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틀 전 미국 대학가에선 이미... 트럼프 당선의 이유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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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석]
▲ 10월 23일(현지사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 덜루스에서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 USA가 후원한 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미국 대선이 다가오며 긴장감이 고조되고, 어디서나 대선 이야기가 오간다. 10월에 필자는 우연히 워싱턴D.C.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지인과 월가에서 대규모 자산을 관리하는 지인을 각각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트럼프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었다.
민주당 후보가 조 바이든에서 카멀라 해리스로 교체되고, 민주당 전당대회(DNC)와 대선 후보 토론회 당시만 해도 여론조사와 분위기에서 해리스가 약간 앞서가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9월과 10월을 지나며 트럼프의 지지율이 경합주에서 급상승해, 진보 언론조차 트럼프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 감지되었다.
10월 26일
뉴욕의 사전 투표가 시작돼 투표를 하러 나섰지만 긴 대기 시간으로 실패했다. 사흘 뒤 평일 오후 다시 방문해 다행히 짧은 줄에서 무사히 투표를 마칠 수 있었다.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주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필자의 투표가 대선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 득표수가 아니라 주마다 배정된 선거인단을 통해 선출하는데, 승리한 후보가 해당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주당 지지가 확실한 뉴욕, 캘리포니아, 오리건 같은 '파란색' 주나 공화당이 우세한 미시시피, 앨라배마 같은 '빨간색' 주에서는 개별 표가 사표가 될 위험이 크다. 하지만 대선 투표 외에도 연방 상하원, 주 상하원, 시 교육감, 감사관, 판사 선출 및 주민 발의안 투표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할 수는 없다.
2000년 이후 6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국민 투표에서 5번 승리했으나 선거인단에서 패해 놀랍게도 공화당과 동일하게 12년 동안 집권했다. 굉장히 불공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인단 제도는 매 대선마다 논란의 대상이지만 헌법을 수정해야 바꿀 수 있어 폐지 가능성은 낮다.
결국 선거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경합주들이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네바다, 위스콘신 같은 주들은 대선 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결과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대통령 후보들이 막바지 유세에서 이들 경합주에 집중하는 이유다. 특히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보유한 펜실베이니아와 그 뒤를 잇는 미시간, 조지아가 대선의 승패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수 있다.
▲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시간주 이스트랜싱의 미시간주립대 제니슨 필드 하우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 참석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어떻게 또다시 트럼프를 찍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놀라운 건 여기 많은 교민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거예요. 특히 나이가 조금 있는 이민 1세대 중 교회 다니는 분들이 더 그래요."
뉴욕, 뉴저지, 캘리포니아 등지의 많은 이민 한인 기독교인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한다. 트럼프가 그다지 기독교적인(?) 삶을 대변하지 않는 점을 대부분 인정하지만,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의 성소수자(LGBTQ)와 낙태에 대한 적대적 입장이 보수적 신앙을 가진 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진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인 필자의 생각으로는 저 두 이슈에 대해 여러 기독교 커뮤니티 내에서 과장되고 잘못된 정보가 광범위하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이 이에 대해 정확한 해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미시간대로 가는 길에 트럼프-밴스를 지지하는 큰 깃발과 표지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학가인 앤아버에 도착하자 지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미국 대부분의 대학은 일부 기독교 사립대학을 제외하고는 사회정치적으로 아주 진보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대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리스나 민주당에 대한 지지 표지판이나 적극적인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선 분위기가 예상보다 차분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작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가자 분쟁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반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초 미국 대학 전역에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항의하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연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미시간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위가 격화하자 많은 대학들이 텐트를 강제로 철거했고, 바이든 정권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와 가자지구 참상에 대한 변화 없는 대응으로 많은 진보단체와 학생들의 비판을 받았다.
우연한 사실이지만 미시간 주 디어본은 미국에서 아랍계 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팔레스타인계와 레바논계가 많이 거주한다. 전통적으로 아랍계 미국인들은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최근 가자지구와 레바논 폭격의 영향을 받아 많은 아랍계 미국인들이 트럼프나 녹색당의 질 스타인을 지지하거나 어떤 대선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미시간에서 아랍계 미국인들의 지지가 민주당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는 지난 1기 때부터 이스라엘과 유대인 집단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보수 유대인과 아랍계 미국인 양측의 지지를 동시에 받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초래됐다.
▲ 사전투표를 마치고 투표완료 스티커를 가슴에 붙인 필자(좌). 경제와 전쟁에 대한 불만으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알바니아계 택시기사(우). |
ⓒ 전후석 |
전날 열린 <초선> 상영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LA로 향하는 일정이었다. 미시간공항으로 가기 위해 우버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알바니아 출신이었다. 그는 5년 전 알바니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올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내일 처음으로 투표한다고 했다. 그의 선택은 당연히 트럼프였다.
