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음악제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

2024. 11. 1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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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올가을은 유난했다.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수그러든 여름의 태양과 짙은 가을의 그림자가 공존하던 10월, 강릉으로 향했다. 제1회 하슬라국제예술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을 벗어나 낯선 경포호를 끼고 달려 도착한 강릉아트센터는 깨끗했다. 맑은 공기가 코끝에서부터 느껴졌다. 소프라노 이명주와 발레리나 김주원이 주역인 ‘고귀한 두 여신이여’에서 피아노와 발레를 함께 감상했다. 자유로운 음악 위에 중력을 극복한 무용수의 몸짓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소프라노 한경성과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횔의 듀오 리사이틀도 기억에 남는다. 멘델스존 남매와 슈만 부부 등의 ‘달’을 다룬 노래들에서 격조 높은 표현과 연주의 생생함이 감칠맛 났다. 윤극영 ‘반달’과 박태준 ‘가을밤’ 등 우리 가곡들도 막 단풍이 번져가는 강릉에 어울렸다.

지난 20일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강릉시향과 연주하고 있다. [사진 하슬라국제예술제]

강릉시립교향악단의 폐막공연은 음악감독 정민이 지휘했다. 쇼팽 협주곡 1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물찬 제비같이 날렵했다. 고음에 띄우는 애수, 따뜻한 위트까지 갖가지 팔레트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릉의 옛 이름을 내세운 축제의 예술감독은 피아니스트 조재혁이다. 그가 부모님의 고향에서 일구기 시작한 축제가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된다.

11월 첫날엔 포항문화예술회관에 갔다. 포항국제음악제 개막공연 ‘바다의 노래’를 보기 위해서다. 4회째를 맞는 음악제는 자리를 잡은 듯 안정적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하는 등 요즘 젊은 지휘자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윤한결이 포항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플루트 수석 김유빈이 협연한 라이네케 협주곡은 화려한 색채감을 자랑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는 근래 보기 드문 호연이었다. 악장 토비아스 펠트만의 바이올린 독주는 애절하게 빛났다. 호방한 금관과 또렷한 목관, 파도 같이 수위를 넘나드는 현이 거대한 총주로 뭉칠 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손끝과 몸짓에서 음악이 꿈틀대며 살아나는 지휘였다. 서로 격려하는 단원들 사이에서 첼로를 든 예술감독 박유신이 보였다.

이틀째인 ‘파도의 장난’에서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스텔라 첸(바이올린), 게자 안다 콩쿠르 우승자 일리야 슈무클러(피아노) 조인혁(클라리넷)이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병사 이야기’가 빼어났다. 맹렬한 바이올린과 구성진 클라리넷, 명쾌한 피아노가 어우러졌다.

맛집과 카페들이 즐비한 강릉과 포항에서 음악축제는 ‘멋’을 담당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다. 지난 9일에는 고양아람누리에서 제2회 DMZ오픈국제음악제(페스티벌 총감독 임미정)가 개막해 16일까지 계속된다. 음악제 속으로 가을 나들이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티켓 가격도 저렴하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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