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여론조사는 왜 틀렸나
[김봉신 기자]
▲ [표 1] 9일 CNN이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
ⓒ CNN |
'표 1'에서 볼 수 있듯, 트럼프는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해 226명을 얻는 데 그친 해리스를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9일 기준 해리스는 7085만 2389명에게 지지를 받아 47.9%를 득표했고, 트럼프는 7452만 7787명에게 지지를 받아 50.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280만 표 이상을 더 얻고도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 수는 트럼프가 더 얻어 패배했었으나, 이번에는 트럼프가 360만 표 이상 더 얻었다.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 경합주라고 불리던 7개 주 모두 트럼프가 승리했다. 19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펜실베이니아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것만으로도 승리는 확정적이었지만, 위스콘신과 미시간에서도 트럼프가 이겼다.
2020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이 미시간에서 2.8%포인트 격차로 승리해 선거인단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1.4%포인트 격차로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경합주에서 트럼프로의 지지세 이동이 뚜렷하다.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선거의 밤 행사에서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걸으며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렇지만 여론조사와 이에 근거한 전문가 예측은 많이 틀렸다. 미국의 통계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네이트 실버는 당선 확률 예측에서 대선 하루 전날까지 트럼프가 미세하지만 승리할 확률이 더 높다고 했으나, 당일에는 해리스가 미세하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을 수정했다. 다른 전문가 중에서도 극히 미세한 판세를 예측했으나, 결과는 상당한 격차로 드러났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대선 당일에 임박해 해리스의 승리로 예측치를 약간 바꾼 이유 중 하나는 막판 여론조사 중 해리스 승리로 기운 여론조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 포컬데이터가 한 달 동안 3만 명 넘게 추출해 조사한 후 다중 회귀 및 사후 계층화(MRP)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해리스가 약간 우세했다는 것이다.
또, 모닝컨설트의 여론조사도 보통 1만 명 정도를 추출하고 결과를 집계해 보여줬는데, 마지막 조사에서 해리스 49% 대 트럼프 47%로 해리스가 2%포인트 앞선 결과였다. 표본 수가 큰 조사에서도 오차범위 내에 걸친 격차이니 누가 이긴다고 하긴 어려운 결과지만, 꾸준히 해리스가 이기는 결과가 반복해 나타났다고 하면, 선거인단 확보 경쟁은 불확실하더라도 최소한 전국 득표율은 해리스가 더 높을 것으로 예측하기 쉽다.
여론조사는 왜 틀렸나
결국 격전지 경합주에서 1000명 정도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표본을 더 잡거나, 여러 가지 분석 방법을 적용하거나 하더라도 여론조사가 득표 결과를 예측하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해야 할 게 있다. 한국의 공표용 선거 여론조사는 가중치를 적용해 표본의 구성 비율이 모집단의 구성비와 맞게 보정해서 발표해야 한다. 이는 유권자 전체를 대표할 수 있으려면, 성별 연령대별 거주 권역별 유권자 분포에 맞게 조사된 표본의 분포도 맞춰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국 대선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조사 대상이 '등록된(registered)' 유권자이거나 혹은 '투표할 것 같은(likely)'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다. 유권자 등록은 미국식 제도이니 뭐라 할 게 아니지만, '적극 투표 의향자'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 공표하면 한국에서는 현행법 위반이다.
그렇다면 이번 미국 대선의 경우 투표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투표장에 나간 유권자에 의해 승패가 갈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즉, 미국에서 여론조사 방법이 표본으로 추출하지 못하는 유권자가 어느 정도 있다는 얘기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위에서 언급한 표본 수가 매우 많은 조사 두 개는 모두 온라인 조사인 것으로 보인다. 모닝컨설트는 온라인 방식으로 조사한다고 밝혔고, 포컬데이터의 조사는 최종 예측 보고서에 온라인 폴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온라인 조사는 이메일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를 조사기관에 미리 등록한 패널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다양한 방법으로 패널을 모집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이들 등록 패널의 목록(추출틀)이 갖는 모집단 대표성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에 따라 최근 마케팅 조사는 대부분 온라인 조사로 진행하곤 한다.
