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종손과 결혼 3일전 '조기 폐경'…결핍 청춘의 반전드라마

황지영 2024. 11.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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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미스터 플랑크톤'을 연출한 홍종찬 감독. 사진 넷플릭스

“먹이 사슬의 맨 밑바닥, 바닷속 가장 미천한 존재.”
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미스터 플랑크톤’(10부작)의 주인공 해조(우도환)가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대사다. ‘코믹 로드무비’ 장르를 표방하지만, 주인공들의 설정은 전혀 코믹하지 않다. 플랑크톤처럼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청춘들이다. 불운이 한 가지만 닥쳐도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인데, 주인공들은 태생부터 꼬인 채 잇따라 불운을 경험한다.

해조는 병원의 시험관 시술 실수로 다른 씨(정자)를 안고 태어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이로 인해 중학생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안고 살던 그는 어느 날, 유전병으로 인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해조의 전 여자친구인 재미(이유미)는 보육원 출신으로, “엄마가 없으면 엄마가 되자”는 꿈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스물여덟 살에 돌연 조기 폐경을 진단받는다. 500년 대를 이어온 종가의 종손이자 5대 독자 어흥(오정세)과의 결혼을 3일 앞두고서다. 재미의 불행을 알게 된 해조는 “넌 시집이 아니라 도망가고 싶을 거다”라면서 재미를 납치해 자신의 친부 찾기 여정에 끌어들인다.

'미스터 플랑크톤'은 실수로 잘못 태어난 남자 해조(우도환)의 인생 마지막 여행 길에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여자 재미(이유미)가 강제 동행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진 넷플릭스


작품을 연출한 홍종찬 감독은 1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해조와 재미 같은 인물이 어딘가는 있을 거다. 극단적인 설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남들이 모르는 결핍이 있다”면서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어딘가 결핍은 있으나, 모두가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tvN ‘디어 마이 프렌즈’, JTBC ‘라이프’,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 등을 연출했다. 극본을 쓴 조용 작가는 전작인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통해 결핍이 많은 인물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미스터 플랑크톤’에서 사연 많은 사람은 해조와 재미 뿐만이 아니다. 해조 때문에 사랑과 돈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해 복수하러 그의 뒤를 쫓는 왕자파 두목 칠성(오대환), 해조의 동업자였다는 이유로 칠성에 붙잡힌 기호(김민석), 귀한 아들 어흥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호자(김해숙)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도 절절하다. 홍 감독은 “캐릭터가 전부인 드라마다. 인물들의 이름도 정감 가게 설정했다”고 부연했다.

특히 사라진 약혼녀 재미를 찾아 헤매는 어흥은 시청자들이 가장 감정이입하기 쉬운 인물이다. 종갓집에 태어나 반항 한 번 못하다, 진정한 사랑인 재미를 만나 행복을 알게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재미가 사라졌다. 힘들게 찾은 재미는 해조와 다시 사랑에 빠진 후였고, 슬픔에 방황하던 어흥은 한의사를 그만두고 방랑 유튜버가 된다.

홍종찬 감독은 "공감이 가고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면 주저없이 연출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홍 감독은 “어흥 뿐 아니라 해조, 재미, 호자 등 모든 인물들이 플랑크톤이라 생각했다”면서 “누구의 관계성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감정선이 달라지는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빛을 반짝반짝 내면서 산소를 내뿜는 존재”
해조의 정해진 죽음으로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메시지는 희망을 담고 있다. 해조와 재미는 방랑하며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어흥은 재미를 찾는 험한 여정을 통해 성숙해진다. 어흥 대신 양아들을 입양하는 호자, 해조에 마음을 여는 길러준 아버지(이해영)도 저마다의 행복을 가슴에 품는다.

배우 오정세는 넷플릭스 시리즈 '미스터 플랑크톤'에서 종가의 5대 독자 어흥 역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생태계 유지에 꼭 필요한 산소를 내뿜는 플랑크톤처럼,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사람도 제 역할이 있으며 자신만의 빛을 낸다는 주제의식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풀어낸다.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주요 장면에 삽입돼 긴 여운을 남긴다. 홍 감독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대본을 생각하다가 로드무비 장르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른 음악이다.

홍 감독은 “이 작품은 소박한 그릇 같다. 메가 히트하는 작품도 좋지만 내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해준다면 그것 또한 뿌듯하고 감사한 일”이라면서 “누군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고,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있는 작품이라면 주저 없이 연출하겠다”고 말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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