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초록 방주와 미래 도서관

2024. 11. 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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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하 시인·목사

“한 번만 들어도 좋은 이름이 있다/미래라는 둘도 없는 이름이다//나에게도/가지고 싶은 이름이 있다면/미래라는 이름이다//뜨겁게 머물다/문득 떠나는 이름이 아니라/밀물처럼 왈칵 쳐들어와선/사방을 꽉 채우는 초록 같은 이름…”(천양희, ‘미래라는 마음’)

불안과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세상에서 왜 시인은 미래를 ‘한 번만 들어도 좋은 이름’이라고, ‘사방을 꽉 채우는 초록 같은 이름’이라고 호명하는 것일까. 나는 ‘초록 같은 이름’이라는 표현에서 오늘날 기후 변화의 대혼란 속에서 ‘씨앗 방주’를 준비하는 현대판 노아들을 떠올렸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뿐만 아니라 자연 재해, (핵)전쟁, 테러 등으로 인한 식물 멸종에 대비해 인류의 먹거리와 작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초록 씨앗 방주.

「 식물 종자 보관은 인류의 전통
미공개 소설 보관도 같은 맥락
기후재난 후세에 넘기지 말아야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AFP=연합뉴스

그 초록 방주가 마련된 곳은 인간이 거주하는 곳 중에 북극점에 가장 가까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 이곳의 영구 동토층 암반에는 130m 터널을 뚫고 지은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사진)’가 있다. 이 거대한 저장고에는 2020년 기준 세계 각국에서 맡긴 100만 종 이상, 5억 개가 넘는 종자 샘플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캐리 파울러, 『세계의 끝 씨앗 창고: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 이야기』)

식물의 종자를 소중히 여겨 보관, 저장해온 것은 아주 오래된 일. 내 어린 시절만 해도 농부들은 벼, 보리, 콩, 녹두, 수수, 조, 고추, 무, 배추 등 온갖 씨앗을 채종하여 헛간에 보관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소농을 꾸리던 시절엔 누구나 종자를 받아 보관했다가 논밭에 뿌렸고, 먹을 것이 부족해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는 먹지 않았다. 식량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농업의 토대이자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생물 다양성, 종자에서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종자 은행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같은 맥락에서 설립된 ‘미래 도서관’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세워진 이 시설도 북극점에 가까운 노르웨이에 있다는 것이 특이하고 놀랍다. 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케이티 페터슨으로, 현재에만 집중하는 시간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제로 활동하는 예술가. 2014년 그는 오슬로 북쪽, 노르드마르카 숲에 가문비나무 묘목 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토마스 H 에릭센, 『인생의 의미』)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 도서관'(Future Library)으로부터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소설가 한강이 2019년 5월 25일(현지시간) 오슬로 외곽 '미래도서관 숲'에서 약 한 세기 뒤에 출간할 미공개 소설 원고를 흰 천으로 싸매고 있다. 연합뉴스


페터슨은 2014년부터 이 가문비나무 숲에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미공개 소설 원고를 받고 있는데, 이 의식은 지금도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14년에 심어진 가문비나무는 2114년이면 높이 20m에 셀룰로이스(종이의 원료가 되는 섬유소)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이 셀룰로이스로 만든 종이에 해마다 수집된 미공개 소설 원고를 인쇄하여 책으로 출간하게 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초청된 첫 두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와 데이비드 미첼, 2017년에는 엘리프 샤팍이었으며, 2018년에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리나라 작가 한강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매스컴에서는 한강 작가가 노르드마르카 숲에서 미공개 소설을 전하는 장면도 소개한 바 있다.

이렇게 전 세계의 유명 작가들의 미공개 소설 원고는 2014년 가문비나무 묘목에 자리를 내어준 나무들로 지어진 공공도서관 데이히만 비외르비카의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라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아닌, 미래 세대들이 100년 전 작가들의 생각과 지구 사랑, 그리고 그들의 고독과 슬픔과 희망의 문장을 읽게 될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미래’라는 공허한 개념을 눈에 보이는 개념으로 변모시켰다는 것. 우리가 살아온 과거만큼이나 미래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지구에 서식할 모든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도 상기시켜 주었다.

그렇다. 미래는 우리가 무책임하게 방기해도 좋은 공허한 시간이 아니다. 대홍수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목숨을 잃어버린, 최근의 스페인을 비롯한 전 세계의 기후 재난을 미래 세대에게 무책임하게 떠넘기지 말아야 하리라. 생태환경문제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앞으로 100년, 200년, 500년 후 나와 당신이 ‘나쁜 조상’이었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안에 이런 자각이 싹트지 않는다면, “35억 년 동안 느리게 많은 시도와 착오를 거쳐 쌓아온 모든 진화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토마스 H 에릭슨)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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