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채 회사 다닌 첫 직원" 유명 회계법인 부대표에 오른 비결
한끗, 근소한 차이를 뜻한다. 그 차이가 때로는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성과만으로는 이를 수 없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여성 리더들에게는 특별한 '한끗'이 있다. 여성 리더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한끗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사회적으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말>
[이주연, 권우성 기자]
▲ 여성 리더들의 모임 (사)위민인이노베이션(WIN) 서지희 회장 |
ⓒ 권우성 |
2003년 대형 회계법인 첫 여성 파트너(연봉을 받는 사원이 아니라 배당금을 받는 주주)가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국내 회계 역사 50여 년 만에 탄생한 회계법인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고 했다. 2011년 삼정의 전무이사를 거쳐 2021년 부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대형 회계법인 사상 첫 여성 부대표였다. 입사했을 때 처음 만난 여성 회계사의 호칭을 고민하던 파트너가 '미스 서'로 불렀다는 그가 최일선의 리더가 된 것이다.
리더가 되기까지 그리고 리더가 된 후 그만의 차별점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한끗'이 그를 그 자리에 오르게 했을까. 5일 이화여대에서 서 대표와 만났다.
리더로서 성공하는 길
"입사 후 조직 내에서 성장하면서 '한끗'은 견뎌냄이었어요. 남성 중심 조직 내 단 한 명의 여성이었기에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한 건 없을까' 하며 나보다는 남을 신경 쓰던 시기죠.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그 말이 정말 딱 와 닿았어요. 당시는 남들이 하지 않았던 품질 관리에서 오랜 시간 경험을 쌓았죠. 그렇게 업계 '최초'를 달았습니다."
그랬기에 첫 여성 파트너가 됐을 때도 담담했다고 했다. "내가 잘 견뎠구나, 그렇게 이 자리에 올랐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견딤의 다음 단계 '한끗'은 성찰이었다. 남에게 향하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렸다. '이 일의 의미가 뭔지'부터 자문했다.
'일의 의미'는 회계사의 "자본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돕는" 공적 역할에서 찾았다. 업의 본질을 명확히 한 후 이를 조직 문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0년 이상 '일의 목적'을 전달하는 일을 했다. "'왜'가 단단해야 '무엇'과 '어떻게'가 유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기반이 됐다. 이 작업을 통해 일의 목적을 스스로 묻는 'Why are you here?(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은 삼정의 조직 문화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바꿔낸 것은 평가 시스템이었다. 자기가 한 업무를 흠결 없이 한 사람에게 가점을 주도록 했다. 구성원들이 업의 본질을 깨닫고 회계법인이 내놓는 결과물의 질을 높이는 것, 결국 "가장 중요한 품질관리"였다.
▲ 서지희 이화여대 기술지주회사 대표 이력의 모든 것은 '처음'이었다. |
ⓒ 권우성 |
"'나는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가' 계속해서 자문했어요. 이는 나 혼자만이 아닌 '우리'를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라 생각합니다. 커리어를 쌓아 온 내 여정이, 이 길을 가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왔습니다. 오늘 걸어간 내 발자국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오늘도 제 꿈은 커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서 대표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지나고 보니 가장 큰 장벽은 '내 한계를 스스로 그었던 거' 아닌가 싶다" |
ⓒ 권우성 |
"지나고 보니 가장 큰 장벽은 '내 한계를 스스로 그었던 거' 아닌가 싶다. 1986년 회계법인에 입사했는데, 그 회사의 첫 여성 회계사가 나였고 나머지 여성들은 모두 비서였다. 그때만 해도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입사 후 1년도 안 돼 결혼했고, 결혼 1년 후에 배부른 채 회사를 다녔다. 고객사에서도, 회사 내에서도 모두에게 익숙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런 소수성을 의식하게 됐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스스로 묻게 됐다.
국내 기업을 맡으면 지방 출장을 많이 가게 되고, 출장을 가면 또 술을 마시게 된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 그랬기에 내게 외국계 기업 감사를 맡긴 건 회사의 배려였다. 지금 생각하면 '국내 기업 맡겠다' 했어야 했나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 내 단 한 명의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한 건 없을까'를 생각하느라 나 자신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을 신경 쓰던 시기다. 견딤의 시간이었다. 자신을 가두던 관례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가장 큰 장벽이었다."
