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고향을 돌아보며
어린 자식 풍토병에 잃으면서도
한국 사랑한 선교사 열정 느껴져
탈기독교·동성애 바람 거센 美
텅빈 예배당 시사하는 바 커
우리도 전철 밟지 않으려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섬겨야
최근 한국교회미래재단과 함께 140년 전 한국 땅에 기독교를 전파한 미국 선교사들의 유적지들을 돌아봤다. 1885년 첫 내한 선교사로 제물포항에 발을 내디딘 미 북장로회 언더우드와 미 북감리회 아펜젤러가 다녔던 미국 동부지역 교회와 신학교, 가족묘 등을 둘러봤다. 미 북장로교 산실인 프린스턴신학대와 초기 호남 선교를 맡은 7명의 선교사들이 공부한 버지니아 유니온장로교신학교, 필라델피아 장로교역사협회 등에는 선교사들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와 선교 보고서, 사진 등 방대한 분량의 사료가 보관돼 있었다. 19세기 말 ‘은둔의 나라’로 불리던 조선에 와서 선교사들이 겪은 애환과 번민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입맛도 안 맞고 빈대도 많지만 낯선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려던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내국인한테 테러를 당하고도 한센인마저 사랑으로 품었던 포사이드와 잦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목포와 광주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오웬. 풍토병으로 어린 자식을 세 명이나 떠나보내고 자신도 마흔 셋에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난 전킨은 마지막 순간에도 “이것이 죽는 것이라면 참 좋군요. 저는 갑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전주 선교사 묘역에 아들들과 함께 묻혀 있다.
병원과 학교, 교회를 세우며 가난하고 병든 자, 여성과 한센인 등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쳐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것도 선교사들이다. 선교사들은 선교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개화보다 식민지화하려 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며 자주독립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2세를 한국에서 낳았고 대를 이어 선교를 했다. 언더우드와 유진 벨처럼 4대가 대를 이어 선교를 한 선교가문도 있다. 1942년 미·일전쟁으로 선교사들이 추방당하기 전까지 한국을 찾은 선교사는 1529명으로 추정된다. 초기에 왔던 256명 선교사들은 선교가 전부인 사람들이었다. 여성이 더 많았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번 탐방은 한편으론 세속화되고 동성애가 일상화된 기독교 국가 미국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19세기 미국에서 복음주의자들은 내적인 부흥과 외적인 사회개혁을 동시에 실천했다. 해외 선교에 앞다퉈 나섰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12세 때 미국으로 온 언더우드가 다녔던 뉴저지주 노스버겐의 그로브개혁교회는 9개 교회를 개척하고 1000명이 다니던 교회였다. 하지만 지금은 40~50명으로 성도가 줄었다. 미국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라 불리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러블리 레인교회 역시 1000명 넘던 교인이 20~30명으로 줄었다. 한국 선교의 물꼬를 튼 가우처 목사가 7년간 시무하던 곳이다. 커다란 예배당이 민망할 정도였다. 동행한 여행사 대표는 북유럽 노르웨이 상황을 전해줬다. 교회가 사라지다보니 목사들이 살아가기 어려워 정부에서 월급을 주는 공무원이 됐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축복기도를 해주거나 결혼식과 장례식 때 목회자를 필요로 할 경우가 있어서라고 한다. 아프리카나 남미 성회에선 수만명이 운집하고 성령 체험을 했다는 목격담이 잇따르고 있는 때에 정작 기독교 뿌리이자 기독교를 전파한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서 교회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목도했다.
미국 곳곳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깃발이나 휘장이 가정집은 물론 교회들에도 걸려 있었다. 아펜젤러가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자와 선교사의 꿈을 키운 뉴저지주 매디슨 드루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고문서실엔 미국 연합감리교회(UMC)의 LGBTQIA+ 스토리 전시회 포스터도 걸려 있다. 올해 5월 UMC는 40년 동안 유지해온 동성애자 목사 안수 금지 법안을 폐지하고 동성혼 축복을 허용하기로 표결했다.
내년은 한국기독교 140년이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했던 유럽과 미국의 탈기독교화를 보면서 우리도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매혹적인 기독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생각해본 출장이었다.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우리도 낮은 곳으로 좀더 내려가 소외된 사람을 더 많이 돌봤으면 좋겠다. 배고픈 사람, 옥에 갇힌 사람, 외국인 근로자, 탈북자, 장애인 등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할 일이 너무 너무 많다.” 3년 전 유진 벨 선교사의 4대 후손 인요한 당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 박사가 교계 행사에서 한 쓴소리가 떠오른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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