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컷] 물파스와 때수건, 런던 간 까닭
한국식 때수건, 물파스가 영국 런던에 등장했다. 지난달 말부터 런던 영국영화협회(BFI) 극장에서 열린 특별전 ‘시간의 메아리: 황금기와 뉴시네마의 한국영화’ 자리에서다.
“이걸로 때를 밀어주면 아이들이 괴로워했던 추억의 물건입니다. 이 물파스는 상처가 난 데나 눈에 바르면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현지서 이렇게 소개한 사람은 장준환 감독.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 사진)가 특별전에 초청되자, 애장품을 챙겨왔다. 극 중 주인공 병구(신하균)가 외계인이라고 믿는 화학회사 사장(백윤식)을 납치해 지구를 지켜내는 무기가 바로 두 물건이다.
산업재해로 부모를 잃은 병구의 황당한 망상 같지만, 뒤통수를 치는 영화다. 권력의 논리로, 사람이 사람에게 인륜을 저버린 일들을 자행해온 인류 역사를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의 계략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영화 ‘1987’(2017)로 700만 흥행을 거둔 장 감독은 이 데뷔작 땐 7만 관객에 그치며 실패작이란 낙인을 받았다. 뒤늦게 진가를 알아본 국내외 영화팬, 영화제 수상이 잇따랐다. 올해 할리우드판 리메이크 제작에 돌입한 배경이다. 런던 상영관도 꽉 찼다. 때수건·물파스 장면에선 사전 설명 덕에 온 관객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영상자료원이 협력한 특별전은 1960~2000년대 총 41편의 한국영화를 70회 이상 상영한다. 영국에선 역대 최대 규모다. 그저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통째로 선보이는 자리다. 한국 대중에 미처 사랑받지 못한 숨은 걸작이 색다른 시각으로 발굴될지 모른다. 개봉 첫 주도 안돼 ‘망작’ 낙인을 찍곤 하는 요즘, 이 남다른 데뷔작의 팔자를 자꾸 곱씹게 된다.
나원정 문화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머스크 사랑' 노려라…개미 돈벌 이 신호
- 성기구 쓴 김소연 "환상의 세계 갔다"…야한 드라마로만 보면 오산, 왜 | 중앙일보
- "두 시신, 따로 옮겨라"…한날 죽은 예비부부 비극
- 고현정, 가장 황당했던 소문은…"연하 킬러, 배우 막 사귄다고" | 중앙일보
- 가수 벤, 출산 6개월만 이혼 "거짓말 너무 싫어…신뢰 무너졌다" | 중앙일보
- "아기 병원비 너무 감사"…수지 남몰래 기부, 댓글로 알려졌다 | 중앙일보
- "저거 사람 아냐?"…망망대해 19시간 버틴 男
- "살려달라" 발버둥치는데…4살 숨지게한 태권도장 CCTV 충격 | 중앙일보
- '해를 품은 달' 출연 배우 송재림, 39세 나이로 사망
- "마약했다, 저 죽어요" 아나운서 출신 '미스 맥심' 김나정 무슨 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