- '내가 이 일을 왜 하나 의문을 가졌던 때도 있었지만, 휴직을 했던 기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밝힌 기사도 봤다. 복직하며 그 의문이 사라졌던 건가.
"5년 차 때 육아 등을 위해 퇴사했다가 3년 휴직 후 재입사했다. 내 아이들과 함께해야 할 시간을 기회비용으로 치르고 일을 하는 거였다. 대체 가능한 일을 하는 건 그 기회비용을 헛되이 날리게 되는 거였다. 그러면서 성찰의 시기가 왔다. 일의 의미가 뭔지 묻게 됐다."
- 그렇게 찾은 일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공인회계사는 공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미디어 등에서는 돈 있는 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우리 업의 본질은 공인된 전문가로서 해당 기업에 제 3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자본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돕는 것이다. 이런 역할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업의 본질이 명확해지면, 일상 속에서 '이게 옳은 일인지, 내 업에 부합하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 공인회계사법에 고객 접대 받을 때도 얼마 이상은 안 된다 등 매우 세밀한 규정들이 있다. 독립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언제나 회색지대가 있다.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업의 본질'이 되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걸 후배들에게도 자꾸 되새기게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업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걸 사내 교육으로 녹였다. 'Why are you here?'을 회사 곳곳에 붙였다.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조직 내 품질 관리였다. 숫자를 다루는 조직이다 보니 업의 본질을 생각하라고 하니 어려워 하더라. 그래서 상부 조직부터 다 같이 1박 2일 워크숍을 하고 그 다음 승진자들,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5년여에 걸친 작업을 진행했다."
- 그 작업을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나.
"2010년, 전무이사가 되기 직전이었다. 내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겠다 생각한 게 야망보다는 내가 더 높은 포지션에 가야 내가 생각하는 바들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내 주요 업무는 품질관리였다. 회계법인 안에 있는 전문가들이 고객인 셈이다. 규정이 새로 바뀌면 이걸 안내하는 가이던스(guidance,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자료)를 만들고, 큰 고객들에 대한 보고서가 나가기 전에 반드시 리뷰하는 등 법인 전체의 위험도를 줄이는 업무다.
또 업무에 대한 리뷰와 피드백을 파트너 평가에 반영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고객을 많이 유치하는 파트너가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다면, 이제는 자기가 한 업무를 흠결 없이 잘한 사람에게 가점을 주도록 평가 시스템을 바꿨다. 조직 내 평가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조직원의 행동 양태가 달라지지 않나. 회계법인이 내놓는 결과물의 질을 높이는 것, 이게 나와 되게 잘 맞았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비결도 잘 맞는 일을 찾았기 때문도 있다."
▲ "리더는 팀원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람이고, 똑똑한 후배를 많이 배출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리더로서 성공하는 길이다" |
ⓒ 권우성 |
"교육 부문을 맡으면서 고민이 좀 됐다. 우리 업의 정체성, 리더십 교육을 조직 밖에 계신 분을 모셔서 하니 '우리 조직을 잘 몰라서 하는 얘기'로 여기는 부분이 있더라. 그래서 내가 강의를 해야겠다 싶었다. 데일 카네기의 리더십 코스 강의도 듣고, 한국코치협회 코치 자격증도 받았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한 책을 읽었다. 리더와 면담하고 돌아섰을 때 '우리 리더 똑똑하네'라고 생각하게 하는 리더보다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리더가 좋은 리더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게 정말 오래도록 남았다. 그래서 후배들이 자기 얘기를 하게끔, 안에 있는 생각들을 끄집어낼 수 있게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도 정리가 되고, '내 안에 좋은 게 있네' 알게 되면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게 리더십의 정수 아닌가 싶다."
- 리더십 강의에서는 무엇을 강조했나.
