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새 15조 던진 외국인…배경엔 트럼프식 ‘두더지 잡기’ 관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지난 6일(현지시간) 이후 미국과 한국 증시의 엇박자는 심화하고 있다.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 등 미국 주가지수는 지난 11일까지 닷새째 상승 중이지만, 코스피는 사흘 연속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상승도 한국의 하락도 모두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 경제 정책)’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국 ‘5.3만 전자’된 삼성전자
트럼프 2기는 확정된 순간부터 한국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 사흘 동안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총 1조940억원 어치(외국인 3148억원, 기관 7792억원)를 팔아치웠다. 특히 외국인은 이미 지난 8월부터 국내 증시를 떠나기 시작해 이날까지 총 14조747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날 삼성전자가 3.64% 하락해 5만30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저가를 쓴 것도 3497억원을 순매도한 외국인의 영향이었다.
한국 증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부진하다. 지난 8월 5일 세계 증시가 동시에 폭락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 이후 주가 회복력은 G20(주요 20개국) 중 사실상 최하위다. 코스피는 폭락일 직전 증시개장일(8월2일)부터 지난 8일까지 7.8% 하락해 러시아(-19.8%), 튀르키예(-17.2%)에 이어 세 번째로 낙폭이 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고, 튀르키예가 심각한 인플레이션(10월 소비자물가상승률 48.6%)을 겪는 특수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사실상 최하위다. 미국(9.7%) 캐나다(9.3%) 독일(6.5%) 일본(3.6%) 호주(2.5%) 등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한 성적표다.
트럼프式 무역 규제, 국장이 더 취약
한국 증시가 유독 부진한 이유는 증시에서 수출 기업과 반도체 업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수출 기업의 영업이익이 전체 상장사의 70%에 달하다 보니, 트럼프식 무역 규제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앤드루 틸턴 아시아태평양 수석 경제학자는 트럼프의 ‘두더지 잡기(Whack-a-Mole)’식 관세 위협이 중국은 물론 한국·대만 등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두더지 잡기 식 관세 정책이란 한국처럼 미국과 우호적 관계인 국가라도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면 두더지 찾듯 찾아내 관세 인상 조치를 한다는 의미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나온 이후 한국은 물론 대만 증시도 하락했다”며 “트럼프식 무역 정책에 따른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수출 경기 자체가 둔화할 것이란 전망도 증시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하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는 수출 실적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이 지수가 9월 정점(100.9)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해 앞으로 수출이 둔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여기에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하는 등 대북 리스크가 커지는 점도 증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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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전망 악화에 증시도 직격탄
코스피에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9.9%로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세계 반도체 시황이나 전망이 좋지 않으면 증시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된다. 전날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반도체·인공지능(AI) 분야에 10조엔(91조5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곧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경쟁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로 이어졌다. 여기에 미국발 보호주의에 따른 공급망 악화 우려로 세계 반도체 경기의 선행지표인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이틀 연속 내리면서 국내 증시 하락세를 더욱 키웠다.
“주주환원 늘리고 공매도 제한 없애야”
전문가들은 결국 트럼프식 관세 리스크에도 국내 수출 기업이 제품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경제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자금 조달 문턱을 낮춰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불필요한 규제로 인한 비용 낭비도 감축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 눈높이에 맞는 증시 환경 조성 노력을 강조했다. 국내 상장기업 역시 실적 부진을 타개하고, 주주 친화 경영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3분기 국내 상장사 3분의 1은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10% 이상 밑도는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국내 수출 기업들이 트럼프식 관세를 피하려고 모두 현지 생산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 기업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실적 개선, 주주 환원 등 밸류업 방안을 더욱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익 교수는 “주식시장에 공매도를 여전히 제한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가 볼 때 한국 증시 저평가(디스카운트) 요인이 될 수 있다”며 “공매도 제한을 없애는 한편, 기업도 주주 환원을 더 늘려야 증시 자금 이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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