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빵에 굴착기도 판다…위기 맞은 주유소, 생존 몸부림
사라지는 주유소
지난 11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부천의 한 폐업 주유소. 철거되지 않은 상태로 폐타이어 수백개가 입구에 가득 쌓여있었다. 2022년 1월 폐업신고 후 3년 가까이 방치된 이곳은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잡초만 무성했다. 인근의 한 주유소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서 문 닫는 주유소가 많다”며 “업종 변경을 하려면 토지를 원상태로 복구해야 하는데 억 단위의 큰돈이 들기 때문에 방치한다”고 말했다.
이곳 뿐이 아니다. 중앙일보가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서 올해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영업 중인 전국 주유소 전수 데이터를 비교·분석한 결과 이 기간 전국 휴·폐업 주유소는 303곳에 달했다. 하루 0.8개꼴로 주유소가 문 닫는 셈이다. 최근 5년 새 연평균 145개씩 주유소가 폐업했는데, 올해 더 빨리 더 많은 주유소가 사라졌다. 2019년 1만1700개였던 주유소는 현재 1만776개까지 줄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60곳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서울도 동대문구 3곳, 강남구 2곳을 포함해 올해 총 18곳이 영업을 중단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저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셀프 주유소 직원 김 모씨는 “요즘 소비자도 다 오피넷 사이트를 보고 싼 곳을 찾아간다. 일반 승용차 차주에게는 30~40원 차이가 캔 커피 하나 정도겠지만, 화물기사들에게는 점심 한 끼 값을 확보할 수 있는 정도의 큰 가격 차이”라며 “아무리 단골이고, 직원이 친절하게 하더라도 더 저렴한 곳을 일부러 찾아간다”고 말했다.
주유소 기름값이 제각각인 건 정유사에서 얼마에 기름을 사 오는지와 마진을 얼마만큼 남기느냐에 따라 주유소별 가격이 다르다. 기름값은 정유사 판매가·유류세·유통비용(마진)으로 구성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같은 정유사에서 거래하더라도 주유소별로 계약 내용이 다 다르다”며 “물류비가 많이 드는 지역에 위치하는지, 거래량이 얼마만큼 인지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서 정유사 판매가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저가경쟁으로 마진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 보급이 늘어난 것도 주유소 폐업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제 주유소 사업 자체는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사업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불경기도 영업의 어려움에 한몫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주유소의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2.1%로 일반 도소매업(3.9%)을 밑돈다.
주유소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수익을 내기 위해 다양한 사업과 병행을 하는 식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주유소에는 차 없이 걸어오는 손님이 가끔 눈에 띄었다. 주유소 1층에 위치한 소금빵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이다.
편의점과 세차장 운영은 기본이며, 이미 고용한 직원을 활용할 수 있는 무인점포도 인기다. 개인사업자뿐 아니라 직영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GS칼텍스는 국내 최초로 주유소를 활용한 스마트 물류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HD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에서 굴착기 전시를 하거나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휴·폐업 주유소는 증가할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한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은 서울이나 대도시 지역의 주유소는 매각 후 용도 전환해 화려한 빌딩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유동 인구가 적은 지역에 위치한 주유소는 폐업은 고사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아 도시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박해리·최혜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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