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디 갔지? 관광도 쇼핑도 특수 실종

이우림 2024. 11. 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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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최대 복병 된 ‘기후’


#매년 환절기가 되면 옷을 새로 장만했던 직장인 권모(31)씨는 이번 가을엔 따로 쇼핑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10월까지 더위가 이어지다 보니 간절기 옷을 구매할 타이밍을 놓쳐서다. 권씨는 “이젠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패션 회사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백모(31)씨는 “원래 9월부터 후드·스웨터 같은 간절기 상품이 나가야 하는데 두 달 내내 단가가 낮은 반팔 티만 팔았다”며 “이번 달부턴 바로 겨울옷 판매가 시작돼 가을 특수를 놓쳤다”고 말했다.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소비 활력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던 관광·의류업계가 울상이다. 올해 이례적으로 늦더위가 이어지면서 기대 이하의 성적이 나오고 있어서다.

11일 통계청의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3분기 ‘의복’ 관련 거래액은 4조5123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 감소했다. 3분기 기준 거래액이 감소한 건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0.7%) 이후 처음이다. 정은정 통계청 서비스업동향과 과장은 “경기 침체 영향도 있겠지만,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 환절기 의류 구매 욕구가 떨어진 것이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9월 전국 평균 기온은 24.7도로, 평년보다 4.2도 높았다. 전국에 기상관측망을 확충한 1973년 이후 52년 만에 가장 더웠다. 10월 전국 평균 기온도 평년(14.3도)보다 1.8도 높은 16.1도로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패션·의류업계 실적도 좋지 않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3분기 매출이 433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5%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210억원으로 36.4% 줄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3분기 매출은 2960억원으로 6.3% 줄었고, 영업이익은 21억원으로 65.4% 감소했다. 다만 패션·의류업계는 4분기에 역대급 한파가 예보된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다.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겨울철 옷이 많이 팔릴 경우 실적을 만회할 수 있어서다.

관광업계에선 10~11월까지 이어진 더위에 단풍 절정기가 미뤄져 손해가 크다. 단풍 명소인 광주 북구 무등산 인근에서 9년째 펜션을 운영 중인 조모(33·전남 담양)씨는 “1년 전보다 숙소 예약이 20% 줄었다. 통상 10~11월 초가 단풍 절정인데 입동(7일)이 지난 지금도 무등산을 올려다보면 절정이란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5~27일 대구에선 팔공산 단풍 축제가 열렸지만, 당시 단풍이 들지 않아 ‘단풍 없는 단풍 축제’가 됐다. 지난 5일 기상청의 유명 산 단풍 현황을 보면 전국 21개 산에 모두 단풍이 들긴 했지만, 절정에 이른 산은 절반인 11곳에 불과했다. 절정은 산의 80%에 단풍이 들었을 때를 말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다른 가을 축제도 취소 또는 축소되는 사례가 많다.

외식업계의 타격도 적지 않다. 가을까지 고수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꽃게와 전어, 갈치 등 제철 수산물의 어획량이 크게 줄어들어서다. 가격이 급등하면서 재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손님이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앞으로 실물 경제에 최대 복병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 발간한 ‘이상기후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상기후로 인해 산업생산의 성장률이 저하되고 공급 차질을 불러 물가를 끌어올리는 등 ‘기후인플레이션’을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이상기후 충격은 산업생산 증가율을 12개월 후 0.6%포인트가량 하락시켰고, 2020년 이후 이상기후가 인플레이션을 지속해서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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