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파 낙하산' 신호탄?…트럼프, 상원 인준 절차 '무력화' 모색

강태화 2024. 11. 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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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파’ 중심의 내각 구성 원칙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0일(현지시간) 미 상원의 인준 절차를 생략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의 다수당이 되면서 고위공직자 임명에 따른 부담이 줄어든 상태임에도, 후보자 인준 과정에서 불거질 논란이나 민주당의 반대가 예상되는 의회 절차를 아예 건너뛰고 '속전속결' 인사를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일 펜실베이니아주 리티츠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뒤 유세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의회 인준을 무력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트럼프는 이날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부모와 아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톰 허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대행을 “국경 업무를 맡을 ‘국경 차르’로 지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1기 때 ICE 국장으로 지명됐지만,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한 채 ‘국장 대행’으로 ICE를 이끌다 2018년 물러났다.


의회 노골적 압박…“지도부 되려면 동의하라”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13일로 예정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선거와 관련 “지도부가 되려는 공화당 상원의원은 누구든지 반드시 상원에서의 ‘휴회 인준’에 동의해야 한다”고 적었다. 휴회 인준(Recess Appointment)은 의회가 휴회일 때 대통령이 의회의 인준을 생략하고 공직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휴회 인준을 통해 임명된 공직자는 최대 2년까지 직을 유지할 수 있다.

트럼프는 “이것이 없으면 적기에 (필요한) 인사들을 인준받을 수 없다”며 “때로 투표가 2년 이상 걸리는데, 이것이 그들(의회)이 4년 전에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인사 검증을 통한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당선을 확정지인 뒤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상원은 대통령이 휴회 인준을 활용한 인사 독주를 막기 위해 회의가 없어도 임시회를 관행적으로 소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방 대법원은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시도했던 3건의 휴회 인준에 대해 “상원이 완전한 휴회가 아니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2020년 트럼프는 의회가 자신이 지명한 후보자에 대한 인준 절차가 길어지자 의회를 강제로 휴회시키고 휴회 인준 권한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상원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인준 무력화 지시에…상원서도 ‘충성 경쟁’

트럼프가 휴회 인준을 오는 13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선거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사실상 자신의 뜻에 찬성하는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현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1기 때 트럼프와 자주 충돌을 빚으며 ‘앙숙’으로 불린 미치 매코널이다. 후임을 놓고 존 코닌(텍사스)·존 튠(사우스다코다)·릭 스콧(플로리다) 상원의원의 3파전이 진행 중이다.

릭 스콧 상원의원이 5일 플로리다주 보니타 스프링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10일 트럼프 당선인이 휴회 인준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올린 직후, 자신의 SNS에 "100% 동의한다"는 글로 화답했다. AP=연합뉴스

트럼프가 게시글을 올리자 스콧 의원은 곧 “100% 동의한다. 가능한 빨리 지명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화답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스콧을 상원 다수당(공화당) 원내대표로!”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튠 의원은 “휴회 임명을 포함한 모든 옵션은 테이블에 있다”라고 했고, 코닌 의원은 “헌법은 대통령에게 휴회 임명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 정계에선 3명의 경쟁자 중 누가 당선되든 트럼프는 충성파 내각에 이어 의회 지도부까지 충성파로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행정·입법 이어…“민주당의 판사 임명 막으라”

트럼프가 이날 올린 글에는 사법부 관련 내용도 있다. 그는 “공화당의 (원내대표)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동안 민주당이 연방대법관 교체를 밀어부치려 한다”며 “이 기간 동안 어떠한 대법관도 인준돼선 안 되고,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적었다. 이는 민주당 일각에서 트럼프 정부 출범에 앞서 최고령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사퇴시키고, 진보 성향 대법관을 미리 임명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란 지시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0월 뉴욕 맨해튼 법원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3명이 진보 성향이다. 민주당에선 현재 소토마요르 대법관을 미리 교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만약 그가 트럼프 임기 중 별세하거나 물러날 경우 대법관의 보수·진보 비율이 7대 2로 더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트럼프에게 대법관 구성은 민감한 문제다.


