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우울의 기억을 극복과 감사의 추억으로… 폐암 환우회 ‘숨소리회’를 소개합니다[아미랑]

최지우 기자 2024. 11. 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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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랑 인터뷰>

폐암은 치료 과정에서 많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따르는 질환입니다. 불안과 우울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외과적 치료 외에도 환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돌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폐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나누고 회복의 길로 이끌어주는 폐암 환우회가 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에서 환자들의 내면적 아픔까지 함께 아우르기 위해 만든 ‘숨소리회’가 그 주인공입니다. 숨소리회 임원진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 들어봤습니다.

김태덕씨, 분당서울대병원 한지은 간호사, 나미경씨./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신체적 회복뿐 아니라 심리적 지지까지 도와
숨소리회는 2006년 4월,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에 의해 처음 창립돼 어느덧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국내 최초 폐암 환우회입니다. 폐암 환자의 신체적 치유를 넘어 정서적인 치유까지 돕자는 목적으로 설립했으며 가입 조건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은 환우들입니다. 숨소리회 회장 김태덕(77·경기 수원시)씨와 총무 나미경(58·서울 서초구)씨는 “폐암 진단 후 숨소리회의 다정한 부름을 받아 의기투합해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숨소리회 회원들을 위해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병원 대강당에 김관민 교수, 조석기 교수를 비롯한 흉부외과 의료진이 모입니다. ▲폐암 수술 후 식단 및 스트레스 관리 ▲재발 예방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습니다. 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 오후에는 의료진과 환우회 회원들이 병동 휴게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수술 받고 회복 중인 환우들의 병실을 찾아가는 봉사도 진행합니다. 선배 환우가 수술 후 통증,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후배 환우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위로를 건네는 시간입니다.

매년 거북이 마라톤 대회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산행 모임을 엽니다. 창립 10주년이 되던 해에는 숨소리회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의료진과 임원 인터뷰, 폐암 건강 정보, 숨소리회 발자취 등을 담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면 모임이 전부 중단됐을 땐 비대면 소통을 위한 숨소리회 카페와 네이버 밴드를 개설했습니다. 건강 강좌는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대면 행사들을 재개했지만 올해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1년에 한 번만 대면 행사를 진행합니다. 지난 9월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와 심장혈관 흉부외과, 숨소리회가 함께 ‘암 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현 시점 기준 숨소리회 네이버 밴드에는 541명의 환우가 가입돼 있고, 암 심포지엄을 비롯한 대면 행사에는 평균 100~150명의 환우들이 참석합니다.

숨소리회를 만난, 잊지 못할 순간
현재 숨소리회 회장 김태덕씨가 폐암 진단을 받은 건 2006년 7월입니다. 8월, 종양이 발생한 우측폐의 3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항암이나 방사선 없이 치료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7개월 뒤 중복암으로 직장암이 발병했습니다. 중복암은 한 사람에서 두 가지 이상의 암이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을 말합니다. 암을 두 차례 겪은 만큼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잘 치료받고 극복했습니다. 2008년, 병동에서 근무하던 한지은 간호사에게 숨소리회 가입을 제안 받았습니다. 폐암 수술의 고통,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을 극복한 경험을 다른 환우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같은 처지에 놓인 환우들과 만나 한 명 한 명 마음을 다독이는 리더십을 보였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능숙함이 더해졌고 이 모습을 지켜본 한지은 간호사의 추천으로 2011년부터는 임원으로 선출돼 현재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총무 나미경씨는 2014년 4월, 건강검진에서 폐에 간유리음영이 보인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간유리음영은 놔두면 폐암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폐암의 씨앗’입니다. 간유리음영을 진단받으면 바로 수술하지 않고 3~6개월간 추적 관찰합니다. 2개월 뒤 간유리음영 크기가 커져 수술을 받았습니다. 간유리음영이 우측 폐 아래쪽에 위치해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고 보통 두세 시간이면 끝나는 수술이 9시간 소요됐습니다. 수술 후 퇴원할 때까지 간유리음영 결절로 알고 있었지만, 퇴원 직전 받은 조직검사 결과지에 폐암으로 판정돼 뒤늦게 중증질환 산정특례적용을 받았습니다. 주치의였던 조석기 교수가 숨소리회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나씨는 ‘암으로 인해 다시 시작된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 지’를 알았기에, 다른 폐암 환우들과 만나 얘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의료진과 선배 환우를 만나 조언을 들었고, 몸이 다 회복하고 난 뒤에는 직장 일을 줄이면서까지 숨소리회 면담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10월 임원진으로 선출되며 현재까지 숨소리회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한지은 전문 간호사는 숨소리회 발족 때부터 함께해 온 의료진 중 한 명입니다. 현재 숨소리회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간사입니다. 흉부외과 교수진과 환자들 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환우들에게 깊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흉부외과 소속 간호사로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우들과 인간적인 유대감이 쌓였습니다. 환자들의 아픔을 치유하자는 목표로 시작한 모임이지만, 그들을 돕는 과정에서 한지은 간호사도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숨소리회 인터뷰>

