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IRA⋅반도체법, 폐지 보다는 보조금 축소 무게…거래 조건 살펴야"
인플레감축법⋅반도체법, 큰 변화보다는 보조금 축소 가능성
한미 FTA, 폐지·전면 수정 쉽지 않아…개정 협상 가능성은 대비해야
트럼프 1기 경험과 높아진 韓기업 위상 고려해 위기, 기회로 만들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으로 '바이든 보조금' 수혜를 예상한 국내 산업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해당 정책이 뒤집힐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많게는 9조원 가까이 받기로 약속한 보조금이 한 번에 날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통상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 자체가 폐기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면서도, 이를 유지하는 대신 독소조항을 추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1일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트럼프 신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전략적 대응책 모색' 좌담회에서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내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주로 공화당 지역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IRA·반도체법 완전 폐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좌담회는 우리의 통상 정책을 총지휘했던 한국의 통상 전문가(김종훈·여한구·박태호·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들이 연사로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의 직접 협상 경험은 물론, 트럼프 1기와 바이든정부의 주요 정책 대응에 관여했던 인사들이다.
여 연구위원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보조금을, 공화당은 세제 감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기술 경쟁으로 확전되면서 반도체, 배터리 부문에서 미국이 가만히 있으면 안되고 중국에 (기술 추격을) 허용하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면서 "트럼프 당선인 성격상 보조금을 주되, 거기서 좀 더 우리 기업에게서 얻으려 한다던가 추가 투자를 요청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미 대선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전기차-배터리 관련 정책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9~2021년 통상교섭본부장)도 IRA 폐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유 교수는 "IRA 폐기 보다는 보조금 축소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IRA 혜택이 80% 공화당주(州)로 갔다. 또 18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IRA 폐기 반대 서한을 올해 보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폐기가 쉽지 않다. 행정부, 재무부 규정 등의 축소를 시도하거나 요건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키니 리필(skinny repeal·일부폐기)' 형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1기 정부는 '오바마케어' 일부분을 폐지하는 스키니 리필을 추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유 교수는 "IRA를 폐지한 다음 공화당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법안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투자한 지역의 지역구 의원들을 중심으로 우리 요구사항이 선제적으로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판세를 읽으면서 통상 외교를 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훈 제19대 국회의원(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보조금 혜택을 몰아줄 공산이 있다고 언급했다.
김 전 의원은 "공화당은 친기업 기조다. 미국 기업을 우선으로 보조금 혜택이 가는 방향으로 (규정이)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보조금 자체가 확대되기 보다는 축소될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은 ESS(에너지저장장치) 등 전기차 이외에 큰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반도체법 등으로 보조금 또는 세액공제 규모가 줄어들까봐 우리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오히려 투자 규모를 늘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2기가 내세우는 '미국 중심 공급망 정책'이 성공하려면 결국 파트너사와의 협업이 요구되는 만큼 한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장은 "투자를 더 하는 방식으로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면 돌파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혼란이 많다고 주저하기 보다는 기업 차원에서 과감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막상 물건을 만들지 못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전세계 제조 능력 1등이다. 세련된 첨단 제품을 만드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기술-인력 교류, 공동 R&D(연구개발) 통해 양국 산업 경쟁력을 높이자고 제안한다면 트럼프 정부도 확실하게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며 "조선, 에너지 등에서도 수출을 덜 하겠다고 하기 보다 현실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종훈 전 의원은 "AI 시대를 감당할 반도체 설계-제조 공급망 구축은 미국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결국엔 협업하고 협상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미국이 갖지 못한 핵심 제조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핵심 파트너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서 '글로벌 전략 컨트롤타워'를 구축해 정부와 긴밀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다. 박태호 원장은 "기후 변화 대응, 디지털 시대 대응을 위해 기업 CEO가 글로벌 전략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하며 CEO가 탑의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부-한경협 등과 소통하며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2기, 취임 100일내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통상정책 추진 전망"
한편 내년 1월부터 새롭게 출범하는 트럼프 2기는 무역적자 해소를 우선순위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통상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여한구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제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향후 정책방향에 관해서는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미국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 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며 "이에 대비한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희 교수는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트럼프 정부가 양자관계를 판단하는 척도가 무역적자”라면서 “무역적자국 8위인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1순위 고려대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이어 타겟 국가가 될 수 있다.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 수단인 동시에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라며 “미국의 일방 조치에도 우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관세 면제나 우리 요구사항 반영이 가능할 수 있다. 정부 협상팀에게 도전이자 기회”라고 언급했다.
김종훈 전 의원은 트럼프 2기 보편관세 도입 및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관계 전반과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며 “그럼에도 개정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이익이 균형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태호 원장은 트럼프 1기에서 거세게 나타났던 미중 갈등에 대해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취했던 중국 견제조치는 그대로 두면서 중국 수입품에 대해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추가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 1기 후반에 했던 것처럼 중국과 대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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