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폭탄 설계자' 라이트하이저, 초강경 보호무역 수장 맡나 [뉴트럼프 파워 엘리트②]
‘트럼프 국제경제 정책의 설계자’
‘평생 미국을 대변해온 철(鐵)의 보호무역주의자’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붙여진 별명들이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USTR 대표를 맡아 무역정책을 총괄한 그는 미국 통상경제 패러다임을 ‘규칙에 기반한 다자간 자유무역’ 시스템에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체계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1기 때부터 충성심이 검증된 최측근 중의 최측근으로, 내년 1월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경제 분야 중책을 맡을 게 확실시된다.
차기 재무장관 또는 상무장관 1순위로 꼽혀 왔는데, 최근 트럼프 당선인이 USTR 대표직을 다시 맡아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나왔다. FT는 지난 8일 “‘미국 보호무역주의의 설계자’가 다시 중추적인 통상분야 책임자에 지명될 가능성 때문에 중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 사이에서도 우려가 커졌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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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한미 FTA 개정 진두지휘
라이트하이저는 USTR 대표로 있는 동안 국가안보를 이유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대중 무역 강경론자였던 그는 중국 수입품에 대해 처음으로 관세 부과를 관철시켰다.
그는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의 총사령탑이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으며 양국 FTA 개정을 요구했는데,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FTA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강도 높은 압박을 했다.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김현종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4월 말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라이트하이저를 만난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 “대(對)중국 관세 부과,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등 트럼프 당선 시 미국 통상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글래디에이터는 매일 칼을 갈고 있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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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권유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 출간
트럼프 당선인에게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가 지난해 6월 펴낸 책 『자유무역이라는 환상(No Trade is Free)』은 트럼프 대선 캠프의 필독서로 불렸을 정도다. 책을 집필하게 된 것도 트럼프 당선인의 권유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유세 과정에서 언급한 ▶보편관세 10~20%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 이상 관세 ▶멕시코를 우회한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100% 관세 등의 무역 정책 공약은 라이트하이저가 집필한 책, 언론 기고문이나 인터뷰 내용을 상당 부분 그대로 끌어다 쓴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의 영향력이 입증됐다. 가령 라이트하이저가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집권하면 모든 수입품 관세율을 10% 올리겠다고 했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얼마 뒤 ‘10% 보편관세론’과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 부과론’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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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 미국 구제 유일한 길 ‘관세’”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주목하는 핵심 지표는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다. 그는 지난 수십년 간 자유무역을 시행하면서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냈고 수조 달러의 국부가 해외로 유출했으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중산층 삶이 무너져내렸다고 본다. 자유무역주의를 ‘약탈적 산업 정책’이라고 규정한 그는 더이상 약탈당하지 않기 위해 보호 장벽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구제할 유일한 길이라며 해결책으로 내건 게 관세 장벽이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대선을 닷새 앞둔 지난달 31일 FT에 낸 기고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큰 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는 세계 경제의 보호무역주의 국가뿐”이라며 “미국의 무역 파트너들, 특히 무역 흑자가 큰 나라들은 미국의 정책 변경에 대해 비난해선 안 된다. 우리는 그들이 초래한 피해에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고 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초강경 보호무역주의를 예고한 사전 경고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앞서 지난 3월 이코노미스트 기고문에서도 보편관세론을 폈다. 그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반적으로 최소 10%의 새로운 관세가 필요하다”며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은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2000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하기 위해 부여한 ‘최혜국’ 지위를 박탈할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대중국 보복관세 부과에는 장애물이 사라지게 된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통상경제 분야 요직을 맡게 될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동맹 여부를 가리지 않고 관세 장벽 등 거센 압박을 해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정부도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1947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공격적인 성향의 그는 레이건 행정부 때 USTR 차석대표를 지내며 수십 건의 무역 협상을 이끌었고 1985년 퇴직 후에는 로펌 회사에서 미국 철강기업들을 변호하며 해외 법률분쟁을 처리해 ‘미국 최고의 협상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트럼프 행정부 1기인 2017년 USTR 대표로 임명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진두지휘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설계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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