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덜 일해 과로사 아니다? 노동부-근로복지공단의 이상한 판단
노동의 유형이 다양해진 만큼 노동착취와 사용자 책임 회피의 모습도 다양해졌습니다. 가짜 3.3 노동,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 노동 등 어떠한 이름을 붙여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내 마음속 비빌 언덕, 비상구가 필요합니다. 3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비상구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와 제도적·사회적 해결방안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기자말>
[채성욱 기자]
▲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정을 담당하는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에서 1주 52시간 초과 여부로 대부분의 산재를 기계적으로 판정하고 있다. |
ⓒ homajob on Unsplash |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과로로 인한 산재 사망사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족에게 재해자의 출퇴근 시각을 물어보면, 잘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탐정이 되어 재해자의 모든 카드 사용 내역과 통화 내역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근로복지공단은 12주의 근무시간을 평균하여 52시간이 넘어야 과로 산재로 인정해 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모든 기록을 다 뒤졌지만 51시간 40분이 나왔다. 비록 재해자의 근무시간이 52시간에서 20분이 모자라지만 현장 관리, 영업, 민원 처리 등으로 인한 과로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20분이 부족하여서 불승인이었다. 이에 불복하여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에 심사와 재심사를 청구하였으나 모두 기각결정을 받았다. 결국 재해자는 노동부의 고시와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에 구속되지 않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이 재해자만 그럴까? 그렇지 않다. 사무실로 다른 상담 전화가 온다. 근로시간을 물어보고 52시간이 넘지 않으면 사건을 수임하기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판정을 담당하는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에서 1주 52시간 초과 여부로 대부분의 산재를 기계적으로 판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만 보고 기계적으로 판정한다면 AI가 판정해도 되지 않을까?
한편, 근로시간이 52시간 이상인지 묻는 행위는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여부를 물어보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을 염려하는 노동자는 직접적인 대답을 꺼리게 된다. 그러면 반대로 상담을 통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없다. 상담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스무고개가 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항상 상위권의 근로시간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법원은 최근 근로시간 규정을 사용자가 노동자의 과로를 더욱 조장할 수 있도록 판결하였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근로기준법을 위반해야 과로로 인한 산재를 인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②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
한편, 판례는 연차유급휴가 규정의 취지를 '① 정신적·육체적 휴양 기회를 제공하고, ② 문화적 생활의 향상을 위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직접적인 판례는 아니지만, 연차유급휴가 규정의 도입 취지와 근로시간 규정의 도입 취지는 유사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은 이와 다르다. 현실의 노동은 노동자에게 휴양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문화적 생활을 향상시키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현실의 노동에서는 1주 52시간제가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위하여 사업주에게 추가적인 근무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용자가 노동자의 추가 채용에 따른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기존에 채용된 노동자들에게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원인이다.
현실의 노동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52시간제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52시간제를 사용자에게 더욱 유리하게 해석하였고,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52시간제를 위반해야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 노동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만든 대법원의 52시간제 판결
▲ 출처 : 고용노동부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 |
ⓒ 고용노동부 |
2023년 판례에 따라서 사용자는 1주 총근로시간이 52시간만 넘지 않으면 1일에 노동자를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21시간까지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를 마음 놓고 더욱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해당 판례는 ① 1주의 연장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제한한 입법자의 입법목적과 ②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판례라고 생각한다.
다만, ① 가산임금(1.5배)과는 무관하므로 사용자가 가산임금은 지급해야 하는 점, ② 사용자를 형사 처벌하는 형사 판결이기 때문에 범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대법관이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근로기준법의 법률 문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여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는 것도 논리상 가능은 하다고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소개할 노동부 고시와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 근로기준법을 위반해야 산재로 인정해 준다?
NO | 업무시간 | 업무부담 가중요인 |
① | 4주 평균 64시간 초과 | |
② | 12주 평균 60시간 초과 | |
③ | 12주 평균 52시간 초과 | + 1개 이상 |
④ | 12주 평균 52시간 이하 | + 최소 2개 이상 |
그러나 상기한 노동부 고시 중 ①과 ②의 경우 2013년에 도입된 후 52시간제 실시와 관계없이 11년째 그대로이다. 한편 ③과 ④의 경우 2018년에 도입되었다. 2018년에 1주 5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는데, 같은 연도에 노동부는 1주 52시간 이상 근무하여야 과로를 인정하겠다는 고시를 도입한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 노동시간별 뇌심혈관질환 사망 산재 인정률 |
ⓒ 용혜인 의원실 |
왜 산재에는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유연함'이 없는가?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사용자에게 보험 가입자 의견서와 사업장 확인서를 요청한다. 노동자가 신청한 산재에 대하여 사용자도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는 행위이다.
이때, 노동자가 1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과로를 하였다면 사용자는 난관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사용자가 자신이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무를 시켰다고 인정하는 순간 근로기준법 위반을 시인하게 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용자는 산재 발생 사실을 더욱 은폐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산재로 인정받기 위하여 실무상 부제소 합의서 등을 작성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사용자는 1주 52시간 이상 근무시킨 행위를 시인하고, 노동자는 이 사실을 산재 신청에만 활용할 것이며, 민·형사·행정상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사용자와 합의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노동자가 1주 52시간 이상 근무한 사실'은 인정하되, 노동자는 사용자의 1.5배 가산 임금 미지급과 관련하여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하게 된다.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하여 체불임금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생물학적인 과로와 우리 사회의 법 제도는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 노동자는 주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1980년대에는 1주 50시간 근무가 과로가 아닐 수 있지만, 이미 52시간제 노동환경 아래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 노동자들에게는 1주 50시간 근무가 과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부 고시에 따라 산재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는 현행 고시에 따라 1주 52시간을 기준으로 산재 인정 여부를 재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글은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의 산재를 더욱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산재 인정에도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채성욱은 공인노무사이자 정의당 비상구 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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