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우승 10년 ..음악과 상관 없이 그냥 해 보는 여유 생겨" [더 하이엔드]
■ 구찌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인터뷰 - ④ 피아니스트 조성진
「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한국 문화예술 거장 4인을 조명하는 캠페인 및 사진전 ‘두 개의 이야기: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들을 조명하며’ 를 공개했다. 사진가 김용호의 시선으로 개념 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현대 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한국적 정체성을 세계에 알린 예술가의 문화적 배경을 탐구한 프로젝트다. 더 하이엔드가 네 사람을 차례로 만나 사진 속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등장은 클래식계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려 깊고 시적이며 다채로운 연주로 전 세계를 홀렸고, 국내에서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그의 이름이 시대의 표상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5년 바르샤바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조성진은 이후 독일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맞으며 눈부신 경력을 이어왔다. 베를린 필하모닉·빈 필하모닉·런던 심포니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치고 정명훈·구스타보 두다멜·사이먼 래틀을 비롯한 전설적인 지휘자들의 연주자로 섰다. 올해부터 내년까지는 베를린 필하모닉 상주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용호 작가가 소년 같은 그의 초상 옆에 거칠고 단단한 바위를 딥틱 기법으로 배치한 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쳐온 수많은 시간과 노력에 대한 찬사다. 세월과 비바람을 거치고 드러난 웅장한 바위처럼 젊은 거장은 흔들리지 않는다.
“연주 시작하면 한국인이라는 것도 잊는다”
–어둠 속 허공에서 연주하는 사진 ‘춤추는 손’을 찍었다.
“김용호 작가와는 2017년 ‘객석’ 커버로 만난 인연이 있다. 그때도 손 찍는 걸 좋아하셨고 이번 작업이 그 연장선으로 느껴졌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거기에 맞춰 손을 움직였다.”
–홍콩에서 공연 전의 모습을 스냅으로 담은 ‘비하인드 씬’도 전시됐다. 이런 촬영은 처음이었을 텐데.
“맞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자세나 표정 같은 걸 주문하지 않았고 촬영도 물 흐르듯 끝났다. (사진 속처럼) 사실 피아니스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오랫동안 이런 생활을 해서인지 익숙하다.”
–한국 문화를 빛낸 거장 중 한 명으로 호명됐다.
“이렇게 대단한 분들과 함께 명단에 오른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일 년 내내 세계 무대를 누비며 활동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 파리로 유학간 뒤로 계속 외국에서 살았으니 벌써 12년이 됐다. 하지만 사고방식이나 생각은 한국의 보통 사람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연주를 시작하면 한국인이라는 걸 잊는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에 동감한다. 공연할 때 정말 다양한 문화권의 연주가들이 모이는데 음악에서 느껴지는 장벽은 없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 상주 예술가로 협연 중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내가 느끼는 베를린 필하모닉은 카멜레온처럼 모든 것들을 다재다능하게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다. 지난 2017년 첫 데뷔를 했고, 2020년에 이어 2024/25 시즌 상주 예술가로 함께 하게 됐다. 9월부터 6월까지가 한 시즌인데 이 기간에 총 9번의 연주를 한다. 지금까지 세 번 연주했고 앞으로 협연이나 리사이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다. 베를린에서 살면서 좋은 점은 친하게 지내는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 그래서 편한 느낌이 있다.”
–최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조성진과 친구들’에서는 연주자 섭외부터 레퍼토리 선정까지 직접 챙겼다.
“공연 제목처럼 아는 사람들로 구성한 실내악 프로그램이고, 좋은 프로그램이라 베를린에서도 똑같이 공연할 예정이다. 다들 바빴기 때문에 통영 가기 전에 짬을 내서 리허설 했는데 친구들과 같이 연주하니까 재밌었다.”
“현재로선 없다. 다만 올해 5월 피아노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연 적이 있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학생들을 통해 내가 배울 점도 많았다. 기회가 된다면 조금씩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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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마스터할 곡 많다… 피아니스트의 숙명”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한 지 내년이면 벌써 10년이다. 예전과 좀 달라진 점은 있는지.
“사실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예전엔 뭘 경험하거나 시도할 때 항상 이유가 있었다. 내 자신 혹은 음악에 도움이 될 만한 것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했다. 근데 요즘에는 그냥 해보는 것도 생겼다. 재작년까지는 정말 앞만 보고 걸어갔는데 이제는 옆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다.”
–치열한 20대를 보냈다. 올해 서른이 되었다고 했는데 30대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더 발전하고 싶다.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더 만족하는 연주를 하려면 노력하는 수밖에. 코로나 시기 때 연주가 많이 없었는데 그때 힘들었다. 물론 몸은 편했지만. 연주를 함으로써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 좋다. 큰 변화는 바라지 않는다.”
–쉴 때는 어떤 곳에서 에너지를 얻는가.
“틈날 때마다 미술관을 즐겨 찾는다.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생각이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베를린에 기차역을 개조한 함부르크 반 호프 미술관이 있는데 여기서 이우환 작가의 전시를 보고 감동 받았다. 최근 비엔나에 갔을 때 방문했던 알베르티나 미술관도 좋아한다.”
–미술에 관심 있는지 몰랐다. 어떤 장르와 작가를 좋아하나.
“초현실주의를 좋아했는데 최근엔 현대미술도 흥미롭다. 작품 해석의 폭이 이렇게 넓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너무 많다. 구찌 문화의 달을 함께한 김수자 선생님을 비롯해 이배·박서보·강익중·이우환·이불 등 해외에서 한국 작가들의 전시를 보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이번 달 사이먼 래틀 경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내한 공연을 연다. 이후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나 앨범이 있다면.
“같은 공연을 일본·대만으로 투어한다. 그리고 돌아와서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 프로그램 연주로 올해 일정은 마무리된다. 내년 상반기에는 모리스 라벨 음반을 발표한다. 녹음은 모두 끝낸 상태다.”
–최근 가장 관심사는.
“피아니스트로서 축복이자 난제는 레퍼토리가 많다는 거다. 평생을 바쳐도 못할 만큼의 곡이 존재한다. 나는 새로운 곡을 배우는 걸 좋아해서 최대한 주어진 시간에 많은 곡을 배우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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