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산단]③리모델링에 9000억 쓴 국토부…녹지 줄고 쉴곳은 없다
9200억 썼는데, 대부분 도로 인프라 확충
문화, 복지, 편의시설, 정주여건 사업 0개
2004년 이후 산단녹지 34% 줄어
노후산단 83곳 중 51.8%는 식당도 없다
문화시설 확충예산으로 특판매장 설치
"산단 노후화 못 막아, 실질적 대책 내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새 산업단지를 짓는데 몰두하면서 기존 산단은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낡은 공장, 부족한 녹지, 열악한 정주여건, 전무하다시피 한 편의·문화시설이 기업과 근로자를 떠나게 했다. 부랴부랴 재생사업을 시작했지만 대부분 도로·교통인프라 개선에 그쳤다. 오히려 녹지와 상업지를 줄여 공업지대를 늘리는 정책으로 산단 노후화를 더 가속했다는 지적이다.
12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노후산단 리모델링·재생사업 현황’에는 이 같은 문제가 여실히 담겨 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총 47개의 노후산단을 대상으로 리모델링·재생사업을 펼쳤다. 총 투입 예산은 9255억5000만원에 달한다.
산단별로 추진된 세부 사업은 118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사업은 ‘주차장 만들기’로 39개(33%)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많이 추진된 사업은 ‘도로 확장’으로 38개(32.2%)였다. 각종 교차로 정비·확장사업을 합하면 약 70%가 도로·주차 인프라 사업이었다. 오로지 도로·주차 사업만 진행한 곳도 7개다. 대구제3일반산단은 노후산단 중 가장 많은 1126억4000만원을 썼는데 모두 17.7km에 달하는 도로신설과 확장에 썼다.
반면 편의시설 및 문화·복지시설 확충, 정주여건 개선 사업은 전혀 없었다. 공원사업은 32개 이뤄졌지만 녹지조성 사업은 단 3건뿐이었다. 기업체가 희망하는 기반시설 확충은 충실히 이뤄졌지만, 정작 청년·근로자들이 희망한 ‘일하기 좋은 환경’은 조성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노후산단 인프라 개선에도 불구하고 체감효과가 떨어지고, 근로자 이탈을 막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이뤄지는 이유다.
2014년부터 시작한 반월산업단지 재생사업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반월산단은 1987년 경기 화성시에 지은 전국에서 가장 큰 산단이다. 시설이 낡고 쇠락해 근로자 충당에 어려움을 겪자 2014년부터 10년간 73억9000만원을 들여 재생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재생사업이 주차장 4개·공원 2개 조성에 그치면서 근로자 이탈을 막지 못했다. 현재 반월산단 근로자는 10만8939명으로 지난 12년간 3만3000명이 줄었다.
20년간 산단 녹지 34%↓…편의시설 없는 곳도 수두룩
녹지시설 확충은 요원한 상태다. 산업입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산단 면적은 14억5520만㎡다. 이 가운데 공업지대가 9억1102만㎡(62.6%)를 차지한다. 녹지는 1억8392만㎡로 12.6%에 그쳤다. 최근 몇 년간 녹지를 소폭 늘려왔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3분의 1가량 줄었다. 2004년 산단 녹지는 2억7896만㎡로 20년간 9503만㎡(34.1%) 감소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총면적은 2억6307만㎡(22.1%), 공업지대는 3억9098만㎡(75.2%) 각각 증가했다.
산단 경쟁력 강화를 명목으로 환경규제까지 완화하면서 녹지 확보도 순탄치 못했다. 가령 여수시는 2013년 석유화학공장들이 부지난을 겪고 있다며 여수산단 내 녹지 70만8600㎡를 ‘해제가능면적’으로 포함한다고 밝혔다. 녹지를 없애 공업지대를 늘렸다는 의미다. 정부도 산단 녹지규제를 철폐해왔다. 2015년 정부는 산단의 완충녹지 기준(폭 10m 이상)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산단 내 녹지율이 7.5~13%이면서 일정 거리기준만 갖추면 10m 미만으로 조성하는 것도 허용했다.
주거·편의시설도 여전히 열악하다. 한국산업단지관리공단이 관리하는 노후산단 83곳 중 43곳(51.8%)은 부지 내 식당이 단 한 곳도 없다. 카페가 전혀 없는 산단도 50개로 60.2%에 달한다. 편의점이 없는 산단은 51개(61.4%), 병원이 없는 산단의 경우 73개(87.9%)다. 네 가지 모든 편의시설이 없는 산단은 43곳인데, 이 중 33개(76.7%)가 지방에 위치한 일반·농공산단 등이다.
문화시설은 따로 통계조차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청년문화센터 건설에 1908억6000만원을 썼다. 하지만 문화시설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상당수다. 대덕산단은 문화센터건립을 추진 중인데, 사업계획서를 보면 건물 중 상당 부분이 문화 여건 확충과 무관하다. 1층에는 영·유아 돌봄 시설이 들어서고 2~4층은 청년 벤처기업 임대가 이뤄진다. 5층은 관리공단 사무실로 사용한다. 군산시는 문화센터에 민원실과 기업지원실을 넣었고, 여수시는 특산물판매장과 사무실을 넣었다.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산단 환경 개선이 이뤄지려면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태선 의원은 “노후산단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면서 “1조원에 달하는 혈세를 쏟아붓고도 주거, 의료, 복지, 문화 등 정주여건은 전무하다시피 해 오히려 산단 노후화를 가속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책임한 탁상공론에서 비롯된 정책 실패를 바로잡아 사람과 기업이 모이는 산단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비판했다.
편집자주
한국에는 버려진 땅이 있다. 넓이만 2449만㎡로 여의도 면적의 5.44배 규모다.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돼있다. 바로 '산업단지' 이야기다. 산업단지는 1960년대 울산공업단지 개발을 시작으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주역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들어선 탓에 지금은 고질적인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새 산단을 짓는 데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단은 심각한 노후화 문제에 직면했다. 아시아경제는 '버려진 산단' 기획을 통해 국내 산단 현황을 살펴보고 해외 사례를 통해 한국 산단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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