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퍼스펙티브] 대결이냐, 재협상이냐…갈림길 선 미국·이란 관계

2024. 11. 1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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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과 중동 정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전 세계가 도널드 트럼프의 생환을 보면서 저마다 평을 쏟아내고 있다. 적어도 중동에서는 이란만큼 트럼프의 당선을 보는 눈이 더 민감한 곳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레바논·이란으로 전장이 넓어진 상황이다. 대통령 재임 당시 이란을 향해 최대한 압박 정책을 폈던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설 때부터 이란 국민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과 미래 전망을 두고 이란에선 엇갈린 평가와 조언이 쏟아진다.

「 첫 임기 동안 이란을 최대한 압박했던 트럼프, 다시 백악관 입성 예정
“후세인과도 협상했는데 트럼프와 못 할 이유 없다” 이란 내 목소리도
사우디 등 주변국은 이란과 경제적 협력 중시 ‘차가운 평화’ 시대 열어
돈 드는 전쟁 싫어하는 트럼프, 이란과 대결보다 포용 선택할지 관심

트럼프(左), 페제시키안(右)

이란의 친개혁파 신문인 에테마드는 이번 미국 대선을 이렇게 표현했다. “요즘 이란 국민이 걱정 어린 눈으로 미국 선거 관련 뉴스와 이벤트를 주시하며 이란 경제와 생존 가능성을 밤낮으로 알아보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이란 내부 상황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불길한 사건이 겹치면서 미국 대선을 포함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란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이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100일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선 본격적인 대선 경쟁을 시작했다. 결국 트럼프 후보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짧지만 강렬한 평이 올라왔다. “시작하자마자 테러·미사일·전쟁에 연루되더니 75일이 지난 지금은 트럼프와 엮였다. 페제시키안은 이란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통령이다.”

이란의 한 언론인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했을 때 이란인은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했기에 트럼프를 신이 벌했다고 주장하며 기뻐했다. 이제 트럼프가 돌아왔는데 그들이 트럼프의 승리를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겠다. 가자지구 폭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민주당을 신이 벌했다고?”라며 꼬집었다. 사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호세인 살라미는 “미국인은 시온주의자에게 살인 무기를 제공한 자들(미국 민주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미국 선거는 가자지구 저항이 미국 정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트럼프의 승리를 가자지구 저항과 연결해 이해했다.

7년 전엔 트럼프가 핵 협상 제안
그렇다면 이제 이란은 예전과 달리 트럼프와 협상할까? “솔레이마니 장군을 죽인 자와 무슨 협상이냐”며 강경하게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우리 장군과 군인 30만 명을 죽인 사담 후세인과도 협상했는데 트럼프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30만 군 장병과 장군의 목숨이 솔레이마니 장군의 생명보다 못하단 말인가”라며 협상에 나서라는 주문도 나온다.

2017년 처음 집권했을 때 트럼프는 이란에 핵 협상을 다시 하자고 요구했지만 이란은 거절했다. 이란이 2015년 미국을 비롯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과 체결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무를 이유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이에 트럼프는 2018년 5월 8일 핵 협상을 준수하지 않겠다며 JCPOA에서 탈퇴했다. 같은 해 6월 23일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트럼프와 대화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강수를 뒀다. 당시 이란의 리알화 환율은 1달러에 7만8000리알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두 번째 당선에 성공한 지금은 1달러에 69만 리알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란, 이스라엘에 반격할까?
페제시키안 정부에서 대외 관계를 이끄는 모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부통령 외교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란이 트럼프와 재협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JCPOA 지지자들의 과거 비현실적인 안목을 비판하며 재협상에 냉소적인 평가도 만만찮다. 2020년 JCPOA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죽인 JCPOA를 되살리겠다는 조 바이든의 약속을 믿고 잔뜩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실제로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재협상에 냉소적인 이들은 바이든의 민주당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JCPOA를 되살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에 이바지했다고 비판한다. 트럼프와 마주 앉는 데는 과거 솔레이마니 장군 암살이 문제라기보다, 트럼프가 얼마나 솔직한 자세로 이란을 상대하는가가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트럼프가 정직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데다 이란을 향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기에 대화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한다.

이들은 트럼프와 협상이나 대화를 하는 것보다 지난달 26일 이스라엘의 공격을 응징하는 반격을 할지 말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따끔하게 지적한다. 이란 지도부와 군 수뇌부가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결정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머뭇거리다가 결국 반격하지 못하고 후회스러운 결과를 맞이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다시 부상하는 이란 핵 문제
이번 선거 직전 트럼프는 “이란을 해코지할 생각은 없고 이란이 성공적인 나라가 되길 바라지만 핵무기는 가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트럼프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란 핵을 공격해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핵무장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도 해친다고 본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지난 4월과 지난달 이스라엘과 미사일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이란은 핵무장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는 기존 원칙에 다소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슬람 가르침에 따르면 핵무기는 대량 살상 무기라서 원칙적으로 허용할 수 없지만, 무슬림의 안녕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무슬림 공동체 보호와 방어 차원에서 용인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예전부터 이란이 핵을 가질 것이라고 믿진 않지만, 이란이 핵을 가진다면 사우디아라비아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란의 핵무장은 미국이나 이스라엘뿐 아니라 페르시아만을 사이에 둔 아랍국가들 역시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가 처음 백악관에 들어가던 때와 지금은 아라비아 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많이 변했다. 7년 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등 아랍 산유국 왕정 국가들은 트럼프와 함께 이란을 옥죄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은 아랍국들이 이스라엘과 수교해 궁극적으로 아랍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결성해 이란에 대응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2020년 UAE와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한 아브라함 협정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전쟁보다는 ‘차가운 평화’
지난해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에는 ‘차가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대립보다는 연결과 협력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아랍판 NATO의 꿈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7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카타르와 대립했는데, 이제는 싸움의 상처도 아물어 페르시아만 지역 아랍 왕정 국가들의 분위기도 협력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탈 화석연료와 산업 다각화라는 시대적 사명 아래 전쟁보다는 ‘차가운 평화’가 더 긴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란의 중요 에너지 시설에 과감히 투자해 이란을 경제 공동체로 묶어두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녕에 더 긴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트럼프가 어떠한 중동정책과 이란 정책을 펴나갈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페르시아만 지역 아랍 왕정 국가들은 이란과 ‘함께 잘살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거래를 좋아하고 돈 많이 드는 전쟁을 싫어하는 트럼프라면 귀담아들을 만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트럼프를 설득해 새로운 이란 포용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발칙한 상상일까? 긍정의 힘을 믿으며 희망 회로를 돌려본다. 우리 기업에 다시 이란 시장이 열리길 고대하면서.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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