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의 마켓 나우] 성장기 끝나고 진화기 시작된 반도체 산업
진화의 과정은 긴 시간에서 보면 연속적이지만, 진화 자체는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불연속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환경 변화 같은 스트레스 요인 때문에 발생하는 진화는 단기적으로는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확연하게 달라진 결과를 보게 된다.
반도체 산업이 70년 이상의 성장기를 지나 진화기에 접어들었다. 변화와 발전의 양상이 질적으로 다르다. 진화를 일으키는 스트레스 요인에는 미세화의 한계, 기업 간 협력체계의 퇴조, 지역적 분리주의, AI 기술 발전, 팹리스 수요 폭발에 대응하지 못하는 파운드리 산업이 포함된다. 최근 파운드리 사업의 포기·분사를 둘러싼 인텔의 고민은 새 시대를 알리는 신호다.
진화의 결말이 양자컴퓨팅 같은 새로운 종의 탄생이 될지는 모르지만, 반도체 산업은 분명히 ‘미래를 기존의 논리로 예측하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인재육성, 메모리 중심으로 회귀, 팹리스 육성 같은 단순한 정책 논리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반도체는 지금까지 9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물질만을 이용해 제작했다. 그런 소재는 몇 가지 없었기 때문에, 소재 발전보다는 설계 개선과 미세화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HBM 같이 따로 만들어진 반도체 칩들을 쌓고, 이어서 만드는 이종집적기술 시대가 왔다. 최신 인텔 비디오카드에는 무려 57개 칩이 집적되어있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반도체 소자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종집적기술은 칩과 칩을 잘 이어 붙이고, 연결 부위에 새로운 반도체연산기능을 부여하여 최종 완성된 시스템의 성능을 개선하거나 소모전력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로 발전할 것이다. 개별 칩들도 통상적인 칩들을 넘어서는 기능을 가진 센서, 양자컴퓨팅용 칩이나 초저전력 연산이 가능한 다치논리 칩(0과 1의 이진논리를 넘어 복수의 논리 상태를 사용하는 반도체 칩) 등 지금까지 반도체기술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다양한 기술이 융합될 것으로 예상한다. 칩을 연결하는 부분에도 고온공정을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반도체 기술을 적용하여 칩 간의 정보교환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타깝게도 반도체 기술 발전을 효율적으로 이끌었던 산업 내 협력체계가 퇴조하면서, 혁신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 극한 경쟁 시대가 됐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과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기술개발을 독려한다.
격변 한가운데에도 연속성이 있다. 기존의 생존수단을 강화하려는 보수적 개체보다는 새로운 경쟁수단을 도입하는 개체가 승리하며, 진화 추세에 맞춰 혁신하지 못하는 개체는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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