‘이민자 가족 분리’ 주장했던 톰 호먼 기용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이날 오후 11시간 자신의 SNS에 “전 ICE 국장이자 국경 통제에 확고한 신념을 가진 톰 호먼이 국경과 해상 및 항공 보안을 포함한 미국의 국경을 책임질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를 ‘국경 차르(The Border Czar)’라고 칭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역할은 국토안보부 장관의 업무와 유사하다. 다만 트럼프는 호먼이 맡을 정확한 직책은 언급하지 않은 채 “모든 불법 외국인들을 출신 국가로 추방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2020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애리노나주 국경 장벽을 둘러보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선거 내내 “불법 이민자를 사상 최대 규모로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반복해왔다. 지난 7일 NBC 인터뷰에서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국경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을 꼽으며 “(추방 작전은)선택의 여지가 없고,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추방에 드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서도 “그것을 가격표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경문제를 책임질 톰 호먼은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4년부터 “부모와 아이를 분리하는 것이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인 2017년 현직 ICE 국장을 부국장으로 강등하고, 그 자리에 호먼을 앉혔다.

캐롤라인 래빗 정권 인수팀 대변인은 호먼 지명 직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서명할 수십 개의 행정명령을 정책고문들이 작성하고 있다”며 “취임 첫날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주재 대사에 스테파닉 지명

또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유엔 주재 대사에 엘리즈 스테파닉 하원의원(뉴욕)을 지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미 언론에 10일 밤 성명을 통해 "스테파닉을 내 내각의 유엔 주재 대사로 지명하게 돼 영광"이라며 "그는 매우 강하고 터프하며 스마트한 '미국 우선주의' 투사"라고 치켜세웠다.

스테파닉은 한때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된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2014년) 출신이다. 2016년 대선과 트럼프 1기 초기엔 트럼프에 비판적이었으나, 2019년 트럼프의 탄핵 심리에선 트럼프를 앞장서 옹호했다. 그는 "2020년 대선 결과가 사기"라는 트럼프의 주장도 지지했다.

톰 호먼 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대행이 2019년 국회의사당에서 증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측근 “‘억만장자’ 스콧 베센트가 재무장관”

트럼프의 최측근 사이에선 2기 행정부 핵심 보직 인사에 대한 예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은 이날 자신의 웹사이트에 “스콧 베센트가 재무장관으로 고려되고 있고, 카시 파텔도 고위직으로 검토된다”고 적었다.

스톤은 2016년 대선의 러시아 개입 의혹과 관련한 위증 혐의 등으로 기소됐지만, 트럼프가 사면했다. 최근엔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에 대한 공개 비판을 통해 그의 입각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9일 그의 말대로 폼페이오를 인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스톤이 언급한 스콧 베센트는 헤지펀드 ‘키스퀘어그룹’의 창업자로 트럼프로부터 “월스트리트 최고 애널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왼쪽)이 지난 8월 14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 유세에서 스콧 베센트가 경제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을 듣고 있다. 베센트는 유력한 재무부장관 후보로 거론된다. AP=연합뉴스


베센트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규제완화와 세금 개혁으로 미국 경제를 재민영화해 공급 측면의 성장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 분야 투자에 인센티브를 지급한 데 대해 “비생산적 투자를 장려하는 왜곡된 인센티브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RA를 통해 대미 투자를 늘린 한국 기업앤 부담이 될 수 있다.

스톤이 언급한 또 다른 인사인 카시 파텔 전 백악관 대테러담당관은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트럼프 정부 말기 국방부가 직무대행 비서실장을 맡아 바이든 정부에 대한 업무 이양을 방해했던 인물이다. 현지 소식통은 “트럼프는 충성파와 월가의 현직들을 기용할 뜻을 밝히고 있다”며 “의회의 검증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사들의 기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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