이유를 묻자 그는 경제와 전쟁에 대한 불만을 들었다. "물가가 너무 비싸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내 고향 알바니아와 코소보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와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요. 또 다른 전쟁이 날까 봐 두렵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미시간의 모든 알바니아 친구들 역시 트럼프에게 투표할 거라고 덧붙였다. 의회 점거 사건과 반민주적 권력화에 대해 묻자 그는 의회 점거 사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스라엘-가자지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 내 다양한 소수민족들에게 최우선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평화를 약속하는 정치인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역시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며 민주당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라 대통령에 당선된 기억이 있다. 트럼프가 '평화 대통령'이라는 모순적 타이틀을 스스로 내세우게 만든 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11월 5일
드디어 투표일이다. 필자가 LA에 온 이유는 영화 <초선>에 등장한 데이비드 김 후보(민주당)가 이번에 세 번째로 연방 하원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승리한다면 그 환희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이미 뉴욕에서 투표를 마쳤기에 미국 전역에서 투표가 한창 진행될 때 지인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번에는 아르메니아 출신 기사였다. 그 역시 경제난과 불만족스러운 현실에 트럼프의 당선을 바란다고 했다. "이민자 추방이나 소수자 탄압에 대해 우려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먼저 온 이민자가 후발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 현상이 현 시대의 척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는 택시기사뿐 아니라 호텔 직원, LA 한인타운의 어르신들까지 여러 곳에서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경제 회복을 위해 트럼프의 재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후 8시 투표 종료 전 데이비드 김의 마지막 유세 현장을 촬영하고 나서 선거 마무리 파티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지난 1년간 그의 선거를 위해 헌신한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자리였다.
첫 번째 개표 소식에 모두 이목을 집중했다. 데이비드 김 후보는 개표율 30% 상태에서 약 1만 표 차이로 뒤처지고 있었다. 그의 승리를 기대하며 지지자들과 함께 환희의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을 느꼈다. 상대 현역 의원은 기업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받는 4선 의원이었고, 데이비드는 풀뿌리 선거로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필자와 카메라팀은 수시로 핸드폰을 통해 미국 대선 결과도 체크했다. 지인들에게서 오는 문자는 트럼프의 선전에 비관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주들에서 트럼프의 승리가 점쳐졌고, 심지어 전국 득표수에서도 그가 앞서고 있었다.
밤 11시가 지나면서 지지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추가 개표가 발표될 때마다 안타깝게도 데이비드는 조금씩 더 뒤처지게 되었다. 동시에 트럼프와 해리스의 격차도 점점 벌어지며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자정이 넘어가면서 트럼프의 압도적인 승리가 확정되었다.
11월 6일
전날 밤의 실망감이 무색하게 남가주의 날씨는 밝고 쾌청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주위 모든 이들의 삶은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트럼프 시대가 다시 온다고? 우리는 이미 4년간 트럼프 행정부 1기의 혼란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의 과격한 발언과 이민자·소수자에 대한 악마화, 언론 탄압, 팬데믹 대처 실패, 두 차례의 탄핵, 기후변화 부정, 백악관 주요 직책에 친인척 임명, 그리고 2020년 대선 불복과 의회 점거 선동까지 트럼프의 첫 임기는 논란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해리스가 트럼프에게 다시 패배했다.
▲ 11월 6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워싱턴 하워드대학교 캠퍼스에서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특히 바이든의 재선에 대한 집착은 민주당 내 경선 기회를 차단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기회를 놓쳤다. 스스로 "전환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무색하게 만든 것은 물론, 그는 해리스를 후계자로 지지하며 정부 연장에 힘을 실었다.
해리스 또한 근래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존재감이 희미했던 부통령 중 한 명이었다. 바이든 정부와 차별화를 보일 역량이 부족했으며, 전당대회에서 잠시 지지율이 상승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녀는 연임에 성공한 오바마나 선거인단에서 졌지만 국민 득표수에서는 승리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대중적 인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해리스가 지닌 한계는 그녀의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다. 2020년 바이든은 부통령을 선택할 때 자신의 나이를 고려해 성장 가능성을 보고 후계자를 임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정체성 정치에 기반해 해리스가 지닌 상징적 대변성에 중점을 두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이 되었으나 차기 대통령직에는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민주당의 여러 실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훼손하지 않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멈추지 않았고, 소수자를 위해 우호적인 정책과 서사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칩스법(Chips Act) 같은 경제 회복 정책을 통해 미국의 인프라 복구, 의료비용 절감, 기술 인력 양성 등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삶을 개선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에 대한 불안 속에서 민주주의 제도 수호보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시하는 선택을 했다. 이들은 또한 이스라엘-가자지구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식, 서류 미비자 추방과 기업 규제 완화, 고소득층의 감세 등을 약속한,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괴팍하고 논란적 인물일 트럼프를 지지했다.
▲ 전후석 / 재미 영화감독 |
ⓒ 전후석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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