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업, 트럼프 후원금 모금했던 로비스트에 올 초부터 투자했다

윤성민 2024. 11. 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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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FP=연합뉴스

“미국 대선 당일 저녁부터 휴대전화가 자주 울리고 있다.”

미국 로비 회사 ‘차트웰 전략 그룹’을 이끄는 로비스트 데이비드 타마시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에게 전화가 오는 이유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에선)일이 빨리빨리 벌어진다는 점을 최고경영자(CEO)들과 국제적인 인사들은 불안해 한다”고 설명했다. 타마시는 2016년과 2020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거 후원금 모금 조직인 ‘트럼프 빅토리 펀드’에서 재무위원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친(親) 트럼프’ 로비스트다.

타마시가 이끄는 차트웰 전략 그룹은 현대자동차가 올초 새로 계약을 맺은 로비 회사다. 차트웰 전략 그룹은 미국 내에서 대표적인 공화당계 로비스트 회사로 꼽힌다. 주로 미국 민주당에 공을 쏟았던 현대차는 올초 트럼프 후보가 부상하자 공화당 쪽으로 무게 추를 옮기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친 민주당’ 로비 회사인 DLA파이퍼와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계약을 종료하기도 했다.

12일 미국 로비자금 추적 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현대차가 올 1~3분기 차트웰 전략 그룹에 지급한 금액은 33만 달러(4억6000만원). 차트웰 전략 그룹은 전기차, 수소 연료 등 현대차가 벌이는 미국 사업과 관련해 현대차를 대신해 로비를 벌였다고 미 의회에 신고했다. 차트웰 전략 그룹은 최근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시 기대할 수 있는 정책을 현대차 등 고객사에게 브리핑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참석자들이 2022년 10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 현대차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넘버2’이고, 전기차 수요는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정치적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은 올초 트럼프 후보가 주목받기 시작하자 ‘K-스트리트’(워싱턴DC의 로비스트 회사가 많은 거리)에서 공화당 쪽 로비스트를 찾아왔다.

삼성전자는 미국 법인 삼성전자 아메리카에서 자체적으로 로비스트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올해 공화당과 관련 있는 인사들을 강화했다. 예컨대 올해 영입한 켈시 가이젤만은 미국 텍사스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의 정책보좌관 출신이다. 삼성전자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 아메리카는 로비스트 9명을 고용하고 올 1~3분기에만 그들에게 48만9000달러(68억5000만원)을 지급했다.

SK그룹은 올해부터 로비스트 회사와 계약하는 방식과 별개로 미국 법인 SK 아메리카에서 직접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방식을 시작하면서 미국 내 대관을 강화했다. 기존엔 SK하이닉스 아메리카만 직접 로비스트를 고용했다. SK 아메리카 로비스트 명단엔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일했던 인사, 상·하원 보좌진 출신 등이 포함됐다.


대선 뒤 트럼프와 ‘끈’ 있는 인사 찾기 분주


2017년 11월 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한국을 국빈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윤부근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당선됐을 때만 해도 그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재계는 트럼프 쪽 인맥 찾기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분위기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기업들은 일반적인 관측보다 좀 더 일찍부터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인맥을 만드는 등 대비를 해왔다. 지금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세우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대관조직인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팀을 실 단위로 승격하는 등 국내 대기업들은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 대관을 강화해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국내 기업들의 손익 계산은 빨라지고 있지만, 우선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 관계자는 “미국 법인에서 주로 대응을 하는데, 그쪽에서 트럼프 1기 때와 2기 때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 신중하게 현장 분위기를 보면서 대응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선 결과 발표 뒤 트럼프 당선인과 ‘끈’이 있는 인사를 찾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은 빨라졌다고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미 트럼프 당선인과 가까운 로비스트 수수료가 올라가고 있다”며 미국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한경협이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과 함께 연 '제31회 한일재계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단체 차원에서 트럼프 당선인 측 인사들과 소통의 문을 열려는 노력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은 다음달 미국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제35차 한·미 재계회의에 참석한다. 삼성·SK·현대차·LG 4대 그룹 관계자들도 참석한다. 한경협 회장을 맡고 있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도 참석하는데, 류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 측 인사와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한경협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입각할 인사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다음 인사 때 입각할 인사들이라도 만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도 다음달 워싱턴DC에서 ‘미국 차기 행정부와의 경제협력’ 세미나를 연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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