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나의 글쓰기 선생님

2024. 11. 1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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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책을 내게 되셨어요?" 변호사로 일하며 책을 두어 권 출간했다는 걸 알고,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이렇게 써놓은 메모 같은 글들이 꽤 모이니까 책으로 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분명히 사건에 대한 내 느낌과 감정이 있었을 것인데, 일에 내 생각과 느낌을 개입시키지 말자는 직업병 같은 게 있었던 것이구나.

변호사 일을 하면서 내가 하기 싫어도 참고, 내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억지로 참고 노력할 일이 아니라 내려놓음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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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어떻게 책을 내게 되셨어요?” 변호사로 일하며 책을 두어 권 출간했다는 걸 알고,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본다. 생각해보면 학생 때부터 끄적끄적 뭔가를 쓰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낡은 동아리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낙서장에도, 고시 공부가 지겨울 때마다 펼쳐 들었던 작은 수첩에도 책을 읽다 발견한 좋은 글귀나 작은 생각들을 적었다.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은 내가 막 새내기 변호사로 일하던 때였다. 여기에 ‘법정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재판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연재했다. 그땐 재판을 다니는 송무변호사 중에 젊은 여자 변호사가 별로 없었다. 젊은 여성 법조인들은 대개 법원 예비판사거나 대형 로펌에서 송무보다 자문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재판을 방청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 갑자기 다가와 “결혼하셨어요?”라고 물어봐서, “왜요?”라고 반문하니까,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내기했다고 한 적도 있었다. 서류봉투 들고 법원으로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님이 “사모님이 젊으신데 이혼하러 가시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이렇게 재판을 혼자 다니다 보면 웃긴 일도 있고, 힘들고 마음 아픈 일도 있었는데, 이런 감정들이 마음에 남았다. 그걸 글로 써서 올리면 지인들이 함께 웃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 고되고 바쁜 생활 가운데 소소한 위로가 됐던 것 같다.

그러다 한 포털사이트의 글쓰기 플랫폼을 시작했다. 꾸준히 해왔던 소년사건 국선재판 이야기나 일상의 소소한 단상을 연재했다. 법원에서 상임조정위원으로 일한 후에는 주로 민사조정을 주제로 글을 썼다. 이렇게 써놓은 메모 같은 글들이 꽤 모이니까 책으로 내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변호사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매일 재판을 준비하며 판사를 설득하기 위한 준비서면을 쓰고, 의뢰인에게는 의견서를 쓴다. 그러니까 매일이 글쓰기 수련이었던 셈이다. 처음 로펌에 입사해서는 로펌 대표님이 나의 첫 글쓰기 선생님이 됐다. 먼저 주제별로 단락을 나누고, 주제에 맞는 법률이나 판례를 적고, 이를 사안에 적용하고, 단락별로 논리적인 흐름에 맞는 접두사(그러나, 그럼에도, 그러므로, 따라서 등)를 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로펌에서 일하다 정부부처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모셨던 과장님이 나의 두 번째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과장님은 빨간 펜 선생님이 되어 변호사 특유의 호흡 긴 만연체를 고쳐주었다. “안 변호사, 기억해. 공무원은 4줄 법칙이 있어. 한 단락에 4줄이 넘어가면 안 돼. 알았지?”라고 신신당부하시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 보고서를 고쳐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세 번째 글쓰기 선생님은 어느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대표님은 내가 처음 보낸 원고로는 책을 내기 어렵고, 여기에 내 얘기가 더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내 생각과 느낌,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분명히 사건에 대한 내 느낌과 감정이 있었을 것인데, 일에 내 생각과 느낌을 개입시키지 말자는 직업병 같은 게 있었던 것이구나.

“그럼 제가 솔직해져야 하는 거네요! 용기를 내야 하고요.” “맞아요.” “노력해 볼게요.” “노력보다는 내려놓으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선문답 같은 대화 속에서 내 삶에 큰 도전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내가 하기 싫어도 참고, 내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는 경우도 많았는데, 억지로 참고 노력할 일이 아니라 내려놓음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낙엽이 다 져가는 이 가을, 차분히 마음을 탁 하고 내려놓고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 보면 어떨까. 그럼,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지현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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