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통상, 취임 100일 동안 속도있게 추진"
"최대 관심사는 무역적자 해소"
"IRA·반도체법, 큰 변화보다 보조금 축소 가능성"
"한미 FTA, 폐지·전면 수정 쉽지 않아"
"8년새 높아진 韓기업 위상 고려, 위기를 기회로"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바이든 행정부 주요 정책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글로벌 통상환경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11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초청해 트럼프 신정부 통상정책 전망과 한국 경제계의 전략적 대응책 모색을 위한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의 직접 협상 경험은 물론, 트럼프 1기와 바이든 정부의 주요 정책 대응에 관여했던 인사들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2021~2022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현지에서 화상연결을 통해 대선 결과에 대한 현지 반응을 생생히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제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아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향후 정책 방향에 관해선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美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 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하에 관세 등 통상정책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 비전 실현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라며 "이에 대비한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트럼프 1기 당시 미국 상무관으로서 한미FTA 개정협상, 철강232조 등 직접 대응한 경험을 바탕으로 "1기 당시와 비교해 한국 기업의 투자 등 위상이 8년 전에 비해 높아진 만큼,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제발표에 이어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는 ▲한미 FTA 활용방안과 미래 ▲보편관세 가능성 ▲IRA와 반도체법 등 통상정책 이슈 ▲미중관계 등 대외정책 등 미국 신정부의 정책 방향과 한국 기업들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나눴다.
2006년 한미FTA 협상의 수석대표로 활약했던 김종훈 전 의원(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2기에서 "국경의 높이와 함께 시장의 장벽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편관세 도입 및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은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상태이므로, 보편관세 도입 등을 통해 기존의 FTA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하는 것은 대외관계 전반과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미국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라며 "그럼에도 개정협상을 하게 된다면, 양측의 이익이 균형 있게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2011~2013년 통상교섭본부장)은 신정부 통상정책에 대해 "보편관세가 실제 한국에도 적용된다면 한미 FTA 협정의 상호관세 철폐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면서 "IRA 관련 혜택을 받는 공화당 지역이 많으므로 보조금 삭감 등 갑작스러운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며, 반도체법 역시 큰 변화는 없겠으나 보조금 지원 축소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트럼프 1기에서 거세게 나타났던 미중 갈등에 대해서는 "트럼프 2기 정부는 바이든 정부가 취했던 중국 견제조치는 그대로 두면서 중국 수입품에 대해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는 등 추가 압박을 가할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 1기 후반에 했던 것처럼 중국과 대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9~2021년 통상교섭본부장)는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트럼프 정부가 양자관계를 판단하는 척도가 무역적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역적자국 8위인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1순위 고려 대상은 아니겠지만, 중국,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 이어 타깃 국가가 될 수 있다"면서 "차분하면서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1기 통상정책의 키맨이었던 라이트하이저와의 협상 경험에 대해 "당시 미국 정부는 ① 동맹 여부는 무관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주요 기준 ② WTO·한미FTA 위반 여부는 개의치 않고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한 어떤 조치도 도입 가능 ③ 협상 요구 시, 한두 달 내에 진전 없으면 조치 부과도 불사하는 빠른 속도감 등이 특징이었다"고 꼽았다. 이어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역수지 적자 해소 수단인 동시에 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라며 "미국의 일방 조치에도 우리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협상에 나선다면, 관세 면제나 우리 요구사항 반영이 가능할 수 있다. 정부 협상팀에게 도전이자 기회"라고 언급했다.
또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WTO의 미래에 대해서 "WTO 출범 30년 중 가장 큰 위기"라며 "이미 8년 전 트럼프의 등장으로 WTO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지난 4년간 바이든 체제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시 돌아온 트럼프 정부는 더욱 확신을 갖고 WTO 체제를 벗어난 통상정책을 구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WTO가 철저한 개혁을 통해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제 규범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가 더 작동하지 않는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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