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美 '제2의 페이퍼클립' 시동…'AI 초격차' 인재 포섭 사활
"해외 인공지능(AI) 인재를 끌어들이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가 '페이퍼클립 작전(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독일 과학자 포섭 작전)' 같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AI 국가안보각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AI 안보 각서에 나와 있는 미국의 인재 확보 노력이 마치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능한 핵 과학들을 해외에서 모셔오기 위해 힘썼던 상황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페이퍼클립 작전'은? "독일 과학자 포섭…美 핵개발 우위"페이퍼클립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시된 미국 전략사무국(OSS)의 나치 독일 주요 인사 포섭 작전이다. 이 작전은 1945년부터 1946년까지 OSS에 의해 수행됐으며 OSS가 폐쇄되고 중앙정보국(CIA)이 미국의 정식 정보기관이 된 후 페이퍼클립 작전과 유사한 나치 독일 과학자 포섭작전을 1955년까지 수행했다. 나치 독일의 과학기술과 유능한 과학자들을 포섭했는데, 특히 항공역학, 로켓기술, 화학무기, 화학반응기술, 의약품에 대한 과학기술을 중점적으로 획득했고 이에 관련된 과학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러시아와의 핵무기 개발 경쟁에서 앞서나갔다. 특히 훗날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받으며 핵무기에 의한 힘의 논리에서 비보유국을 영원히 따돌릴 수 있게 됐다.
AI 패권 장악 위한 제2의 페이퍼클립 작전 시동이번 'AI 국가안보각서'에 나온 내용의 핵심도 '해외 AI 고급 인력' 모셔오기로 요약된다. 우선 AI 안보각서는 "국무부·국방부·국토안보부가 모든 가용 가능한 법적 권한을 동원해 AI 전문가를 유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민 정책도 포함된다. 또 "90일 내 국가안보보좌관은 AI 전문가의 입국 비자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유관 행정 부처 및 기관을 소집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아울러 "180일 내 경제정책보좌관·국가경제위원회는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AI 인재 시장에 대한 분석을 준비하라"고 쓰여 있다. 90일 내 조정그룹 내 모든 기관의 고위 AI 관계자로 구성된 ‘국가안보AI인재위원회’도 설립해야 한다고도 요구하고 있다.
AI 안보각서는 지금까지 민간 기업 주도로 개발되던 AI를 핵무기, 우주기술과 같은 국가 전략 자산으로 지정해 정부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냈다. 특히 AI 굴기를 추진 중인 중국과 초격차를 벌리겠다는 목표를 세계 각국에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된 AI 국가안보각서는 미국의 AI 리더십을 확보하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한 각 정부 부처의 이행 방안을 담고 있다.
美 AI 인재 풀 부족 심화…머스크 "가장 미친 인재 전쟁" 평가현재 미국은 AI 기술 부문에서도 단연 초강대국이다. 글로벌 생성 AI 붐을 촉발한 오픈AI, AI 학습·추론에 필수적인 AI 칩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 AI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가 즐비하다. 영국 매체 토토이즈가 발표한 2024년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미국의 AI 역량 점수는 100으로 전 세계 1위다. 그 다음이 중국(53.88)이었고 이어 싱가포르(32.33), 영국(29.85), 프랑스(28.09), 한국(27.26) 등 순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AI 고급 인재가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배출되고 있어 미국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카고대 폴슨 연구소 산하 싱크탱크인 마르코폴로의 ‘글로벌 AI 인재 추적’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AI 고급 인재 점유율은 중국이 47%로 1위다. 미국은 18%로 그 뒤를 잇지만, 중국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현재 AI 발전 속도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 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픈AI에서는 지난 5월 일리야 수츠케버 공동 설립자가 퇴사하는 등 2016년 고용된 100명의 AI 전문가 중 50%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 플랫폼에서는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구글 AI 연구소 딥마인드 일부 연구원에게 물밑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업계 간 치열해지고 있는 AI 인재 사냥을 두고 "내가 본 것 중 가장 미친 인재 전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中, AI 논문·특허 건수서 美 앞서 "고임금으로 구애"중국은 지난해 상급 AI 논문 숫자와 주요 국가 AI 특허 건수에서도 미국을 제쳤다. 중국과학기술정보연구소(ISTIC)가 지난 7월 발간한 ‘2023 글로벌 AI 혁신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상급 학술지에 실린 AI 논문 점유율과 특허 점유율은 각각 36.7%, 34.7%로 미국(22.6%·32%)을 따돌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빅테크도 AI 분야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 분야 평균 급여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을 제시하며 구애를 벌이고 있다. 베이징대와 구인구직 플랫폼 질리안자오핀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전역에서 AI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으며 특히 자연어처리 분야는 기존 빅테크와 스타트업 모두 적극적으로 구인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 자연어처리 분야 인재 수요는 작년 상반기 대비 111% 급증했으며 이들에 대한 월평균 급여는 2만4007위안(약 465만원)으로 IT 분야 평균 월급(1만1000위안)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트럼프 2.0시대에도 中 AI 견제 강화될 것"결국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AI 인재를 영입하며 국가 전략 자산화에 힘쓰는 것은 가장 큰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SCMP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AI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에서 중국의 부상과 발전을 견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많은 행정명령을 뜯어고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AI 안보각서만큼은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AI 발전 정도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이견 없이 공유하고 있는 의제이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중국 AI 등 첨단산업에 대한 미국 투자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도 AI 인재 유치의 중요성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 경제 매체 포천은 "(막대한 해외 투자자본은) 중국이 AI 산업 고급 인재를 채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0월에도 해외 AI 전문가가 미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이민 규정을 완화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당시 구글, MS 등 자국 빅테크는 정부의 이 같은 행정 명령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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