김태덕씨./사진=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숨소리회를 만나고 난 뒤 어떤 변화를 겪었나요?

김태덕씨 “숨소리회 덕분에 폐암이라는 아픈 기억이 소중한 추억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9월에 폐암 수술을 받아서 9월이 수술의 고통, 암으로 인한 아픔 등으로 얼룩진 시기라고 여겼습니다. 한때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숨소리회를 만나고 나 자신뿐 아니라 인생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하루하루 감사한 나날을 보내게 됐습니다. 부정적 기억 사라진 겁니다.”

나미경씨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력 질주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폐암 수술 후에는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편안하게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조금 줄이고 숨소리회 활동에 더 치중했어요. 후배 환우들과 면담을 진행하다보니 내 몸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숨소리회에서 암에 대한 정확한 내용의 강의를 듣고 이렇게 접한 정보를 후배 환우들에게 전달해주며 스스로도 다시금 건강관리를 하는 등 자연스레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미경씨./사진=분당서울대병원 제공
-폐암 환자들에게 환우회 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나미경씨 “폐암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힘들어하는 부분이 재발의 두려움, 수술 후 항암·방사선 치료에 대한 궁금증, 직장 및 일상생활 복귀 고민 등입니다. 의료진과 이미 폐암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에 대한 답변을 듣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됩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마따나 같은 아픔을 갖고 있으니 서로 더 잘 이해하고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한지은 간호사 “제가 철학처럼 여기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거나 괴로움을 달래주거나 힘겨워하는 새 한 마리를 도와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내용입니다. 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가까이서 지켜보니 몸은 회복되지만 마음까지 회복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고, 혼자서는 이겨내기 어려워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환우회의 도움을 받으면 폐암을 이겨내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한지은 간호사./사진=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숨소리회 심볼./사진=분당서울대병원 제공

-2026년에 숨소리회가 20주년이 됩니다. 어떤 계획이 있는지?

한지은씨 “20주년을 앞두고 숨소리회 심볼을 개발했는데요. ‘사람이 중심’이라는 의미로 사람 인(人)자를 기관지 모양으로 형상화하고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의미의 폐 모양을 넣었습니다. 여기에, 숨 쉬는 생명의 이미지인 잎사귀도 달았습니다. 10주년과 마찬가지로 책자도 정리할 계획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환우회 활동을 하다 보니 인력 부족, 재정 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를 많이 겪었는데요. 20주년이 되는 해에는 국가적인 지원이나 제도 마련이 뒷받침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폐암 환자들에게 한 마디.

김태덕씨 “폐암으로 힘에 부칠 때 언제든 숨소리회를 찾아오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숨소리회 울타리 안에서 함께 건강해지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줍시다. 숨소리회는 같이 상생하며 성장하는 가족 같은 공동체입니다. 폐암이나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함께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나미경씨 “폐암 환자들이 용기를 갖고 일상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치료 후 겪는 통증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말고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살다보면 모든 게 지나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암이라는 힘든 일을 겪었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감사와 행복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지은 간호사 “혼자서 모든 짐을 다 지려고 하지 말고 힘든 게 있으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세요.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함께 그런 방법들을 얘기하면서 회복하는 방법을 찾고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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