그렇지만 온라인 조사에서 비사무직 노동자, 고령자, 일반폰 사용자, 컴퓨터 친화적이지 못한 유권자의 추출 확률은 다소 낮다. 그러니 몇만 명을 추출한다 하더라도 추출 단계에서 이미 편향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런데 2016년 2020년 2024년 대선 모두 예측에 성공한 테크노메트리카 마켓 인텔리전스(TIPP)는 2016년 예측에 활용한 여론조사를 전화면접조사로 진행했고 무작위 추출(RDD) 번호 중 휴대전화 65% 집 전화 35%의 비율을 적용했다고 했다. 집 전화를 섞은 전화면접조사로 온라인 조사로는 잡기 어려운 유권자의 표심까지 반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표 2] 퓨리서치센터에서 조사해서 발표한, 해리스와 트럼프 당선 시 집단별 영향 예상을 보면 해리스는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에게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
ⓒ 퓨리서치센터 |
백인이 다수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표 2'를 보자. 지난 9월 25일 퓨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조사로 두 후보의 정책이 집단별로 어떤 영향이 있을 것 같은지 물어본 결과다.
'표 2' 아래에서 둘째 줄 백인을 보면, 미국 유권자의 36%는 해리스 집권 시 백인에게 좋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 집권 시 백인이 좋을 것 같다는 응답은 49%다. 이처럼 백인의 관점에서 해리스는 달갑지 않은 후보로 인식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남성에게는 트럼프의 집권이 더 좋을 것 같고 여성에게는 해리스의 집권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응답 분포도 눈에 띈다. 인종적으로 소수 집단에 트럼프의 집권은 별로 좋은 영향이 아닐 것이라는 응답이 많다. 여성과 소수 인종에게 트럼프의 정책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이처럼 분명하다. 하지만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 [표 3] 인종-종교별 지지하는 후보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백인 기독교 복음주의자 중 트럼프 지지는 매우 우세했다. |
ⓒ 퓨리서치센터 |
가톨릭 신자도 사정은 비슷한데 히스패닉 가톨릭 신자 중 극히 미세하게 바이든이 우세하다 하더라도 백인 가톨릭 신자의 구성비가 높아 전체 가톨릭 신자 중 트럼프가 우세했다. 종교가 없다는 응답자 중에서는 바이든이 우세했다.
이같이 백인 기독교도 중에서 트럼프 지지세가 강하게 나타나는 경향은 해리스가 후보가 된 후에 더욱 강하게 고착됐을 가능성이 크다.
혐오로 혐오를 넘어설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미 대선 여론조사 중 일부가 온라인 친화적인 유권자를 중심으로 표본을 추출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런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은 유권자 중에 사무직 아닌 노동자도 포함됐을 듯하다. 이들 중 백인이 인구 비례처럼 다수 섞여 있었다면, 위에서 본 것처럼 해리스가 이기기 어려운 지형이었는데 여론조사에서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흔히 트럼프가 인종, 젠더, 난민/이주민 문제에 혐오 프레임을 씌운다고들 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주장하는 인종, 젠더, 난민/이주민 현안에 혐오 프레임을 씌울 때, 그 혐오에 동조하는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싸우려고 해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혐오에 동조할 정도로 절박한 유권자들에게 무엇인가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는데, 현지에서 들리는 말로는 해리스의 정책이 젠더 정책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무엇이라고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여러 정책에서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이든 정부의 경제 성과에 대한 평가도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문제를 더 잘 해결한 후보로 트럼프를 선택하는 응답이 우세했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를 국민경제의 성장으로 이해하는 유권자보다는 이주민에 의해 침식되는 지역 일자리로 이해하는 유권자가 더 많았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 지지 유권자를 향해 '쓰레기'라고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상대가 쓰레기라고 한다고 쓰레기라고 맞받아쳐서는, 혐오를 또 다른 혐오로 대응해서는 승리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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