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행담도휴게소 전경. 전국 고속도로휴게소 중 매출액 1~2위를 다투는 휴게 명소가 됐지만 행담도주민들의 삶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다. |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아카이브 |
소설 <상록수>를 집필한 심훈(1901~1936)의 수필 <칠월의 바다>는 이렇게 끝맺음했다.
상록수를 집필하던 1935년 그해 여름, 심훈은 당진 앞바다인 '가치내'(행담도)를 방문하고 수필 <칠월의 바다>를 썼다. 심훈은 식민지 치하에서 모진 시대 풍파에 시달리는 노파의 고단한 삶 속에서 '가치내'에서 잘 자라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며 희망과 해방의 미래를 내다봤다. 심훈은 '상록수'처럼 푸르른 조국의 모습을 88년 전 '가치내 사람들'에서 미리 봤다.
▲ 개발 전 행담도 마을 풍경 |
ⓒ 이익주 |
▲ 관광객이 끝없이 오가던 행담도 포구 (1980년 대) |
ⓒ 당진시 |
그들에게 서해대교와 행담도 휴게소는 일제강점기 문전옥답과 조상 묘를 파헤치고 굉음을 내고 달리던 칙칙폭폭 기차와 같은 존재였다. 1908년 1월 11일 <대한매일신보>는 경부선철도가 몰고 온 근대화로 전국을 떠돌며 유리걸식하고 있는 민중들의 참혹한 상황을 전하고 있다.
▲ 행담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행담도 갯벌 |
ⓒ 당진시 |
그로부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행담도에는 휴게시설이 갖춰져 전국 고속도로휴게소 중 매출액 1~2위를 다투는 휴게 명소가 됐다.
하지만 행담도 주민들에게 서해대교와 휴게소는 철도와 같은 폭력과 수탈의 상징물이다. 행담도 한복판을 동서로 쭉 가르며 서해대교가 지났다. 당시 도로공사와 시공업체는 이주대책도, 생계 대책도 없이 원주민들을 내쫓았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싸우던 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도로공사와 공사업체 관계자들의 욕설과 폭언, 위협이었다. 행담도휴게소가 들어설 즈음에는 행담섬에 '행담도 사람들'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공동 우물, 행담분교, 새마을 주택, 행담 포구, 정겨웠던 홍화벌-큰 퉁소바위-동녘곱-마당녀 등 행담섬의 지명까지...
▲ 개발전 행담도 모습과 주변 지명 |
ⓒ 당진시 |
지난해 3월, 행담도 사람들 수십 명이 20여 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쏟아낸 행담도에 대한 기억과 바람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행담도에 대한 꿈을 꿉니다. 자다가 일어나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을 쏟아냅니다."
"가축처럼 내몰려 쫓겨난 상처가 떠올라 행담도휴게소에 갈 수가 없더군요."
▲ 매립돼 사라지기 전 큰 퉁소바위 모습(2001년 6월) |
ⓒ 당진시 |
▲ 행담도 초가집 (1970년 대) |
ⓒ 당진시 |
행담도 원주민들은 도로공사에 행담도 휴양지 개발과는 별개로 당장 실향의 아픔을 달래줄 '마을 역사관'(마을사 전시관)을 조성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행담도휴게소 뒤편에는 한국도로공사 서해대교 홍보관(안전센터) 건물이 있다. 홍보관에는 서해대교 전경과 준공 당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서해대교 홍보관'을 행담도 마을 역사 중심의 '행담도 마을역사관'으로 재단장하면 어떨까.
행담도 휴게소 왼쪽에는 충남도 소유의 충남도 홍보관(신평농협 로컬푸드 행복장터)이 있다. 도로공사와 충남도, 당진시가 충남도 홍보관의 일부 공간을 행담도 마을 역사관으로 꾸미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 행담도 주민들(1980년 대) |
ⓒ 이익주 |
▲ 작년 3월 20여 년만에 행담도주민들이 모여 실향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
ⓒ 당진시 |
하지만 행담도 주민들을 내쫓고 새 주인이 된 한국도로공사가 원주민들에게 내놓은 답변은 행담도 개발 당시와 다르지 않다.
▲ 행담분교 |
ⓒ 당진시 |
▲ 행담도에서 한 아이가 행담도 앞바다를 보고 있다. (1981년) |
ⓒ 이익주 |
행담도 원주민들은 '행담도, 그 섬에 우리가 살았다'고 눈물로 외치고 있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전국 각지에 행담도 출신 주민들이 살고 있지만, 꿈에서도 고향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는 행담도 휴게소에 정작 이곳 출신인 주민들은 상처로 남은 기억 때문에 행담도 휴게소에 가지 못합니다. 행담도 휴게소 뒤편에 서해대교 건설 당시 약력이 기록된 기념비가 있고 서해대교 홍보관이 있지만, 정작 행담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연재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는 이 기사로 끝납니다. 그동안 정성스럽게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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