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산단]②규제 풀자 우후죽순…결국 미분양·노후화
국가 수요보다 2.24배나 더 지었다
지방산단 미분양 7년 만에 268% ↑
현재도 산단 미분양 2449만㎡인데
4076만㎡ 산단 또 짓겠다는 정부
수천만 ㎡의 땅이 국내 산업단지로 지정된 이후 방치되는 근본 원인은 과잉 공급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적으로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많은 산단이 수십년간 공급됐다. 산단 규제까지 풀리자 기초단체장들은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며 앞다퉈 산단을 조성했다. 산단만 생기면 기업이 들어와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 중장기적인 정책 설계 없이 눈앞에 보이는 규제 제거에만 매몰된 근시안적인 정책이 지금의 ‘미분양과 노후화’라는 문제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정부 등에 따르면 산단은 1962년 울산공업센터(현 미포국가산업단지) 착공 이후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한국 경제구조를 농업에서 공업으로 전환하려던 박정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개발조성법’ 제정으로 산단 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구로공단부터 전국 곳곳에 산단이 들어섰다. 1970년대부터는 민간도 산업단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1970년 영등포공업인협회가 주도한 ‘영등포기계공업공단(현 서울온수산업단지)’이다. 이후 국토 균형발전을 이유로 농·어촌 지방에도 산단이 들어섰고, 2000년대 첨단산업단지 조성도 본격화했다.
2008년 규제완화가 시작되면서 산단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산단 규제완화를 대대적으로 천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선인이던 같은 해 1월 “(영암 대불산업단지) 전봇대를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됐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전봇대지만 규제 때문에 제거가 쉽지 않다는 취지였다. 인수위에서도 산단 규제개혁을 위해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3월13일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1차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산단 규제완화를 주문했다.
이에 발맞춰 윤두환 한나라당 의원은 기업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부지를 적기에 공급하자며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산단간소화법)’을 발의했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산단에 필요한 인·허가, 개발계획 승인,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대폭 줄어들었다. 2~4년이 걸리던 산단계획 승인 기간도 6개월 이내에 결정하도록 의무화했다. 광역단체장이 결정하던 30만㎡ 미만의 지방산단 지정권한도 기초단체장으로 넘겼다.
규제를 풀자 산단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통계작성이 시작된 2002년부터 산단간소법이 통과된 2008년까지 7년간 산단은 492개에서 688개로 196개(39.84%) 많아졌다. 하지만 산단간소화법 이후 7년간 늘어난 산단은 359개(72.97%)로 두 배가량 됐다. 특히 기초단체장이 자유롭게 지정할 수 있는 일반산단이 급증했다. 2008~2014년 국가산단은 35개에서 41개로 6개(18.18%) 늘어난 데 비해 일반산단은 277개에서 538개로 261개(166.24%)나 증가했다.
규제 풀자 지방산단 미분양 268% 급증
늘어난 산단만큼 기업이 입주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미분양이 속출했다. 2008년 만해도 산단 미분양 부지는 1232만2000㎡이었다. 2002년과 비교하면 1736만5000㎡에서 29.04% 감소했다. 국가산단(-42.24%)과 일반산단(-10.54%) 모두 줄었다. 반면 산단간소화법 후 7년 뒤 미분양 부지는 2732만4000㎡로 86.3%나 불어났다. 증가세는 일반산단이 주도했다. 국가산단 미분양은 32.3% 정도 증가했는데, 일반산단의 경우 268.48% 늘었다.
2022년 출범한 보령웅천산단이 대표적인 예다. 보령시는 2010년 68만㎡에 달하는 웅천산단 개발에 착수했다. 지역에 있던 영보산단 121만㎡ 전체가 분양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의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2009년 김종학 보령시의원은 “제2농공단지, 청소농공단지, 나아가서 남부산단도 또 조성한다며 장밋빛 사업을 펼치고 있다”면서 “(산단을) 너무 벌리기만 해서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웅천산단은 아직도 57%가 미분양 상태다.
울진군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울진군은 2008년 평해농공단지 조성에 나섰다. 그해 군정주요업무보고에서는 “생각해보고 하는 일이냐” “울진에도 잘 안되는 사업을 평해에도 만드는 것이냐”, “성공한 데가 별로 없는데 단지를 거기에 하려면 업체를 어떻게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있어야 한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울진군은 접근성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조성을 강행했다. 2012년부터 분양을 시작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34%는 미분양으로 남았다. 이후 죽변해양바이오 농공단지를 또 지었는데, 14만9000㎡ 중 83%가 미분양으로 방치돼 있다.
이 같은 과잉공급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당시에도 있었다. 아시아경제가 확보한 국회예산정책처의 14년 전 분석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2010~2012년 필요한 산단부지를 약 120㎢로 예측했다. 그런데 실제 공급됐던 산단은 268.8㎢였다. 정부가 필요로 했던 산단보다 2.24배나 더 조성됐다는 뜻이다. 지자체가 산단짓기 경쟁에 몰두한 탓이다. 연구진들은 산단의 과잉공급이 우려되니 ‘(무분별한 산단 조성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금도 ‘산단을 더 짓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전국 15개 4076만㎡ 규모의 국가첨단산단 후보지를 발표했다. 역대 정부에서 지정한 산단 중 최대 규모로, 현재 산단 미분양 부지 2449만㎡를 훌쩍 뛰어넘는다. 첨단·대형 산단이 만들어지면 지방산단 미분양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은교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과잉공급 이후 수급 관리를 위한 제도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시도별로 편차가 있다”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한국에는 버려진 땅이 있다. 넓이만 2449만㎡로 여의도 면적의 5.44배 규모다.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방치돼있다. 바로 '산업단지' 이야기다. 산업단지는 1960년대 울산공업단지 개발을 시작으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한 주역이다. 하지만 우후죽순 들어선 탓에 지금은 고질적인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새 산단을 짓는 데만 몰두하면서 기존 산단은 심각한 노후화 문제에 직면했다. 아시아경제는 '버려진 땅, 산단' 기획을 통해 국내 산단 현황을 살펴보고 해외 사례를 통해 한국 산단의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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