"특히 여성들에게 조언하길 '정체성을 잃지말라'고 얘기한다. 나로서, 조직에 공헌하는 게 중요하다. 남을 흉내 내면 내 안의 강점을 발견할 수 없다. 내 것으로 고객과 소통해야지 술 못하고 골프 못 치는데 그걸 따라 해서는 나만의 비즈니스를 만들기 어렵다. 은퇴하고 다른 회사 강의도 많이 다녔는데 제목이 'Be yourself(너 자신이 되라)'였다. 결국 내가 가장 잘하는 것,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몰입했을 때 성과가 나온다. 자기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리더는 나를 알고 팀을 알아야 한다. 팀원들이 신이 나 자발적으로 일하면 조직은 성과를 내게 되어있다. 리더는 팀원들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람이고, 똑똑한 후배를 많이 배출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게 리더로서 성공하는 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팀원과 그걸 주제로 대화하고 질문하면서 답을 함께 찾아가는 게 리더다. 팀원이 스스로 자꾸 탐색하게 하고, 다양한 시도도 권해보고, 그 결과를 공유하면서 같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거다. 조직 리더들이 이런 멘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 "대야에 물방울을 떨어트렸을 때 파랗게 물들게 하려면 최소 30%가 필요하다. 그래서 30%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이 이에 귀를 기울이려면 적어도 30%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
ⓒ 권우성 |
"내가 성장하면서 '한끗'은 견뎌냄이었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그 말이 정말 딱 와닿았다. 어느 조직에서 처음 3년, 5년은 너무 힘들다. 그래도 견딤이 누적되고 또 누적되면 내가 어디에 쓰이면 될지 쓰임이 정해진다. 당시는 남들이 하지 않았던 '품질관리' 분야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쌓고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실감해 조직문화 리더가 됐다. 그렇게 업계 최초를 달았다. 오래 견딘 것, 그래서 조직 안에 오래 남았던 것, 그게 컸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대표가 되겠어' 이랬겠나. 그런데 일의 의미를 찾게 되면서 소명 의식이 생기고 책임감이 커졌고, 용기가 생겼다. 내 일의 가치를 재정립한 것, 그것이 견딘 후 다음 스텝에서의 '한끗'이었다. 리더가 되면서 필요한 것 역시 성찰이다. 리더는 팀원의 마음을 사서 일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팀원을 알아야 한다. 속마음을 끌어낼 수 있는 소통을 해야 하고, 팀원의 커리어를 함께 꾸려 가는 멘토가 돼야 한다.
그러면서 내 꿈, 이루고 싶은 바도 자라더라. 처음에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역할에 충실했고,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인회계사협회 회계 선진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는 차세대 여성 리더 육성과 기업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문화 확산을 위해 WIN 회장직을 맡고 있고, 우리나라 여성·기술·창업 생태계를 단단히 하기 위해 기술지주 대표직을 역임하고 있다.
커리어를 쌓아 온 내 여정이, 이 길을 가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라왔다. 내 발자국이 뒷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꿈은 커지고 있다."
- WIN 회장직, 이화여대 기술지주회사의 대표직 모두, 그 '이정표' 사회 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으로 보인다.
"2024년 우리나라 매출액 500대 기업 등기 여성 임원 비율은 11%다. 기업 내 승진한 여성 사내이사는 여전히 3%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여전히 '다양성이 왜 필요한지'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실행에 집중하고 있다. 조직 내 다양성이 성과에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 맥킨지의 보고서 'Diversity wins: How inclusion matters(2020)'에 따르면, 성별 다양성 측면에서 상위에 놓인 기업이 하위에 있는 기업보다 평균 이상의 수익성을 가질 가능성이 2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의 기업 상황은 변동적이고 불확실하다. '나를 따르라'보다는 인지적 다양성, 집단 지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변화를 만들기 위한 임계질량 30%'를 강조하고 있다. 조직에 10명 있는데 1명만 여성이라면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두 명이어도 목소리 내기 쉽지 않다. 대야에 물방울을 떨어트렸을 때 파랗게 물들게 하려면 최소 30%가 필요하다. 그래서 30%다. 여성이 목소리를 내고 조직이 이에 귀를 기울이려면 적어도 30%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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