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트럼프 2.0 시대, 미 Fed는 ‘가장 요란한’ 갈등에 휘말린다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온다. 세계는 트럼프 1.0 시절(2017년 1월~2021년 1월)에 그의 경제 정책을 진하게 맛봤다. 트럼프 2.0(2025년 1월~28년 1월)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관세 장벽 ▶이민 제한 ▶약달러-중앙은행 독립성 축소 등이다. 그런데 그의 당선 직후 달러 가치가 강세다. 트럼프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 바람에 ‘연방준비제도(Fed)를 장악해야겠다’는 욕망이 트럼프의 가슴 속에서 더욱 거세질 수 있다. Fed를 둘러싼 선출직과 테크노크라트 사이 갈등이 역사상 가장 심해질 수 있다. 징조는 이미 나타났다. 트럼프의 당선이 분명해진 이달 7일 제롬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뒤 연 기자회견에서 기자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기자: “당선자 경제참모 가운데 몇몇은 의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퇴를 요구받으면 물러나겠는가.”
의장: “아니다(No)!”
기자: “법적으로도 물러나도록 요구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인가?”
의장: “그렇다!”
■
「 Fed 독립을 중요시 않는 트럼프
내년 파월 의장 몰아내기 본격화
의장·이사 임기 달라 파월 버틸 듯
자칫 Fed-FOMC 의장 달라질 수도
」
트럼프 눈 밖에 난 파월
파월의 대답은 중앙은행 독립이란 경제 교과서의 교리를 중시하는 사람의 귀엔 당연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Fed의 실제 역사를 아는 이에겐 ‘돈의 신전(중앙은행)’을 둘러싼 권력 갈등과 대결의 신호탄으로 비친다. 과거 Fed 의장 가운데 백악관의 압박에 물러난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폴 볼커가 1987년 당시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의 사퇴 종용을 따랐을 정도다. 선출된 권력이 눈치를 주면 Fed 의장이나 이사가 물러나는 게 관례였다.
애초 파월은 트럼프 사람이었다. 트럼프 1.0 시절인 2018년 Fed 의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에 의해 2022년 다시 의장이 됐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파월의 기준금리 인상을 마뜩잖아했다. 올해 대선 기간에도 미 언론과 인터뷰 등에서 “파월이 정치적”이라며 “그가 민주당을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지금 파월은 트럼프 눈 밖에 나 있다.
이런 파월을 Fed에서 밀어내기 위해 트럼프는 또 다른 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79년 당시 의장인 윌리엄 밀러를 재무장관에 임명하는 방식으로 Fed 의장에서 물러나게 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레이건이 볼커를 압박할 때 했던 것처럼 친한 Fed 이사를 동원해 파월을 외톨이로 만들 수 있다. 트럼프는 레이건 전술을 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의 참모들은 차기 의장 후보까지 물색해놓았다. 케빈 해싯(Kevin Hassett)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이나 케빈 워시(Kevin Warsh) 전 Fed 이사 등이다.
파월이 버틸 수 있는 힘은
파월이 기자회견에서 대답한 대로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수 있다. Fed의 독특한 의장·이사 임기와 내부 선출 구조를 등에 업고 파월이 거세게 저항할 수 있다. 현재 그는 이사이면서 동시에 의장이다. 현재 의장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다. 트럼프 2.0과 16개월 남짓 겹친다. 반면에 이사 임기는 2028년 1월에 끝난다. 파월이 의장 자리를 내놓더라도 이사로 남아 트럼프 통화정책에 반기를 들 수 있다. 레이건의 경제참모였던 스티브 행키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트럼프 취임 이후 1년은 Fed 역사에서 가장 요란한(roaring) 시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독특한 Fed 의장-이사 임기 구조는 20세기 초 Fed 설계자들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1910년대 월가와 공화당은 영국 영란은행(BOE)처럼 민간 은행이지만 마지막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 구실 하는 중앙은행을 설계했다. 하지만 우드로 윌슨이 1912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국가기관형 중앙은행으로 바꿨다. 대신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의장이 물러나더라도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백악관의 영향을 차단하도록 했다. 그러나 후대 대통령들은 의장 사퇴를 종용할 때 이사직도 같이 내놓도록 했다.
의장 바꾸면 통화정책 좌지우지?
트럼프가 파월을 의장과 이사 모두 내친 뒤 자기 사람을 내세운다고 해서 통화정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ed 설계자들이 만들어놓은 또 하나의 안전장치(내부 선출규정)가 있기 때문이다. Fed의 통화정책 최고 결정기구는 대통령이 임명한 의장-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아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라는 기구가 기준금리 조절 등을 맡고 있다. FOMC는 대통령이 이명한 이사 7명과 뉴욕 등 지역 준비은행 총재 5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된다. FOMC 의장은 위원회 멤버들에 의해 선출된다. Fed 의장을 FOMC 의장에 선출해왔을 뿐이다. 법규대로라면 트럼프가 지명한 Fed 의장이 시원찮으면 FOMC 멤버들이 다른 사람을 위원회 의장으로 뽑을 수 있다. Fed-FOMC 의장이 서로 달라 통화정책을 놓고 격돌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물론 최악의 경우다. 그만큼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트럼프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관행쯤은 무시하곤 했다. Fed를 달러 가치를 입맛에 맞도록 조절하는 지렛대쯤으로 여기곤 했다. 이런 그의 성향과 행태 때문에 ‘설마 그럴 리가!’라는 말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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