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이란 말,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소준섭 기자]
오래 전부터 신문기사 제목에 "대통령님, ....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대통령님'이라는 용어가 보이곤 했다. 주로 진보 언론 진영에서 이 용어가 일종의 유행처럼 사용되어왔다.
최근 '용산'이 보여주는 행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더이상 '대통령님'이라는 용어를 도저히 인내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점에서 엊그제 <조국 대표 "대통령님, 지금 휴대전화 김건희 씨가 보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게 되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얘기이지만,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본래 '대통령'의 영어 원어는 president이다. 'president'는 원래 'preside(회의를 주재하다, 의장으로 행하다)'로부터 유래된 용어로서 '여러 가지 단체의 장(長)' 혹은 '의장'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미국 건국 당시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영국과 달리 신대륙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자긍심을 가졌던 미국으로서 권위적이고 민중 위에 군림하는 성격을 지닌 '황제'나 '왕'이라는 용어 대신 민주적이고 탈권위주의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라는 명칭은 그렇지 않아도 권위적인 '통령(統領)'이라는 일본식 용어에 '클 대(大) 자'를 붙여 지극히 권위적인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president라는 용어의 취지와는 완전하게 상반되고 위배된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오는 현상까지 나타난 것은 '대통령'이라는 용어와 결코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대통령님'은 극존칭어, '나랏님'과 '신민'의 관계 연상돼
이렇듯 '대통령'이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권위적인 존칭이다. 더군다나 거기에 '님' 자를 붙여 '대통령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존칭어 중에서도 극존칭어이다. 언어란 개념을 담는 그릇으로서 언어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개념이란 특정 언어로 표현되어 특정한 내용을 내포하게 되는 것으로서 따라서 언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즉,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언어생활은 사고를 규정한다.
라이프니츠(Wilhelm Leibniz)는 "언어는 인간 정신의 가장 좋은 거울이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언어에 대한 선택과 사용 그리고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사회적 약속 이행의 시작이다. 언어는 행동과 심리를 지배한다.
'대통령님'이란 말은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에 대해 비판이 일자 DJ 정부 때 '대통령님'이 대안으로 제시되면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통령님'이라는 극존칭어를 쓰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극존칭어를 사용하는 대상과 일종의 상하 관계가 만들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복종하는 '신민(臣民)'으로서의 행동과 심리가 생겨난다. 그리해 일종의 '나랏님'과 '신민(臣民)'의 관계가 설정된다.
앞에서 예로 든 "조국 대표 '대통령님, 지금 휴대전화 김건희 씨가 보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뉴스는 물론 직접 조 대표가 '대통령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용산 담화'를 비판하면서 "제가 기자였다면 '대통령님, 지금 휴대전화 김건희 씨가 보고 있냐'고 물었을 텐데 아무도 묻지 않더라"라는 내용을 한 언론사가 편집해 제목으로 올린 것이긴 하다. 그런데 이 지점도 상식적으로 묻고 싶은 대목이다. 과연 기자들은 '대통령님'이라고 굳이 '님' 자를 반드시 붙여서 받들고 모셔야 하는 것일까? 정히 높임말을 쓰고 싶다면 "대통령께서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핵심 없고 회피만 있는 대국민 담화... 윤 대통령님, 이게 최선입니까?"
"대통령님,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대통령님, 왜 임명 안 합니까"
"대통령님, 당선되던 그날 약속 기억은 하십니까?"
"윤 대통령님, 질문 있습니다!"
위의 기사들은 모두 진보 쪽 언론에서 나온 기사들의 제목이다.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대통령님, 왜 임명 안 합니까" 제하의 기사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관련 내용이다. 유가족들은 질의서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들을 지체없이 임명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여 '대통령님'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제목에 '대통령님'을 추가해 편집해 만든 것이다. "대통령님,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기사 역시 제목에 '대통령님'이란 말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야당 정치인들도 '대통령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박주민 의원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님, 이제 사과하시겠습니까"라고 운을 뗀 뒤 "약속을 지키시라"고 요구했다.
'대통령님' 같은 말은 민주적이지 않다
우리 헌법은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에 있으며, 모든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공복(公僕)'으로 선출된 것일 뿐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대통령'이라는 권위주의적 명칭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연히 '대통령님'이라는 극권위주의, 극존칭어는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에서 더욱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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