례로 남아

쌍감(학업 부담·사교육비 경감)정책 실시 이전까지 중국 최대 사교육 기업이던 신둥팡그룹의 국제캠퍼스를 견학하러 온 베이징의 중학생들. 아래 사진은 쌍감정책으로 2021년 파산한 유명 사교육 업체 쥐런교육의 한 분원. 바이두 캡처

중국 정부가 사교육을 억제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도입한 ‘쌍감정책’이 3년 만에 유명무실화됐다. 당국이 공식적으로 철회하거나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적용하지 않는다. 편법이나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사교육은 다시 양지로 올라왔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도 영향을 미쳤지만 학부모들의 사교육 욕망 앞에 중국 정부가 무릎을 꿇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2021년 7월 ‘중국 의무교육 단계의 학업 부담 및 방과 후 사교육 부담 경감에 관한 의견’을 발표했다. 초중학생의 학업 부담과 학부모들의 사교육 비용을 모두 경감한다는 의미에서 쌍감정책으로 불렸다. 핵심은 체육·예술 등을 제외한 교과 과목의 영리 목적 사교육 금지였다.

이 조치 발표 후 1년도 채 안 돼 중국 사교육 업체의 90%가 문을 닫았다. 한때 2조 위안(약 388조원) 규모였던 중국 사교육 시장은 초토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일 교육 기업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미국 나스닥 상장까지 했던 신둥팡그룹이다. 시가총액이 300억 달러(41조원)가 넘었던 신둥팡의 주가는 쌍감정책 발표로 90% 이상 폭락했다. 직원 8만명 중 6만명을 해고하고 전국 곳곳의 학원 체인점 1500개를 폐쇄했다. 신둥팡은 주력 업종을 라이브 커머스로 전환해 겨우 살아남았지만, 전국에 100여개 분원을 운영하며 수강생이 20만명을 넘었던 27년 역사의 쥐런교육은 파산했다. 영어 교육의 강자로 불린 20여년 역사의 월스트리트영어도 문을 닫았다.

일부 사교육 업체는 편법을 동원해 명맥을 유지했다. ‘논리적 사고’라는 이름으로 수학을 가르치거나 과학이나 예체능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면서 영어 과외를 하는 식이었다.

시간당 수십만원을 받는 고액 과외도 등장했다. 당국에 적발돼 벌금을 내도 남는 게 더 많았기에 고액 과외 시장에 뛰어드는 명문대 졸업생들이 늘었다. 고액 과외는 비싼 과외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고소득층만 이용할 수 있어서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작용까지 낳았다.

중국 학부모들의 자녀 교육 욕망도 이를 부채질했다. 사교육 과열을 낳은 대학 입시 경쟁과 학벌주의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학부모들만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2022년 12월 중국 교육부가 다시 칼을 빼 들었다. 편법·불법 사교육을 2024년 6월까지 완전히 근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중국 저장성의 학부모 왕모씨는 “사교육이 완전히 중단된 적은 한 번도 없다”면서 “학생 성적이 떨어지면 교사가 은근히 과외를 권장하곤 한다. 성적이 교사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에 청년 취업난까지 겹치자 당국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교·대학 재학생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는 새로운 통계 방식을 도입했지만, 지난 9월 청년실업률은 17.6%로 여전히 높았다.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탕핑족’,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에 의지해 사는 부실 자녀를 뜻하는 ‘란웨이와’ 등 신조어들이 중국의 극심한 취업난을 보여준다.

중국 당국이 쌍감정책에 위배되는 사교육 업체들을 묵인하기로 한 정황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중국 사교육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한 교민은 “지난 7~8월 쌍감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당국의 의지가 일선 학원들에 전달됐다”면서 “일시적인 방침인지, 정책을 완전히 전환한 건지 신중하게 타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중국 사교육 종사자와 학부모, 분석가 등 15명 인터뷰를 근거로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중국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사교육 업체에 대한 압력을 조용히 완화했다”며 “3년 전 정부의 단속으로 큰 피해를 입은 사교육 업계가 부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남부에 사는 리모씨는 “아들과 딸의 과외비로 월 3000위안을 지출한다”면서 “커튼을 치고 숨어서 강의하던 사설 학원들이 최근 공개적으로 수업을 한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그는 “경쟁 압력이 높은 중국의 교육 환경에선 부모들이 자녀의 발전을 위해 과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쌍감법 후퇴에 대한 신호는 중국 국무원이 지난 8월 소비 촉진을 위한 20개 항목에 교육 서비스를 포함했을 때도 감지됐다. 1100만명 이상의 대학 졸업생이 취업 시장에 나올 무렵이었다.

컨설팅회사 올리버와이먼의 클라우디아 왕은 “정부가 일부 저질 교육 업체를 제거한 후 높은 청년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부문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매우 근본적인 변화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열된 사교육을 규제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쌍감정책의 취지는 좋았다. 중국에선 심각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될 정도로 사교육 부담이 컸다. 하지만 일자리와 학벌주의, 내수 경기 등이 얽힌 복잡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쌍감정책은 결국 시진핑 정부가 추진한 권위주의적 개혁의 대표적 실패 사례가 됐다.

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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