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국민기업' 명분 잃은 이유…신뢰 못 찾으면 ‘유증철회’ 불가피
‘주주가치 제고’ 명분과 상충·기습 발표에 시장 혼란 등 비판
고려아연, MSCI 퇴출 등으로 주가하락 리스크 최소화 목적
고려아연이 ‘국민기업’을 내세워 추진하는 유상증자가 동력을 잃고 있다. 앞서 진행했던 자기주식 공개매수 목적의 ‘주주가치 제고’ 명분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서다. 고려아연은 투자자들과의 소통 강화로 민심 회복에 나섰으나 회복이 어려울 시 ‘철회’ 카드까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번 주 내 유상증자 추진 강행 또는 철회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시장 전문가의 의견과 주주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청취하고 최종 결정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총 모집주식 수는 373만2650주로 공개매수를 통해 취득한 소각대상 자기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수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를 통해 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 육성에 투자하고 일부는 채무 상환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주주 구조 다양화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인한 국내 산업생태계 교란과 공급망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도 있다.
하지만 시장과 업계 반응은 냉담하게 돌아서고 있으며 유상증자가 ‘자충수’가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앞서 한 고려아연의 결정과 상충한다는 지적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매입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한다고 약속하며 ‘주주가치 제고’로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유상증자 결정으로 대규모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을 맞게 된다.
당시 시장에서 예측하지 못한 기습적 발표로 시장에 큰 혼란을 줬던 점도 문제가 됐다. 발표 직후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고서 기재의 미흡함으로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기도 했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공개매수와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시기와 추진 경위, 결정 과정 등을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주주의 돈으로 빚을 갚는다’는 비판도 일었다. 고려아연은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에 대항하기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했는데 주식 매입 자금은 대출을 받았었다. 이후 일주일 만에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유상증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실상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가 목적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반면 고려아연은 장기적인 주주 피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퇴출로 인한 주가하락 위험이 그 예시다.
MSCI 지수는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하는 세계시장지수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의사 결정에 참고하는 지표다. 시가총액과 유동시가총액 등을 기준으로 편입 종목을 선정하며 세계 주요 지수 중 추종 자금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2006년 MSCI 지수에 편입됐다. 지수 편입시 상당 규모의 외국인 투자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으나 반대로 퇴출당하면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MSCI는 거래량이 매우 중요한데 현재 고려아연의 거래량은 1%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MSCI 지수 퇴출 등 여러 가지 리스크 요인들을 감안해 주식 유동성을 늘릴 필요성이 있어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시장의 의구심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 증권사와 기관 투자자 등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를 방문하는 등 투자자들과 소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주주·시장을 설득 시키지 못하면 유상증자를 철회를 할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주주의 요구사항을 주주총회 등에서 회사 운영 방안에 최대한 반영해 주주가치를 실현하는 노력을 하겠다"며 "기관이나 소액주주들과 계속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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