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검찰시대의 마지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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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육성이 나왔다.
검찰이 숨죽인 사이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밝혔다.
대통령의 몰락은 곧 검찰의 몰락이 될 거라는 불안감.
검찰 조직의 생사가 대통령 운명에 달렸다는 절박한 동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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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육성이 나왔다. 최순실의 태블릿PC 폭로 후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고 화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탄핵이냐, 임기단축 개헌이냐. 야권은 들끓고, 평행이론마냥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다. 조만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청구서까지 들이닥칠 판이다. 한반도 역사책 위에 8년 전 가을을 ‘복붙’이라도 한 걸까.
아마도 아닐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140분 기자회견을 보면서 이번에는 다르겠구나 절감했다. 결말은 모르겠으되 과정은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보수의 탄핵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 말 속에 담긴 분노와 적의가 많은 걸 말해줬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했다. 방향도 정했고 반격의 발판도 마련했다. 그러니 때가 오면 대통령은 온 국민이 놀랄 만큼 거칠게 되칠지 모른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니고, 지금은 2016년이 아니며, 조만간 우리는 그걸 어떤 방식으로든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 같다.
2024년의 윤석열에게는 있지만 2016년 박근혜에겐 없었던 한 가지. 차이를 만든 건 검찰이다. 당시 검찰이 국정농단 특수본을 설치한 건 관련 폭로 3일 뒤. 이어서 압수수색과 긴급체포가 몰아쳤고, 한 달도 안 돼 ‘피의자 박근혜’는 검찰에 의해 공식화됐다. 이때쯤이면 힘의 균형추는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다. 복기해보자면 검찰이 정권을 버리기로 결심한 건 폭로 직후였을 거다. 아니라면 그런 속도와 기동전이 가능했을 리 없다.
이번에는 달랐다. 검찰이 숨죽인 사이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공천개입 의혹에 대해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밝혔다. 녹취에 나온 자신의 발언(“김영선이 좀 해줘라”)은 외압이 아니라 공직선거법상 허용되는 ‘단순한 의견개진’이라고 했다. 전직 검찰총장의 생중계 수사 지휘를 후배 검사들이 못 알아들었을까. 알아들었다면 검찰이 달리 행동할 거라고 기대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녹취 주인공 명태균씨는 검찰 조사 뒤 그토록 당당해졌을 거다. 대통령의 몰락은 곧 검찰의 몰락이 될 거라는 불안감. 검찰 조직의 생사가 대통령 운명에 달렸다는 절박한 동지의식. 거기서 나오는 검찰의 충성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대통령이다.
양자가 공유한 건 또 있다. 임은정 검사가 책에서 지적했듯 ‘교장 따위, 판사 따위는 안 되지만 우리는(검찰은) 죄를 덮을 수 있다’는 자신감. 죄를 결정하는 건 오직 검사라는 믿음. 검사는 처벌할 뿐 처벌받지 않는다는 신념. 물증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통령 배포에서는 굳건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평생 검사이자 뼛속까지 검사이며, 오직 검사의 정체성으로 사회적 자아를 구성해온 사람들이 공유한 이 신념체계만이, 전직 검사가 자신이 단죄한 바로 그 범죄로 의심받을 게 뻔한 언행을 거침없이 하도록 만들었을 거다.
대통령과 배우자, 그들 주위의 이상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일부 검사 주위에 모인 사람들, 남자들 여자들, 한탕을 꿈꾸는 사람들, 권력의 부스러기를 줍는 사람들, 범죄자, 사기꾼, 브로커, 모사꾼들. 감시받은 적 없는 작은 권력은 큰 권력을 쥐고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 차라리 잘된 일일까. 작고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정보가 극단적 형태로 맹렬한 바람에 실릴 때만 소통된다는 게 이 사회의 비극’이라고 했다. 표절 얘기인데 기자회견을 보며 그의 말이 떠올랐다. 지난 30년 곪은 검찰의 문제는 규모를 키우고 맹렬한 분노의 바람에 실린 뒤에야 해결되는 걸까.
때로 만나고 때로 엇갈렸던 전직 검사와 검찰의 이야기가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끝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두려 한다. 우리가 도돌이표처럼 맞은 이 상황. 민주주의의 모든 과제를 검찰 손으로 처리하고 감시는 잊은 게으른 사회의 비극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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